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적으로 가을의 멋을 이야기 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빨깧고 노랗게 물이든 낙엽을 보는 것이다. 아름답게 수놓은 낙엽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시간을 내어 산행을 하곤 한다.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 낙엽을 보면서 감동을 하는 것은 너무나 멋진 자연의 웅장함 때문이다. 그러나 산에 올라가지 아니하여도 가을의 또 다른 색깔과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짙은 안개 가운데 풀잎들을 적신 이슬과 안개비를 접하는 것이다. 이러한 청취에 어우러지는 삶의 행복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커피의 향기를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삶에서 주어지는'슬픔, 분노, 생각, 기쁨, 공포, 두려움, 놀라움'등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인간이 삶을 살아가면서 환경에서 주어지는 현상들을 마음속에서 밖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마음속에 간직한 감정은 특별히 말을 하지 아니하여도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 수 있다고 심리학에서는 말을 한다. 그러나 나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누군가와 나누지 아니한다는 것은 그렇게 밝은 생각이 아닐 뿐 아니라 오히려 마음의 병을 홀로 지고 가는 고통이 주어진다. 삶을 살아가면서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나의 마음의 분노와 아픔을 함께 나누게 되면 '고통은 줄어들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은 참으로 좋은 교훈이다.
건강한 사람의 행복은 나의 삶을 누군가와 같이 나누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마음속에 있는 생각들을 가둬 놓고 세상을 어둡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의학계에서 말하기를 지구촌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20명 중에 한명이 우울증에 걸려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우울증은 외부에서 오는 현상이 아니라 마음의 내부에서 오는 것이기에 그것은 정신병과는 다른 마음의 병이라고 말을 한다. 그리스 철학자 에픽뎃의 말에 의하면 "사람들은 사건의 강도에 따라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개인적으로 어떻게 경험 했느냐에 따라 그 고통의 강도가 결정된다."이러하기에 우울증은 반드시 치료 될 수 있으며 그것은 누구나 흔히 한번쯤은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울증은 치료 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삶의 면역체계가 무너질 뿐 아니라 삶의 의욕 상실로 인해 심하게 되면 정신적인 병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사람이 느끼는 것을 신경세포가 전달받아 코티졸이라는 호르몬을 과도하게 생성하게 한다. 이로 인해 "억제된 면역계는 감염성 질환에 취약하게 되고 암을 쉽게 걸리게 할 뿐 아니라 인생에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방해의 요인이 된다." 우울증이 심한 사람은 다른 이 하는 말에 너무나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고 때로는 쉽게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감정에 따라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분노의 화(火)를 뿜어낸다. 어떤 경우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피하려고 하는 마음 때문에 대인 기피증이 생기고 아무것도 먹으려고 하지 않아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인 삶이 망가져 삶의 모든 것에 대해 포기 하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을 비관 할 뿐 아니라 생명을 주신 하나님에게도 불만을 표출한다.
이러한 모습들을 성경에서 찾아본다면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탐하고 난후 거인들과 같은 아낙 자손들을 자신들과 비교해 볼 때 너무나 강하다고 느껴 절망과 분노의 통곡을 하게 된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 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민14:3-4)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하나님께 불평한 것은 그들이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 가나안을 정탐한 사람들의 말을 귀로만 듣고 분노를 한 것이다. 엘리야의 선지자는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사백오십 명, 아세라 선지자 사백명과 삼년동안 비가 내리지 아니하여 가뭄으로 고통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를 통해 비가 내리도록 내기를 한다. 승리는 엘리야 선지자에게 돌아갔지만 엘리야 선지자가 850명의 거짓 선지자들을 죽였다는 것에 대해 보복을 하려고 하는 이세벨 여왕을 피해 도망을 간다.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 길 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 보다 낫지 못하나이다 하고"(열상19:4) 엘리야 선지자는 자신이 갈멜산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값진 승리를 얻었는데 자신에게 주어진 결과는 죽음에 대한 공포감이 찾아 온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신을 하나님께 죽여달라고 간청을 한다.
또 다른 한 사람의 이야기는 하나님께 화를 내는 요나이다. 그는 하나님으로 부터 니느웨성에 가서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여 그들을 구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그는 명령을 수행하지 아니하기 위해 다시스로 도망을 간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이 니느웨성의 백성들을 구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불평을 한다. "여호와여 원하건데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욘4:3) 하나님은 불평 불만, 삶을 포기하고 분노하는 우울증에 걸린 이스라엘 백성, 엘리야와 요나 선지자를 치료해 주신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그렇게 하신 것은 그들이 어두운 지옥에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위로하시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신11:12) 그리고 죽고자 한 엘리야 선지자에게 까마귀와 천사들을 보내어 다시 일어나는 힘을 주신다.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열상19:7) 마지막으로 분노하는 요나에게 박넝쿨을 통해 하나님이 니느웨 백성들과 세상 모든 만물들을 어떻게 사랑하는지 보여 주신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욘4:11) 하나님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각과는 다른 차원의 모습을 가지시고 계시며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 하신다. 사람이 우울증을 가지게 되는 시작은 자신의 생각에서 주어진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데 삶에 자리의 중심이 내가 되면 사람은 항상 마음의 질병을 갖게 된다. 그러나 삶의 중심에 내가 아닌 주님을 섬기고 주님이 사랑하시는 사랑을 알고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건강하고 축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우울증에서 축복으로 가는 통로는 오직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