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물었다. “인권이란 무엇이죠?” 그러자 한 마디 말하는 것조차 너무도 힘겨운 중증지적장애우들은 활짝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인권요? 쵸코파이예요. 집게 만드는 거예요. 장난감이예요, 우리의 입장이예요, 서로 고마워하는 거예요, 사랑하는 거예요, 이해하는 거예요...”

그렇다. 그들이 생각하는 인권이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서로 고마워하고 사랑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한없이 기쁘고 행복해 하는 것,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것, 그것이 바로 그들이 생각하고 이해하는 인권의 의미다. 그래서 애광원에서는 그들이 생각하는 인권인, ‘고·사·리’ 섬김 실천으로 오늘도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붉은지붕의 애광원 뒷산에서 내려다 본 거제도 장승포 항. 이 건물은 어느 곳에서든지 시원한 거제도 장승포 앞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게 설계돼 있다.  거동이 불편한 지적장애우들의 마음까지 세심하게 배려한 강병균 교수의 헌신작이다.
붉은지붕의 애광원 뒷산에서 내려다 본 거제도 장승포 항. 이 건물은 어느 곳에서든지 시원한 거제도 장승포 앞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게 설계돼 있다. 거동이 불편한 지적장애우들의 마음까지 세심하게 배려한 강병균 교수의 헌신작이다.

◆애광원의 발자취

거제도 애광원은 1952년 애광영아원으로 시작됐다. 1950년 6.25전쟁으로 버려진 수많은 전쟁고아들을 돌보기 위해서다. 그 후 1978년 전쟁고아들을 보살피던 영육아시설에서 정신박약아보호시설로, 1991년 지적장애인시설로 전환됐다. 하나님께서 전쟁고아들의 안식처에 지적장애우들을 보내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86년 장애우 전문학교인 독일 프뢰벨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그 해 10월 중증장애인 요양시설인 ‘민들레집’을 개설하면서 본격적인 지적장애우 보호시설로 변모하면서, 2000년에는 장애인복지시설로 인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5년 현재 230여 명 이상의 지적장애우들이 애광원의 직접적인 보살핌을 받고 있다. 1992년에 설립된 장애우 특수학교 거제애광학교에 출석하는 외부거주 장애우들까지 합치면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장애우들이 매일같이 애광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또한 2014년 12월에는 한신대학교와 산학협력을 체결함으로써 상호교류를 통한 기관 간의 협력과 산학연계 교육을 이수한 학생들의 실무교육 등의 상호 협력을 통해 지적장애우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고, 지적장애우들에게는 보다 더 질좋은 교육지원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애광원의 보호시설

함께 있어 행복한 보금자리인 애광원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지적장애우들이 함께 생활하며 특수학교를 다니거나 교육재활 프로그램, 직업재활 프로그램, 여가동아리 등을 통해 개인에게 필요한 훈련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지적장애우들의 자립준비를 위한 각종 프로그램과 지역사회로의 복귀를 위한 자립홈, 체험홈, 자립가정 등의 서비스 및 지원을 통해 온전한 자립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지적장애우들의 재활을 돕는 시설인 애빈, 지적장애우 특수학교 거제애광학교, 지역사회 속 지적장애우들의 공동생활 체험시설 성빈마을, 중증지적장애우 요양거주 시설 민들레집, 법인영유아보육 시설 옥수어린이집 등을 운영하고 있다.

애빈에서는 장애우들이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직업생활을 통하여 직업재활과 관련된 다양한 서비스 및 취업 기회를 제공함으로 이들의 자활과 자립을 도모하고 있다. 제빵 기술을 통해 빵을 굽고, 원예기술을 배워 꽃과 농산물을 재배하고, 수제품 생산과정에 동참하여 생산한 제품 등을 지역사회에 납품하거나 바자회 등을 열어 판매하며 경제활동을 체험케 한다. 이는 경제적 자립 경험을 배우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애광원 내 애빈하우스를 운영하여 본인들의 수고로 생산한 것들을 직접 판매케 하고 있기도 하다.

거제애광학교에서는 장애우들이 장애을 극복하고 독립된 사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80여 명의 교사들이 헌신적으로 섬기고 있는 특수학교다. 장애우들의 내면 세계에 잠재해 있는 사고를 끄집어 내어 적용하는 생활기능 중심 교육 시도를 통해 실제로 큰 효과와 열매를 맺고 있다.

성빈마을은 일반가정과 같은 환경 속에서 지적장애우들이 자주성을 가지고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만든 장애우들의 보금자리다. 이곳은 지역사회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비장애우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소통의 마을이다. 한 아파트에 3-4명씩 거주하면서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교육한다.

민들레집은 일상생활이 어려운 중증장애인들의 사회재활을 도와 일상생활에 무리가 없도록 돕은 역할을 한다. 각종 치료와 기초체력 증진이 가능하게 한 장애우들의 보금자리이다. 현재 백여 명의 중증장애우들이 생활하고 있다. 사회재활 서비스와 의료재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애광학교 수업에 참가한 지적장애우들이 사진 촬영에 한껏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애광학교 수업에 참가한 지적장애우들이 사진 촬영에 한껏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옥수어린이집

법인 영유아보육시설인 옥수어린이집은 지역사회 어린이들이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교육기관이다. 더불어 지적장애우들에 대한 인식을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심어주면서 장애우들과 비장우들 간의 간극을 자연스럽게 없애주는 전인적인 교육의 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애광원을 방문한 주한미해군 프란께케티 사령관 가족과 함께 한 김임순 원장과  외동딸 송우정 상임이사((오른쪽으로부터)
애광원을 방문한 주한미해군 프란께케티 사령관 가족과 함께 한 김임순 원장과 외동딸 송우정 상임이사((오른쪽으로부터)

◆김임순 원장

김임순 원장은 90 평생 전쟁 고아들과 지적장애우들을 섬겨온 노고로 수많은 봉사상을 수상했다. 그 중 1989년 아시아의 노벨평화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상 수상은 김원장이 평생 얼마나 헌신적인 삶으로 일관해 왔나를 잘 대변해 준다. 부상으로 받은 삼만불은 현재 애광원의 중추역활을 하고 있는 만나홀 건축에 사용됐다.

김 원장은 번쩍 번쩍 빛나는 삶을 꿈꿨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지만 않았어도 분명 그 꿈은 이루어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 김 원장은 이화여대를 졸업한 신여성으로 교수가 되기 위해 남편과 함께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김 원장을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대신 펼치는 ‘사랑의 전령사’로 선택하셨다. 아니, 지명하여 부르시고 사용하셨다. 하나님의 뜻은 김 원장을 통해 우리를 향해 날마다 흘리는 당신의 사랑의 눈물, 진정한 생명수를 퍼나르는 전령사로 사용하는 것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예정된 신의 선택이었다.

그 신의 선택은 빛나는 생명의 면류관을 이미 이 땅에서 쓸 수 있는 선물로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답고 기쁨이 되는 모습, 이미 태고적으로부터 정해진 모습, 하나님 자신을 닮아 태어난 장애우들에게 흘러가게 하셨다. 피난지에서 군용 담요에 둘둘 말린 7 명의 전쟁고아를 맡긴 하나님의 뜻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런 김 원장이 이곳 엘에이를 찾았다. 지난 1985년의 대형 교통사고 후유증에 시달리는 고통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팡이 하나에 구십 노구를 의지하며 달려온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애광원에 맡겨진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눈물, 하나님의 사랑인 지적장애우들을 위해서다. 온전한 손길 없이는 단 한 순간도 견딜 수 없는 그들을 위해서다. 이미 세계 각처 및 미동부 지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끊임없이 받고 있지만, 도움의 손길은 여전한 현재진행형 필요이기 때문이다.

 · 애광원: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대로 3063(장승포동) 전화(055-681-7524) 웹사이트(www.akw.or.kr) 이메일(aikwa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