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한남대 총장
김형태 한남대 총장

보름 동안 단식을 해보았다. 효소를 마시며 했기 때문에 배고픔은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두 시간 단위로 하루에 4-5차례 성경공부를 하고 설교를 듣는 동안 계속 반복되는 테마는 비움이었다. 물질(음식)에 대한 탐욕이나 집착을 내려놓고 내 몸을 비워가는 것이다.

평소 1일 3식이 습관화되었고, 총장으로서 사람들을 만나 식사하다 보면 일관성 없는 식사를 해왔던 게 사실이다. 점심은 일식, 저녁은 중국 음식을 먹게 되는 등 계획성 없는 식사가 되었다. 그래서 이번의 단식은 색다른 경험이었고 매우 유익하였다.

그러면 우리 생활에서 음식 외에도 버릴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칼빈 밀러(Calvin Miller) 목사는 ①물질에 대한 욕구 ②시간 ③꿈 ④자아상 등을 비우라고 했다. 첫째, 물질에 대해 우리는 스크루지 영감처럼 살면서 마치 테레사 수녀처럼 자비롭게 보이고 싶어한다. 부자들이 많은 재산을 아끼듯, 가난한 사람들도 적은 재산을 아낀다. 일종의 안전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물을 아낄수록 재물이 우리를 소유하게 되어 아무리 가져도 만족할 수가 없다.

예수님은 어리석은 부자(눅 12:16-19)를 예로 들어 재산이 자신을 구원해줄 수 없음을 일러주셨다. 그 부자는 죽었고 그의 계획과 기대는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21) 간직할 수 없는 것을 주고 잃어버리지 않을 것을 얻는 사람이 지혜로운 것이다.

둘째, 시간을 내려놓아야 한다. 시간 관리에 관해 3개의 요절을 암송하는 게 좋다(시 90:12, 엡 5:15-16, 약 4:14). 시간을 쌓아두려는 사람은 끊임없이 돌아가는 초침과 경쟁하는 것이다. 시계와 달력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의 돌봄 안에 거하는 것이 지혜다. 이런 표어는 어떤가? "한 번 뿐인 인생, 곧 지나가리니... 그리스도를 위해 한 일만 남으리라."

셋째, 의사나 교수나 변호사, 아니면 장관이나 국회의원, 또 기업의 회장이나 사장 등 종사하는 직종은 서로 달라도 그 중심에 역사의 주관자인 하나님을 모시고 자기의 꿈과 소망을 내려놓으면서 하나님의 종으로 위치화했느냐의 여부에 따라 행·불행은 현저히 달라질 수 있다. 그런 것을 보여주는 옛날 시(詩) 한 편을 읽어보는 게 좋겠다.

"나는 성(城)을 건축하고 높이 쌓아 올렸다네 / 성의 뾰족탑이 푸른 하늘을 꿰뚫을 때까지 / 나는 쇠몽둥이로 세상을 다스리리라 다짐했었네 / 내 성은 녹아내려 어느덧 사라져버렸네 / 이제 나는 사람들의 영혼을 생각한다네 / 어느 조용한 곳에서 / 주님을 대면하고 만난 그날 이래 / 나는 생명을 잃었다가 다시 찾았네".

우리의 꿈과 목표를 포기하는 것은 그 대신 하나님의 뜻을 붙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손에 잡은 강냉이 튀밥을 내려놓고 고급스러운 초콜릿을 받은 것이다. 지상의 꿈을 내려놓고 하늘의 꿈을 받는 것이다.

넷째, 자아상을 내려놓아야 한다. 우리는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보이려고 얼마나 고단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가? 주님께 모든 것을 드린다면서도 우리는 자기 자신과 친구들, 그리고 교인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보이기를 원하고 있다. 이렇게 자신의 이미지를 포기하지 못할 때 곧잘 위신에 빠지게 된다.

거룩해 보이고 싶어 죄를 숨기고, 희생적으로 보이고 싶어 값싼 차를 몰고 교회에 간다. 정 많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연신 미소를 짓고, 인색해 보이고 싶지 않아 헌금함에 큰 돈을 넣는다. 자기만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려고 교회의 각종 모임에 참석한다. 경건해 보이려고 애쓰는 동안, 우리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속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우리는 거짓 겸손 가운데 위장된 겸손이나 '겸손한 교만'을 키워간다. 실제 겸손하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두 개의 자아상 속에서 왔다 갔다 하는 인격분열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목회자나 장로들, 지위가 높은 공직자일수록 더 심한 것 같다.

진정한 겸손은 쉬운 게 아니다. 그것은 굴욕을 겪어야 하고, 굴욕은 수치를 당해야 가능하다. 공개적인 망신을 한 번 당해, 보이는 자아가 깨지고 실제 자아로 가야 비로소 얻게 되는 것이다. 실제 자아에 덧씌워진 거품의 허상이다. 사라져야 본모습이 나오는데, 그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희생이 따르기도 한다.

그러나 가짜 자아상의 신기루가 사라져야 하나님의 현존 앞에 나의 실제 모습을 드리게 되는 것이니 순간 아프지만, 결과적으론 유익한 일이 될 수 있다(갈 2:20).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