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2박 3일간, 딸아이와 함께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교회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해변가에 누워, 파도, 바다, 하늘, 구름 등 제가 그리도 좋아하는 자연 속에 둘러싸여 편안한 시간들을 보내고 왔습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 것이 생각납니다. “자연은 연주 여부와 상관없이 언제나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심포니이다.” 과연 오랜만에 찾은 해변가는 마치 교향곡과도 같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 자연을 좋아하는 것일까? 왜 수평선만 바라보아도 눈물이 날 것 같고 망망한 바다의 모습만 눈에 들어와도 가슴이 뛰기 시작하는 것일까?” 혼자 되묻다가 답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로 자연 속에서 천국의 흔적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진정, 저는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천국의 흔적을 발견합니다. C.S.루이스와 필립 얀시가 영적인 아버지라 부르는, 영국이 낳은 천재적인 예술가이며 기독교문학가인 G.K. 체스터트의 글 중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 기쁨의 순간들은 난파선에서 흘러나와 바닷가 모래밭에 박힌 채 파도에 씻기고 있는 유품들, 다시 말해서 오랜 시간을 흘러내려온 천국의 부스러기이다.”

이번 휴가동안, 온통 자연 속에 묻혀서 지내다보니 이‘천국의 부스러기’라는 말이 계속하여 생각났습니다. 머나먼 나라, 천국에서 흘러내려온 유품과도 같은 천국의 아름다운 흔적들을 가지고 있는 마치 자연과도 같은 순수한 사람들, 그들과 가졌던 소중한 만남의 기억들이 해변가에서의 조용한 시간동안 제 마음의 묵상 가운데 떠올랐습니다. 남을 미워할 줄 모르고, 불평할 줄도 모르고, 그저 선한 것 외에는 생각할 줄 모르게 창조된 듯 보이는 순수한 영혼들, 늘 위로하고 격려하며 기뻐하고자 애쓰는 아름다운 마음의 소유자들, 그들의 잊을 수 없는 섬김, 따뜻한 미소, 그들과 함께했던 유쾌했던 순간들이 겹쳐오며 떠 올랐습니다. 그리고 저는 마치 귀한 유품들을 챙기듯, 그 소중한 기억들을 마음속에 다시금 챙겨두었습니다.

천국의 부스러기들…, 언제고 천국이 생각날 때는 살며시 꺼내어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런 상념들 속에서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수평선 저 너머, 그 어딘가에는 이 같은 유품의 본고장, 천국이 있을 것만 같았고, 그 곳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파도소리와 함께 들리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과연 해변가의 자연은‘천국 교향곡’을 장엄하면서도 영감있게 연주하는 듯 여겨졌습니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이 땅에서 서글픈 순간들이 있을지라도, 천국의 부스러기 같은 소중한 영혼들, 만남들을 기억하면서 열심히 살겠습니다. 언젠가 부스러기가 아닌 온전한 영광의 주님을 뵈올 그 날을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 3:18)

/글 이성자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