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규 목사.
(Photo : 기독일보) 박석규 목사.

두 채의 집에 대한 비유 말씀이 마태복음 7장에 있다.
모래 위에 지은 집과 반석 위에 지은 집이다.
자기가 살 집을 모래위에 짓는 정신나간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성경에 보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이가 있다.

이 말씀을 읽으며 충격 받았을 복음성가 가수이며 무디전도단 음악 전도사이던 필립 폴 블리스(Philp Paul Blliss)가
'잘 짓고 잘 짓세 우리 집 잘 짓세
만세 반석 위에다 우리집 잘 짓세'
'잘 짓세, 잘 짓세' 가 후렴에 네 번이나 강조되는 379장 찬송을 작시 작곡했다고 하는데 작사자를 미상으로 보는 이가 있기는 하다.

379장을 이해하는데 블리스의 생애가 도움을 준다.
그는 30세의 젊은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 작사 작곡한 작품을 정리할 기회가 없었을런지 모른다.
1838년 펜실베니아 클리어필드(Clearfield)의 통나무 움막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환경이라 학교에 갈수 없어 농장과 벌목장서 노동을 하다 12세에 복음을 받고 중생을 체험한 후 축복의 길이 열렸다.
원래 이름은 Philipp Bliss이다. 크리스천이 된 후 이름 끝에 두 'P'를 분리시켜 미들 네임을 Paul 이라하여 Philip Paul Bliss가 되었다.
바울처럼 살고 싶어 그랬을거다.

필립 폴 블리스가 된 그는 엘크런(Elk Run) 부근의 침례교회에 출석하면서 저명하고 친근한 타우너(J.G. Towner) 교수를 만나 음악에 눈을 뜨고 교육을 받아 음악 교사가 되고 뉴욕 게네시오 음악 사범학교에 입학하여 배우기도 하였다.
음악교사가 되어 독창자요 지휘자로 이름이 알려진다.
해성처럼 나타난 전도자 D.L. 무디(Moody)를 만나 그의 격려와 권유로 무디 전도단 독창자로 헌신한다.
그러면서 珠玉같은 찬송을 많이 작사 작곡하였다.

우리 찬송가에 그가 남긴 찬송이 많다.
159장 '할렐루야 우리 예수'
183장 '내 너를 위하여'
235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241장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
276장 '하나님의 진리 등대'
470장 '내 평생에 가는 길' 외에 애창되는 찬송이 더 있다.
필립 폴 브리스는 특별한 은사와 축복을 받은 찬송가의 寶庫 같다.

그는 시카고 무디 교회의 집회 예약으로 추운 겨을 1876년 12월 29일 시카고를 향해 가던중 오하이오주 애수타부라(Ashtabula) 계곡에 이르렀을 때 철교가 무너져 기관차와 객차 7량이 얼은 강물로 추락하는 대형 사고가 일어났다.
블리스는 차창을 부수고 나왔으나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황급히 물속으로 들어 갔다가 화염에 휩싸여 나오지 못했다.
목숨을 잃은 사람이 무려 92명이다.
블리스도 그때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필립 폴 블리스가 남겨 놓은 찬송 유산이 그의 이름과 함께 기리기리 빛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여전히 영광을 받으시고 계시다.

이제 찬송가사로 돌아가자
'주의 말씀 듣고서 준행하는자는 반석위에 터닦고 집을지음 같아
비가 오고 물나며 바람 부딪쳐도 반석위에 세운집 넘어지지 않네

반석위에 터닦고 집을 지어야 무너지지 않는다.
반석이 어디인가?
말씀이다. 믿는 믿음이다.
그 말씀, 그 교훈 위에 터닦고 遵行하며 집을 지어야 한다.
그런데
불신앙 위에, 권력 위에, 돈 위에, 음란 위에, 시기, 질투, 교만, 허영, 욕심, 위에 집을 짓는 이가 많다.
결국은 모래위에 터닦고 집을 짓는게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잘짓고 잘짓세 우리 집 잘짓세
만세반석 위에다 우리집 잘짓세

순종과 불순종의 선택이 언제나 앞에 놓여 있다.
이거냐! 저거냐!
이것이 문제로다.

성공과 실패는 선택 여하에 달려 있다.

세계 도처에서 건물 붕괴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아파트가 무너진다. 축대가 무너진다. 교량이 무너진다.
최근 한국에서 경주 리조트 체육관이 무너져 부산외국어대학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했던 대학생 100여명이 건물 더미에 깔리고
10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건물 안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색깔도 그럴사하고 건물 외형도 아름답게 보이나 부실하니 붕괴되고 말았다.

모래위에 지은 집과 반석위에 지은 집도 외형으로 보기에 차이가 없게 보인다.
그러나 폭설 내리고 폭우 몰아치면 그때 모든게 드러난다.

3절 가사를 보자
'세상 모든 사람들 집을 짓는 자니 반석위가 아니면 모래위에 짓네
우리 구주 오셔서 지은 상을 줄때 세운공력 따라서 영영 상벌 주리'
그렇다
세상 모든 사람은 집을 짓고 있다.
이 집은 신자의 신앙생활과 그 결과를 건축에 빗대어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지금 집을 짓고 있다.
우리 모두는 조만간 심판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알아야 한다.
지금 육체 가운데 살면서 우리는 영원한 집을 짓고 있다.
제한된 시간이 특별한 은총의 세월이다.
세월을 아껴야 한다 그것이 지혜이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다.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그렇다
세운 공력 따라서 영영 賞罰 받는다.

'말씀대로 遵行하며 살아야지' 결단하는 우리들 이제
순종이다. 100%다. 100% 순종이어야 한다
노아 방주를 보자.
잣나무로 짓되 그 안에 간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밖에 칭하고 장이 300규빗, 광이 50규빗, 고가 30규빗이며 창을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문은 옆으로 내고, 상중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하신다.
그대로 해야 한다. 100% 그대로 해야 한다.
행여 장이 299되도 안되고, 광이 49되도 안되고, 고가 29되어도 불순종이요 부실 공사다.
'적당' '적당히' 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구멍나고 물새어 가라앉을 방주를 짓는게 아닐까...

나이를 먹으면서 깨닫는게 많다.

과연 오래 살아야 집을 잘 짓는 걸까.
행여 애써 지어놓은 집을 허물고 있는건 아닐까.

집을 다시 지을 시간적 여유가 없을지 모르는데 ...
우리 한번 솔직하게 진단해 보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