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목회의 현장에는 수많은 갈등들이 내습하게 된다. 목회자를 청빙 하면서 교인들의 의견들이 엇갈린다. 장로와 집사를 선출하면서 서로 간의 견해 차이가 분분하다. 새로이 담임목회자가 부임하면서 그 목회 스타일로 인해 교인들의 의견이 구구 각색이다. 교회 건물을 증축 할 것인가 신축할 것인가를 놓고 교인들이 격론을 벌인다. 이러한 갈등으로 인해 담임 목사가 십자 포화를 맞으면서 사임하기도 한다. 교인들 간에 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교회 내의 불화와 반목이 일기도 한다. 심한 경우 교회가 쪼개지게 된다.
사도행전을 보면 마가 요한의 동행 문제로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심한 갈등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두 사람은 각각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두 사람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각기 서로의 길을 인정하고 계신다. 갈등이 없는 교회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떠한 교회도 갈등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오히려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에 따라 그 갈등이 공동체에 유익을 주기도 하며 더욱 더 건강하게 성장하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교회란 그 공동체의 독특성으로 인해 어느 사회 단체나 공동체보다도 갈등이 많은 편이다. 그러기에 갈등을 대처해 나가는 지혜가 어느 곳보다도 더 요구되는 것이 교회이다. 그렇지만 적지않은 교회들은 흔히 갈등을 몹쓸 존재로 받아들인다.
한국 교회에서는 늘 만장 일치를 은혜로 생각한다. 모든 교인들이 100% 찬성할 때 그것만이 은혜로운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갈등이란 완전치 못한 인간으로 구성된 공동체에 있어서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갈등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갈등을 불평하기보다는 갈등을 지혜롭게 관리하고 극복해 나가는 리더십을 키워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갈등이란 원래 ‘부딪힌다’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하고 있다. 어원적으로는 ‘함께 부딪힌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즉 갈등이란 둘 이상의 주체가 동시에 한 공간이나 목표를 점유하려고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모든 갈등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자기 중심적인 사고 방식으로 인해 나타난다. 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죄성이라는 신학적인 원인을 가지고 있다.
교회에서는 갈등의 요소들이 많다. 가장 큰 갈등의 요소는 신앙이나 성경의 해석을 놓고 생기는 본질적인 갈등이 있다. 이민 교회에서는 자원이 제한되어 있으므로 한정된 예산, 한정된 사람, 한정된 공간을 놓고 때때로 부서와 부서끼리, 교인끼리,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가 갈등을 빚게 된다. 설교자가 예화를 많이 들면 거룩하지 못하다고 지적을 한다. 설교자가 너무 본문만을 설교하면 지루하다고 불평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방향을 놓고 대립이 일게 된다.
특히 이민 교회는 1세와 2세의 갈등이 첨예한 편이다. 1세들은 아무래도 모국 지향적이다. 일을 처리할 때 감성적이고 희생적이다. 그에 반해 2세들은 논리적이고 자기의 것에 대한 분명한 소유를 주장한다. 그러기에 갈등이 나타난다. 교회가 성장하며 초창기 교인들과 새로 들어온 교인들 간에 때때로 심각한 대립 양상이 종종 나타난다. 교회라는 활동 자체가 상호 배타적인 양상을 보일 때가 많다.
갈등을 맞이할 때 그 갈등을 대처해 나가는 방식도 여러 가지이다. 어떤 교인들은 침묵을 지킨다. 어떤 교인들은 갈등이 심화될 때 교회를 뛰쳐나가기도 한다.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다. 요즘에 특히 젊은 교인들은 그 부모님 세대만큼 교단에도 충성을 보이고 있지 않다. 기존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서슴지 않고 자기들만의 교회를 만들고 있다. 현재 미국내의 한인 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적지 않은 2세 교회들이 우후죽순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교회 내의 수많은 갈등들을 어떻게 이겨 나갈 것인가? 우리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란 섬김의 공동체이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교인들을 향하여 서로 종의 자세를 견지하라고 충고한다. 그리스도의 마음이란 무릎을 꿇고 종의 마음으로 서로의 발을 씻어 주는 마음이다. 감리교에서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본질적인 것에서는 일치, 지엽적인 것은 관용, 그리고 모든 것에 있어서 사랑’이라는 구호처럼 살아간다면 적지 않은 갈등의 문제가 조용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