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엄마, 내가 말 못할까 봐 보내놓는다...사랑해."

가라앉는 배에서 죽음을 눈앞에 둔 아들이 엄마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다.

2014년 4월 16일. 지울 수만 있다면 지우고 싶은 날. 진도 해역에서 침몰된 세월호. 476명을 세운 여객선이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을 때, 실종자 가족들은 땅을 치고 통곡하며 울었다. 온 국민도 슬픔과 아픔을 감출 수 없어 함께 울었다. 아니, 온 지구촌이 애도하고 있다. 수학여행을 갔다가 하루아침에 생떼같은 자식들을 잃고 통곡하는 실종자 가족 때문에 하늘도 울었다. 선장 한 사람의 실책이 이렇게 참담한 현실을 가져올 줄이야.

정말 힘든 고난주간을 보냈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지만, 복음 때문이 아니고, 십자가 은혜 때문이 아니고, 안타까운 영혼들 때문에. 자식을 잃고 마음 아파 통곡하는 가족을 바라보면서. 그러나 우는 자와 함께 우는 나를 주님께서 그렇게 한심스러워하시지는 않으리라.

기다림과 설렘으로 수학여행길에 올랐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 그러나 아직까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으니 너무 안타깝기만 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을 시신이라도 보고 싶어하는 가족들. 구조현장에서 밤을 지새면서 자식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들. 한 가닥 희망을 가졌다가 한순간 사라지는 희망으로 좌절하고 낙담하기를 얼마나 거듭했던가. 살려달라고 악을 쓰다 급기야 실신까지 하고. 오매불망 애타게 구조소식을 기다리는 가족들을 무슨 말로 위로할 수 있으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떻게 국내에서 가장 큰 여객선을 운항하면서 경험도 부족한 3등 항해사에게 키를 맡겼을까? 그리고 휴식을 취할 건 뭔가? 왜 초기에 제대로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았을까? 초기에 대피하라는 방송만 했더라도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다고 하는데. 승객들에게 왜 자리를 이탈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종용했는지. 우왕좌왕하는 30분 동안 탈출 기회를 놓쳐 버렸다니. 인생에는 늘 적절한 기회가 있는 법인데. 왜 늑장 교신을 해서 상황을 더 악화시켰는지. 그것도 엉뚱한 곳으로.

승객들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데 선장과 선원, 조타수는 모두 성공적으로 빠져나왔다고? 자기들만 살자고 앞다투어 탈출한 직원들이 너무 야속하다. 승객들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목숨을 담보하고 승객 구출에 애쓰던 박지영 씨나 교사들에게 부끄럽지도 않던가. 한 명이라도 더 구조하기 위해 칠흑같이 어두운 곳으로 잠입하는 잠수팀도 있는데.

많은 주변국들로부터 위로와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조타실에 있어야 할 선장과 선원들의 얌체 행동은 국제적 수치다. 더구나 정부와 대책본부가 보여준 위기 대처 능력도 정말 부끄럽다. 특히 중국은 한국을 대놓고 비꼬지 않던가.

가슴을 죄며 땅을 치고 통곡을 해도 시원치 않은 실종 가족들이 있는데, SNS를 통해 근거 없는 괴담을 늘어놓는 사람들도 있다. 더구나 이렇게 마음 아픈 사건을 이용해 잇속을 챙기는 자들도 적지 않다. 더구나 스미싱 문자를 통해 사람들을 우롱하는 이들은 도대체 양심이란 게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비규환 속에서도 박수를 쳐주고 싶은 이들이 있다. 죽음의 그림자가 덮쳐오는 때에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고, 죽어가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구출하려고 애썼던 이들. 그러다가 자신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간 사람들.

물이 가슴까지 차오르는 때에도 자기 살 궁리를 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챙겨주던 안내방송 담당 승무원 박지영 씨. 그의 장례식은 눈물을 자아내게 했다.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어 친구에게 건네고, 다른 친구를 구하기 위해 애쓰다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온 단원고 정차웅 군. 이들은 정말 영웅이다.

사랑하는 딸의 장례식장에서 어머니가 절규했다. "아이고 내 딸아.... 이게 무슨 일이냐.... 이렇게 가면 안 된다." 딸의 시신을 보고도 꿋꿋하고 의연하게 참아내던 아버지도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그 딸은 안산 단원고등학교 최혜정 교사이다. 그는 침몰 당시 학생들을 대피시키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잘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알려진, 참 좋은 교사였는데. 갑판까지 올라갔다가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객실로 내려간 단원고 교사 남윤철 씨. 학생들을 구명보트에 태워놓고, 자신은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갔다. 학생들이 전부 구명조끼를 입고 올라갈 때까지 계속 난간에 매달려 학생들을 돕고 있었다고 한다.

안산 단원고교 여자 탁구팀, 이들은 제60회 전국남녀종별선수권대회 여자 고등부 단체전 결승전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이들은 기뻐할 수도 없었다. 우승컵을 치켜들면서 그들은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일제히 쏟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도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참담한 소식을 들은 이들은 경기를 포기하려 했다. 그러나 코치의 설득으로 끝끝내 경기를 해냈다. 친구들과 후배들을 생각하면서 이를 악물고 경기를 했다. 그들의 영전에 우승컵이라도 바치려는 심산으로.

인솔 단장으로 수학여행길을 주도했다가 여객선 침몰 참사를 당한 단원고 교감, 그는 선박에서 구조된 뒤 자신만 구조됐다며 자책해 왔다. 결국 진도 실내체육관 인근 야산 소나무에 목을 매고 자살했다. 그의 지갑에서는 편지지에 손으로 쓴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200명의 생사를 알 수 없는데 혼자 살기에는 힘에 벅차다. 나에게 모든 책임을 지워 달라. 내가 수학여행을 추진했다. 내 몸뚱이를 불살라 침몰 지역에 뿌려 달라.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까?"

사고 당시 정해진 매뉴얼대로만 했더라도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충분한 구명 뗏목이 있었는데 써 보지도 못하고 참사를 당했다고 한다. 혹시 우리 역시 그런 인생을 사는 건 아닌지. 인생을 위한 하나님 말씀이라는 매뉴얼이 있는데도 편법을 찾지 않는지. 불법을 자행하고 있지는 않는지. 아무리 급박하고 위급한 상황에도 매뉴얼대로 가는 게 가장 중요한 것을.

나는 틈만 나면 구조 작업에서 눈을 떼지 않으려 했다, 한 명이라도 구출되는 것을 바라면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출하기 위해 군인들이 동원되고, 경찰들이 나섰다. 게다가 민간 잠수원들도 투입되고, 어민들까지 발 벗고 나섰다. 차가운 바닷바람일 텐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넘실거리는 파도에 휘말릴 수도 있는데. 낮에도 어렵건만 야간수색도 마다하지 않고. 잠수팀들은 칠흑같이 어두운 선체로 진입하기 위해 애썼다. 마지막까지, 한 명이라도 더 구출하기 위해. 모두에게 정말이지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신신당부하고 싶다. '제2의 세월호'가 나오지 않도록, 이제는 철저하게 점검하기를. 사후약방문이 되지 않도록.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지 않도록 관계 당국에서 철저하게 사전 관리를 해주기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