한국 나이로 24살에 심방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31살때 목사 안수를 받고 16년째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어쨋든 목회자란 이름으로 벌써 24년째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 몇달 동안 목회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바울성경연구원을 하던 그 시기부터입니다.
무엇보다 성경을 깊이있게 연구한다는 신학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리고 교회의 본질을 다룬 책들을 보면서부터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의 모습이 그동안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고, 위대하고, 영광스럽고, 거룩한 것이라는 사실 앞에서 말할 수 없는 중압감이 밀려왔습니다.
이런 놀라운 공동체를 섬긴다는 것, 이런 아름다운 공동체를 함께 세워간다는 것, 이런 귀한 일에 부르심을 받고, 쓰임을 받는다는 것.
내 교회, 내 성도, 내 양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백성을 섬긴다는 것.
힘의 철학이 아니라 섬김, 져줌, 용서함, 내려놓음, 고난받음, 이런 원리로만 더디지만 온전한 공동체가 되어져간다는 사실.
요사이 문득 문득 그 동안 교회를 섬기는 가운데 인간적인 생각이나 욕심, 감정에 지배를 받는 요소는 없었는지, 하나님의 영광을 외치면서 그 옆에 서서 작은 빛이라도 받으려 하지는 않았는지, 제자훈련을 하면서 예수의 제자가 아닌 나의 편들을 만들고 있지는 않았는지.
날마다 새벽기도 시간에도 계속되는 영적 중압감이 더욱 강하게 밀려 오고 있습니다.
성도로 사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받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영광스런 교회에 지체로 속해 있음이 얼마나 복된 것입니까? 그런데 그 자체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또 얼마나 충격적인 사실입니까?
깊은 밤 오늘도 쉽게 잠 못들고 영적 중압감에 책상에 그냥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다만 변함없는 작은 결심은 이 길을 "쉽게 그리고 적당히" 가지 않으리라는 것 뿐입니다.
/제공 이스트베이장로교회 이은성 목사
그런데 요 몇달 동안 목회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바울성경연구원을 하던 그 시기부터입니다.
무엇보다 성경을 깊이있게 연구한다는 신학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리고 교회의 본질을 다룬 책들을 보면서부터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의 모습이 그동안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고, 위대하고, 영광스럽고, 거룩한 것이라는 사실 앞에서 말할 수 없는 중압감이 밀려왔습니다.
이런 놀라운 공동체를 섬긴다는 것, 이런 아름다운 공동체를 함께 세워간다는 것, 이런 귀한 일에 부르심을 받고, 쓰임을 받는다는 것.
내 교회, 내 성도, 내 양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백성을 섬긴다는 것.
힘의 철학이 아니라 섬김, 져줌, 용서함, 내려놓음, 고난받음, 이런 원리로만 더디지만 온전한 공동체가 되어져간다는 사실.
요사이 문득 문득 그 동안 교회를 섬기는 가운데 인간적인 생각이나 욕심, 감정에 지배를 받는 요소는 없었는지, 하나님의 영광을 외치면서 그 옆에 서서 작은 빛이라도 받으려 하지는 않았는지, 제자훈련을 하면서 예수의 제자가 아닌 나의 편들을 만들고 있지는 않았는지.
날마다 새벽기도 시간에도 계속되는 영적 중압감이 더욱 강하게 밀려 오고 있습니다.
성도로 사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받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영광스런 교회에 지체로 속해 있음이 얼마나 복된 것입니까? 그런데 그 자체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또 얼마나 충격적인 사실입니까?
깊은 밤 오늘도 쉽게 잠 못들고 영적 중압감에 책상에 그냥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다만 변함없는 작은 결심은 이 길을 "쉽게 그리고 적당히" 가지 않으리라는 것 뿐입니다.
/제공 이스트베이장로교회 이은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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