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인생의 수준이 있다고 한다. 힘들 때 어떻게 하는가를 보라. 불평을 하는가? 삼류 인생이다. 이를 악물고 참아내고 있는가? 이류 인생이다. 감사하는가? 일류 인생이다. 행복과 기적을 경험하며 사는 주인공이 있다. 바로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다. 나는 과연 어떤 인생인가?

우리는 잔혹한 6월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면 들려오는 소식이 우중충하고 서글펐다. 6월의 잔혹사를 탈출하는 것 같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이 별반 다를까? 다들 힘들다고 한숨을 쉰다. 어려운 사회 여건 속에서 가정 경제를 이끌어가는 게 너무 버겁다. 아이들을 양육하는 게 왜 이리 어려운지. 저절로 탄성이 들린다. 주변 상황들이 돌아가는 게 심상찮다. 괜스레 짜증날 때도 많다. 마음을 평정하고 가만히 있으려 해도 주변 여건들이 나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그래서 살기가 싫어질 때도 있다.

그런데 아는가? 나만 힘든 게 아니고 다들 힘들다는 것을. 그래도 살아가는 삶의 반향들은 각기 다르다는 것을. 어떤 사람은 짜증을 부린다.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 괜히 곁에 있는 사람들을 괴롭힌다. 뾰로통한 그의 모습 때문에 그의 주변으로 가는 것을 피하고 싶다. 괜히 가까이 있다가 불똥 튈 이유가 없으니까.

그런데 주변 상황이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웃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 곁에 있으면 감사 바이러스가 전염된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자. 뭔가 불평 불만으로 가득 차 있는가? 가까이 하면 뭔가 손해 볼 사람이다. 삶이 녹록지 않은 것을 아는데,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가? 가까이 하면 유익한 사람이다. 인생을 엮어가는 차원이 다르니까.

어느 신학생의 이야기를 좀 하려 한다. 너무 힘겹게 공부하고 있었다. 월세가 밀리고, 공과금이 밀렸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몰려왔다. 삶에 대한 패배의식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내는 학습지 교사로 나섰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분주하게 다니다가 밤늦게야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 날 아내가 잠든 사이 남편은 아내의 수첩을 슬쩍 펼쳐 보았다. 첫 번째 페이지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내 소원은 첫째 빚을 갚는 것. 둘째, 빚을 갚는 것. 셋째, 빚을 갚는 것." 순간 남편의 눈에서는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자괴감이 몰려와서 견딜 수가 없었다.

너무나 힘겨워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했다. 기도를 마칠 때쯤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환경을 이겨라!" "어떻게 환경을 이깁니까?" "감정을 이기는 것이 환경을 이기는 것이다." "그럼, 감정은 어떻게 이깁니까?" "감사해라!"

처음에는 속이 상했다. 감사할 상황이 도저히 아니기 때문에. 그러나 그날부터 부부는 감사하기로 했다. 하루에 천 번씩 감사했다. 이것이 습관이 될 때까지 집안 구석구석 눈이 닿는 곳마다 '감사합니다'라고 적혀 있는 스티커를 붙였다. 날마다 이것을 읽고 선포하고. 기도하고, 또 다시 선포하기를 반복했다. 하나님을 바라보기로 했다. 그분을 기뻐하고 자랑하기로 했다.

놀라운 것은 감사를 시작하자,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감사하는 가운데 상황을 이겨나가게 되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감사하기로 했다. 먹을 것이 있든 없든, 날씨가 춥든 덥든, 가난하든 부요하든 감사했다.

하루는 저녁을 굶고, 지갑에 남은 유일한 천 원으로 어묵 4개를 사들고 집으로 오면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순간 눈물이 줄줄 흘렀고, 마치 본인이 정신 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러는 동안 '의지적인 감사'가 '진정한 감사'로 바뀌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저녁으로 겨우 어묵 4개밖에 살 수 없는 딱한 처지였지만, 이것이 감사할 이유로 다가오는 것 자체가 기적이 아닌가?

지난 금요일, 13년 전에 함께 공부하던 자매 두 사람을 만났다. 오랜 만에 만나 함께 대화를 나누다가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차를 타고 온누리 장작구이 집을 찾아갔다. 세 사람은 함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 선교단체에서 대표로 섬기고 있는 자매가 말했다.

"목사님, 감사해요."
"뭘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게 되니 힐링이 팍팍 되네요."
"이걸 갖고?"
"사실 저는 교회와 집 그리고 선교회 사무실 밖에 없어요. 사람들을 만나도 그렇게 기쁨이 많지 않아요. 더구나 어떤 사람을 만나면 짜증스럽기도 하구요."
"보잘것없는 것 주고 이렇게 큰 인사 받으니 내가 송구스럽네요. 어째든 힐링이 되니 제가 감사하네요."

내가 쓴 책을 받고 싶어해 나는 차 트렁크에 있는 몇몇 책들을 선물로 주고, 전철 입구까지 태워주고 헤어졌다. 나는 목양실로 돌아와서 생각해 봤다.

"누구는 이렇게 하찮은 것 때문에 감격하고, 감사하고, 힐링이 된다고 하는데, 난 어떤가?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량 없는 사랑을 받았는데, 왜 감사하며 살지 못하는 걸까? 왜 까맣게 잊고 사는 걸까?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실 때 마음이 어떠실까?"

불평 불만은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감사가 메마른 내 삶을 보며 부끄러웠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았던가. "범사에 감사하라!" 이제 잃어버린 감사 보따리를 되찾아야겠다. 더 깊은 영성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감사의 샘물을 다시 길어 내리라. 하루도 거르지 않는 감사, 기억해서 하는 감사,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