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한국에서 공부를 하는 딸아이가 성경 에베소서 1장 4-5절을 읽다가 내용이 너무 깊고 스스로 해석을 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 필자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 내용은 성부, 성자와 성령님이 세상의 모든 만물을 만드셨으며 하나님께서 인간을 원죄에서 자유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죄인된 인간이 주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이다. 이 두절의 핵심은 신학적으로 볼 때 예정론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님의 자녀 삼는 권세를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총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이 인간을 먼저 사랑한 것이지 인간이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에 먼저 다가선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러한 모든 과정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이것으로 볼 때 신앙인의 이정표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러기에 신앙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뿐 아니라 삶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한다고 딸아이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 말을 들은 딸아이가 말하기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고 본다면 이제 부터 신앙인답게 살아야 할 것 같다.", "하나님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주님을 경배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 같다.", "방학이 되면 미국을 방문할 때 더 많은 신앙적인 대화를 아빠하고 해야 할 것 같다."
신앙인의 이정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들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삶을 은혜로 여기며 살아가도록 한다. 이러기에 믿음의 사람들은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올인(All In)을 해야 한다. 올인이라는 영화를 보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카드가 상대가 가지고 있는 카드보다 높은 수라고 여기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거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을 믿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자신의 생각으로 자신을 믿기에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언제든 잘 못된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경우의 수가 항상 주어지게 된다. 이렇게 상황에 의해 모든 것이 변화하는 것은 절대적인 진리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인생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게 하는 네비게이터라고 말할 수 없다. 네비게이터는 인생이 살아가는 이정표와 같은 것이다. 인간은 삶을 살아가면서 삶에 대한 목적의식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그 목적의식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되면 삶에 혼돈, 좌절 그리고 절망의 삶을 경험하게 된다. 거기에는 여러가지의 원인이 있다. 때로는 인생의 삶을 자신이 경험한 것으로만 판단하여 다가올 것을 예측하여 중대한 결정을 하는 것, 자신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정황하게 숙지하지 아니하고 삶을 감각으로 판단하여 실수를 경험하게 되는 경우이다. 예를 들자면 누군가 평상시에 알고 지내왔던 사람과 새로운 장소에서 약속을 하였을 때 그곳을 가기 위해서는 지도(MapQuest)를 먼저 찾아 하이웨이의 출구가 어디인지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확히 인식하고 운전을 해야 한다.
그리고 좁은 도로를 운전할 때도 지도가 제시하는 방향대로 운전을 해야 한다. 그런데 지도를 숙지하지 아니하고 하이웨이를 운전하게 되면 잘못된 출구로 나아갈 뿐 아니라 자신의 실수에 쉽게 분노하게 되고 옆 좌석에 탄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더욱이 옆 좌석에 탄 사람이 자신의 배우자인 경우는 분노의 불꽃이 동석한 배우자에게 튀게 된다. 목적지를 가고자 하는 사람이 가는 방향의 이정표를 정확히 보지 못하게 되면 목적지를 코 앞에 두고 20-30분을 소모하게 될 뿐 아니라 약속 시간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고 자칫 잘못하면 부부 싸움을 하게 된다. 이것을 볼 때 인생의 여정에 이정표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정표는 개개인의 삶에도 중요한 영향력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공동체에 소속한 모든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중요하다. 리더 한 사람이 삶의 이정표를 잃어버린다면 그 공동체는 혼란과 무질서가 주어지고 수많은 생각에 의해 배에 기름이 없어 거친 파도에 표류하는 것과 같다. 여호수아 4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을 하여 광야에서 수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도 늘 불안해하고 하나님을 불신한다. 이것을 아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의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이전 요단강 앞에 불러 모으시고 명령을 하신다. 너희가 요단강을 건너는 동안 이스라엘의 열두 부족의 대표들에게 마른 요단강 가운데서 돌을 하나씩 어깨에 짊어지고 가라고 명령하신다. 그리고 길갈에 가거든 열 두개의 돌을 쌓아 놓으라. 만일 후에 그것을 보고 자손들이 물어 보면 그들에게 이렇게 가르쳐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니라"(수4:7)
하나님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시고 그들을 노예로부터 해방하시고 약속의 가나안 땅을 가는 모든 "여정의 이정표가 하나님이 이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이정표로 보고 가나안을 정복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는 축복을 맛보기 위해서는 주님이 주시는 계시를 늘 기억하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이 지속 되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신앙인은 누구나 다 각기 주님을 이정표로 바라보고 거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것은 주님을 통해 구원의 확실을 가지고 세상에서 구별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을 기념하기 위해 늘 성찬식에 참여하는 마음과 주님이 이방인을 사랑하신 것처럼 선한 사마리아인의 삶과 교회를 통한 봉사와 주님으로 부터 받은바 은혜를 지역사회의 공동체에 나누어 주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주님과 함께 신앙의 여정을 걸으면서 개선되어져야(developing and cultivating) 한다. 인생에도 사계절이 주어지듯이 신앙의 여정에도 씨를 뿌리면 반드시 추수하는 결실의 계절을 맛보는 기쁨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추수의 결실은 가족 공동체를 통해 자녀들에게 주어지는 믿음의 축복의 열매와 같은 것이다. 신앙의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신앙의 씨를 뿌리는 것은 그들의 삶을 하나님께 위임하는 것이며, 부모의 경건한 신앙의 모습을 통해 자녀들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며, 그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의 열매가 자손들에게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의 도움이 필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늘 기억하고 살아가는 신앙인의 노력이 필요하다. 신앙의 이정표는 한 개인 뿐 아니라 가족과 민족의 공동체를 건강하게 하는 강한 힘이다.
크릭사이드 한인교회 김칠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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