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규 목사.
(Photo : 기독일보) 박석규 목사.

이호운 목사의 찬송 두 편이 우리 찬송가에 실려 있다.
주옥같이 귀한 찬송으로 널리 애창되고 있다. '부름받아 나선 이 몸'(355장)과 '나 이제 주님의 새생명 얻은 몸'(493장)이다.
특히 '부름받아 나선 이 몸'은 소명과 충성의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한국의 중앙신학교를 위시하여 많은 신학교 졸업가로 불리우기도 한다.
단호한 결심과 비장함, 목숨도 내놓으려는 각오가 서려있다.
부름받은 사역자들이 이 세상을 향하여 나가면서 부르는 찬송으로 이보다 더 좋은 찬송이 어디 있으랴...
놀라운 투지요 희생을 무릅쓴 戰歌 같다.

찬송가에는 작시자의 신앙과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호운 목사는 평남 강도군 에서 태어나 만주 용정의 영신중학을 마친후 교역에 뜻을 두고 1936년 감리교신학교를 졸업한다.
40세 늦은 나이 유학길에 올라 시카코 북부 에반스턴 개렛 신학교 에서 수학하던 1950년3월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을 썼다.
돌아보면 두고 온 고국이 2개월후 북한의 남침으로 6.25동란이 일어난다.
페허된 도시, 파괘된 건물, 무너진 교회가 즐비하다.
돌아가 일할 조국의 형편이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따라갈 각오와 결심이 보인다.
그러니 무엇이 막을 수 있느냐, 1절에 피력하고 있다.
부르심에 감사하며 죽도록 충성하겠다고 결심한다.
황막한 사막이나 죄와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소돔 같은 거리에도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음 들고 찾아가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라고 한다.(2절)

그는 그렇게 살았다.
그의 업적 공헌 가운데 대전감리교신학교 오늘의 목원대학을 빼노을 수 없다.
서울에 감리교신학교가 있으니 미래를 위해 중부에도 신학교가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1954년 대전에 감리교대전신학원이 발족한다.
1957년 감리교신학교로 발전하고 이듬해 이호운목사가 교장으로 취임하여 학교를 발전시키더니 65년에 감리교신학대학으로 인가받아 학장이 된다. 학교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1972년 이호운 목사의 호 牧園을 딴 牧園大學이 된다.
현재는 신학대학, 대학원은 물론 5개 대학원, 8개 단과대학, 14개 학부, 24개 학과로 중부지역 최대의 명문 대학이다.

이 거대한 학교의 배후에 이호운 목사의 기도, 꿈, 땀, 눈물, 생명이 진하게 배어있다.
남다른 선견지명을 가지고 산자락을 구입 개간하고 잣나무를 심은 흙의 사람, 땅의 친구 이다.
꿈을 좆으면서 내짐 남의 짐 할것 없이 다지고 무겁게 시달리는 중에도 희망의 등불을 간직한 믿음의 사람이며 심중에는 찬양이 끊이지 안았다.
학교가 자라는 것을 기뻐했고 입은 피해를 보고 슬퍼 했다.
'학교는 나의 기쁨, 슬픔 이다. 학교가 나의 재산, 나의 영광이다, 나에게는 다른 욕심이 없다.'
부르심을 받아 나선 몸다웁게 진데 마른데 가리지 않고 멸시와 천대를 받아도 감사하며 존귀와 영광이 주께만 돌아가도록 충성을 다 하였다.
제자들 에게
'큰 교회 가려고 넘실거리는 너절한 목사가 되지말고 꿈을 가진 그리고 신념있는 목사가 되라.' 고도 했다.

그는 3절에서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고 고난의 십자가는 자신이 질것이라고 한다.
이는 어떤 영광을 바라서가 아니라 그저 감사하며 십자가를 지겠다는 것이며 남모르게 봉사하여 섬기겠다 다짐하고 있다.
부르심에 대하여 얼마나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충성을 다짐하고 있느냐 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자신이 쓴 가사대로 살았다.
주님 가신 길은 멀고 험한 길이다. 눈물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이며, 희생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이다.
주님이 가신 길이므로 가야 한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따라가야 한다.
이호운 목사 그분은 그렇게 십자가의 길을간 분이다.
오로지 대전신학교를 위하여 그의 몸을 돌보지 않고 심혈과 정열을 바쳐 일하느라 오해, 멸시, 시기를 받으며 과로에 지쳐 1968년12월 신경성 고혈압 뇌출혈증으로 쓰러졌다.
이듬해 1월25일 한참 왕성하게 일할 나이 58세를 일기로 안타깝게 소천하였다.
정동제일감리교회에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유가족, 교수, 제자, 교우의 오열속에 '부름받아 나선 이 몸'을 처음 작고했던 박재훈박사가 눈물을 참다 끝내 흐느끼는 반주 속에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을 부르며 牧園을 하늘나라로 보내드렸다.

필자가 서울근교 부대 군목으로 복무하던 때라 비보를 듣고 달려와 장례예배에 참석하여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울며 불렀던 기억이 아름답게 남아 있다.
'부름받아 나선 이 몸'을 부를 때마다 그때 일이 생각 난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 서울감리교신학대학에서 공부한 나는그분의 강의를 직접 듣지는 못했어도 설교과 특강을 들은 기억이 있다.
참으로 소박하며 열심있고 성실하시며 지칠줄 모르는 신앙의 열정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