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목사.
(Photo : 기독일보) 김범수 목사.

괴테의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는 '빌헬름'이라는 주인공이 나온다. 빌헬름은 부잣집 사업가의 아들이었으나 아버지의 사업을 잇지 않고 연극에 심취하여 유랑극단에 가입한다. 유랑극단에서 빌헬름은 여러 가지 실패와 어려움을 당한다. 이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서 '하프 타는 사람의 노래'라는 시가 나온다. '눈물과 함께 빵을 먹어본 적이 없는 자, 근심에 싸인 수많은 밤을,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울며 지새본 적이 없는 자, 천국의 힘을 알지 못하나니.... '

살다보면 신앙인은 고통을 당할 때가 있고, 인생은 고생의 때를 만나게 된다. 고통에는 뜻이 있고, 고생에는 때가 있다. 뜻이 있으면 길이 보이고, 때가 있다면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경험한 것을 통해 남을 배우고 이해하게 된다. 남이 아프거나 배고프거나 슬프거나 괴로울 때 그런가 하고 지나간다. 하지만 정작 다른 사람이 당한 일을 내가 당할 때 비로소 그 때 그 사람이 지나간 고통의 시간들이 얼마나 힘들었던 가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한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린도후서1:4)

믿음의 사람들에게 고통은 반드시 있게 된다.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서 사람을 세워 가시기 때문이다. 고통이 없으면 사람은 교만해지고,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겸손을 배우고 사람을 사랑하는 넓은 마음을 갖게 된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표현은 고통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서 요셉과 다니엘은 국무총리로, 다윗은 왕으로, 바울은 복음전도자로 세우셨다. 믿음의 사람들이 고통을 당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있다. 그냥 우연이나 사고나 사건만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고통 그 이후 다가올 신비한 일들을 기대해야 한다. 왜냐하면 고통은 축복의 전주곡이기 때문이다.

사는 것은 사람을 알아가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모습을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아는 것이다. 그냥 단순히 만나서 인사하는 것으로는 그 사람의 형편을 알 수 없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고 하신 뜻에는 사람들의 삶속에서 당하는 여러 어려운 모습을 살피라는 뜻이 있다.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이 다 나름대로 고생을 하며 살아간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나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병들고, 형제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다. 계획했던 사업이 안 되고, 목표했던 꿈들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사역들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가 있다. 이것이 결코 우리에게 불행이나 부끄러운 모습은 아니다. 자존심 상하거나 좌절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이 고생의 시간들이 때가 되면 다 지나가기 때문이다.

성경에 야곱은 부모를 떠나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형과 마음이 불편하게 헤어지게 되었다. 외삼촌의 집에서 20년을 사는 동안 부지런히 일했다. 밤잠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 부지런히 일을 했다. 사랑하는 아내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 많은 고생의 시간들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그는 희망과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찬송가 가사에 이런 가사가 있다. "내 고생 하는 것 옛 야곱이 돌베개 베고 잠 같습니다." 인생은 고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눈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올 때도 있지만 그칠 때도 있다. 울 때가 있는가 하면 웃을 때도 있는 것이다. 이별할 때가 있지만 만날 때가 있다. 그래서 산다는 것은 고생의 동굴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터널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고생의 때도 있지만 고생의 끝이 다가온다. 그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믿음이고, 희망이다. 고생이 끝나고, 행복의 때가 찾아 올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꾹 참고 기다려야 한다. 이것 또한 지나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