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라면 자식이 잘 되길 바란다. 그런데 그게 맘대로 안된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꼭 부모의 문제만도 아니고, 아이의 문제만도 아니다. 상황과 환경 때문일 수도 있다. 정말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자녀교육이요, 자녀가 잘 되는 것이다.
필자가 교사로서 또 교장으로서 부모를 상담하고 학생을 가르쳐 온 지 딱 25년이 되었다. 그 여정을 곰곰히 회고해 보면 정말 자식은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으며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성공사례란 예외 (exception)이지 보편적인 것이 아님을 “증언” 할 수 있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는 일단 “잘 되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보통 아이가 건강하고, 공부를 잘하고, 이성문제 없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여 좋은 직장를 잡고, 그리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 오손도손 사는 것이 거의 모든 부모가 원하는 바다. 그런데, 이게 부모의 마음대로 된다면 좋겠지만, 산 넘어 산이라고 쉽게 풀리지 않는다.
자식 문제를 접했을 때 부모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자식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취해야 할 부모의 자세는 무엇일까?
마가복음 5장 21, 22절에 등장하는 회당장 야이로의 경우 딸 아이에게 건강의 문제가 생겨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는 예수님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으니 오셔서 안수해 주시고 살려주십시요”라고 간구했다. 주께서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길에 이미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달되었다. 그 때 야이로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 마음을 주님은 잘 알고 계셨다. 그래서 야이로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고, 결국 “달리다굼”이라 명하셔서 야이로의 딸을 살려주셨다.
여기서 우린 딸의 건강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야이로를 통해 먼저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을 엿볼 수 있으며, 힘들고 어려울 때 그가 예수님께로 달려가 도움을 청한 것을 통해 부모로서 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
같은 마가복음 7장 25-30절에 걸쳐 또 다른 부모가 등장하는데, 그 여인은 귀신 들린 딸을 둔 이방인이었다. 그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주시길 간청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차갑게 말씀하셨다: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찌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정말 예수님답지 않은 쌀쌀맞은 반응이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낙심치 않고 “주여, 맞습니다. 하지만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습니다”라고 끈기있게 주의 은혜를 구했다. 그 때 주님은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라고 답하셨다. 백부장의 믿음에 감탄하신 주님이 이 이방여인의 믿음도 높이 보셨다 생각한다.
이 두 “부모”의 모습을 통해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 부모는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예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그 분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장 해결책이 안 보이고, 앞이 캄캄하며, 주의 은혜가 당장 가슴에 와 닿지 않더라도 낙심치 말고 자녀를 주의 손에 맡겨야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 눈물로 기도한 자녀는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
자녀의 성장과 성공이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아니, 첩경과 고비가 단계마다 복병같이 숨어 있다. 지금 아이에게 큰 문제가 없다고 앞으로도 문제가 없으리라 단순히 생각하지 말자.
지금 기도로 주께 나아가 그 분의 말씀이 자녀의 앞길을 비추고 밝혀 달라고 간구하자. 주의 손에 아이를 맡기자. 주께서 야이로와 이방 여인의 간구를 들어주신 것같이 우리의 기도도 반드시 들어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