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훈 목사
여승훈 목사

미국 각 지역마다 한인 이민 사회에는 각종 한인 단체들이 있다. 이런 단체들은 대체적으로 한인 사회의 협력과 발전을 위하여 조직 되었다. 필자는 이들 단체들에 대한 한인 교회들의 의식에 대하여 생각할 기회가 종종 있었다. 다수의 교회들이 지역 사회 단체들에 대하여 한마디로 “무관심과 무의식”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을 발견 할수 있었다. 모든 교회들이 공통적으로 목표로 하는 대상은 세상이다.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서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비전을 말한다. 이 비전은 예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오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다는 의미는 세상 속에서 산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세상을 떠나 분리되어 독립된 공동체를 구성하여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함께 살면서 세상의 부패와 어두움을 막고 새롭게 사는 길, 그리스도의 길로 인도 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머물고 있는 교회를 한번 돌아보자. 다양하고 많은 프로그램들과 사역들이 회중들의 신앙적 경험에 너무 편중되어 있다고 생각지 않는가? 예산의 대부분과 수고의 대부분이 교회 안에서 회중들의 신앙과 관련된 부분에 대부분 투자되고 있지는 않은가 말이다. 교회가 회중들의 신앙적 경험을 위하여 투자하는 것이 뭐가 잘못이겠는가? 또한 누가 잘못 되었다고 말할수 있겠는가? 교회로서는 당연히 해야 할 바를 하고 있다는데 누가 이의를 달수 있겠는가?

맞다. 교회가 회중들의 신앙적 부분을 위해 투자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필자가 한번쯤 되짚어 보고 싶은 것은 균형이라는 측면이다.

필자는 20년 넘게 따뜻한 지역에서 살다가 지난 1년 전에 날씨 춥기로 소문난 시카고 지역으로 이사를 왔다. 지난 1년 동안 몸무게가 많이 불어났다. 따뜻한 지역에서는 늦은 오후가 되면 거의 매일 운동을 했던 반면에 이곳 시카고에서는 추운 날씨 관계로 거의 운동을 할 수가 없어서 인지도 모른다. 날씨가 추운 관계로 따뜻한 국물을 매 식탁마다 대하게 된다. 잘 알다시피 국물과 함께 밥을 먹다 보면 평소보다 밥을 더 많이 먹게 된다. 먹는 음식량은 이전보다 더 많은데 운동량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 몸무게가 불어나는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한마디로 먹는 음식량과 운동량의 균형을 잃어 버린 셈이다.

프란시스 쉐퍼 박사는 “존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책에서 지난 세대의 기독교인들이 “신앙”과 그 밖의 생활 사이에 뚜렷한 구분을 설정하는 잘못을 범했다고 주장했다. 즉, 종교적 경험에만 일차적인 강조점을 두고 그것을 “상위의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밖의 사회적, 문화적, 법적인 관심사들은 그보다 하위의 것, 보다 열등한 것으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쉐퍼 박사는 생활의 모든 영역이 바로 모두 영적인 것이며 그 모두가 통합된 전체라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한마디로 신앙과 생활의 균형성이다. 신앙과 생활을 비교하며 어느쪽이 높은 위치에 놓여야 하는가를 말하는 것은 인식력의 균형을 이미 잃어 버린 것이다. 신앙과 생활은 우선 순위의 구분이지 어느쪽이 높은가 혹은 낮은가의 문제가 아니다. 신앙이 없는데 생활이 있을수 있는가? 반대로 생활이 없는데 신앙이 있을수 있는가? 신앙을 통하여 생활의 열매를 볼수 있고 생활을 통하여 신앙의 진의를 분별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신앙과 생활은 뗄래야 뗄수없는 하나의 동체로 연결 되어 있다.

중세 수도원 운동이 낳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한가지 부인할 수없는 부작용은 세상 속에서의 생활과 신앙을 철저히 분리했다는 것이다. 역사 가운데 수도원 운동이 가장 왕성하였던 때는 중세 시대일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신앙이 가장 타락하고 부패했던 때도 바로 그 중세시대였다. 이 부분에 대한 심도있는 평가가 지역 교회들에게 필요 하다고 본다.

지역 교회의 역할은 우선적으로 회중들에게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가르치는 곳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성경공부와 훈련 프로그램들이 제공되고 있다. 이와같이 신앙을 가르침과 동시에 교회는 지역 커뮤니티를 돌아보는 역할을 성실히 감당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교회가 가르치는 신앙이 적용되어야 하는 현장이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으로부터 교회로 부르시기도 하시지만 그 부르심의 목표는 세상으로 다시 파송하여 세상을 섬기는 것이다. 파송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교회 안에서 배운 신앙적 진리들을 의지하여 부패하고 어두운 죄악된 세상에 빛과 소금같은 영향을 주어야 하는 책임을 지니고 있다.

눈을 열어서 돌아보면 그리스도인들이 처해 있는 현실 속에 감당해야 할 책임들이 산적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다만 무관심과 침묵으로 지나치다 보니 감당해야 할 책임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지역마다 각종 단체들의 불협화음을 종종 듣게 된다. 이런 일들에 대해서 소위 적지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소리없이 회피와 침묵으로 일관 하려는 경향이 있다. 결국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을 관망하게 된다. 이런 경우 나만 깨끗하고 나만 도덕적이고 나만 옳은 것 생각하면 된다는 나만의 신앙을 지키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는 세상 속에서의 생활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바로 이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 속에서의 생활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곧 하나님 나라의 일이며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의 몫이 아니겠는가? 회피와 침묵이 최고의 선이라고 생각하는 개념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서는 분명히 맞지 않는 발상이다.

그리스도인들의 회피와 침묵은 잘못된 길을 걷는 사람들 못지 않게 용서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신앙을 책임있게 감당해 내는 기독교적인 헌신이 이 사회에 꼭 필요하지 않을까? 세상에 대한 책임은 세상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자.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