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도전하셨던 말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는 단지 제자들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하시는 도전일 것이다. 성막의 성물들을 잘 활용하면 체계적이고 복음적인 기도를 할 수 있다.
이번에는 그 첫 번째 기도를 성막의 번제단을 활용하여 번제단이 상징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기도하는 것을 말하려 한다. 먼저 번제단은 성전 마당에 있는 것이다. 그 길이가 2.3미터이고 넓이가 2.3미터 그리고 높이가 1.4미터로 된 희생 재물을 드리는 단이다. 그 단의 네 귀퉁이에는 네 개의 뿔이 있다. 죄를 심판하는 권위의 상징으로 주신 것이고 그 곳에서 희생 제물을 드리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 나아 갈 수 가 없었다.
첫 번째, 번제단을 생각하면서 찬양과 감사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므로 기도를 시작한다. 성경의 기도를 분석해 보면 거의 모든 기도가 다 찬양과 감사로 시작하고 있는 것을 본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문에서도 보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시작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것은 찬양의 말이다.
첫째,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우리를 위하여 희생재물로 주신 것을 찬양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이것 보다 더 더 낳은 찬양이 있을까? 하나님께서 하신 일 중에 가장 위대한 일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이다. 그 놀라운 사랑을 찬양하는 것이다. 아담이 범죄한 직후에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창3:15)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삭은 아들을 번제로 드리려고 모리아 산을 오르고 있었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창22:7)라고 물었다. 이것은 전 인류의 질문이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사역을 막 시작 하셨을 때 침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키면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라고 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다.
둘째, 예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것이다. 은혜라는 말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자격과 공로가 없는 자에게 거저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주님의 사랑이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오직 주님의 은혜에 근거한 것이다. 성경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2:8-9)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은 내가 받아야 할 저주와 심판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품에 안긴 영화로운 아들이나 딸이 된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고 하신다. 예수님은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단번에 이루신 것이다.(히9:12)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고 선언 하셨다. 십자가의 승리를 소리 높여 찬양해야 하는 것이다.
구원과 관계된 은혜는 물론이고 매일의 삶 속에 부어지는 예수님의 측량키 어려운 풍성하신 은혜를 깊이 생각하고 찬양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도는 신나는 것이고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고 애틋한 사랑을 계속하여 고백하고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의 여유에 따라 얼마든지 주님의 베푸신 은혜를 다 많이 찬양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복음적인 기도이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기도인가?
셋째, 성령님의 조명을 찬양하는 것이다.
1.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가 주님을 알 수 없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고 성경은 말씀한다.(고전12:3) 성령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주신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셨기에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과 생애 속에 모신 것이다. 성령의 깨닫게 하심은 엄청난 찬양 거리이다. 구원과 관련하여 마음의 눈을 열어 주신 것을 찬양해야 한다.
2.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것에 대하여 찬양을 드린다.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3. 성령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시는 역사에 대하여 찬양해야 하는 것이다. 성령님께서 사역의 문을 열어 주시는 역사를 하신다. 바울은 이것을 “내게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리고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니라.”라고 고린도전서 16장 9절에서 표현하고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감사로 기도를 시작 하는 것은 성경적이고 체계적이며 복음적인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렇게 삼위 일체 되시는 하나님을 기도 할 때마다 찬양하고 깊이 교제하게 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기도에 대한 의욕이 생기고 활기가 넘치게 되는 것을 기도하면서 경험하게 될 것이다.
라피엣한인교회 담임 심윤수 목사
이번에는 그 첫 번째 기도를 성막의 번제단을 활용하여 번제단이 상징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기도하는 것을 말하려 한다. 먼저 번제단은 성전 마당에 있는 것이다. 그 길이가 2.3미터이고 넓이가 2.3미터 그리고 높이가 1.4미터로 된 희생 재물을 드리는 단이다. 그 단의 네 귀퉁이에는 네 개의 뿔이 있다. 죄를 심판하는 권위의 상징으로 주신 것이고 그 곳에서 희생 제물을 드리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 나아 갈 수 가 없었다.
첫 번째, 번제단을 생각하면서 찬양과 감사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므로 기도를 시작한다. 성경의 기도를 분석해 보면 거의 모든 기도가 다 찬양과 감사로 시작하고 있는 것을 본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문에서도 보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시작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것은 찬양의 말이다.
첫째,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우리를 위하여 희생재물로 주신 것을 찬양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이것 보다 더 더 낳은 찬양이 있을까? 하나님께서 하신 일 중에 가장 위대한 일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이다. 그 놀라운 사랑을 찬양하는 것이다. 아담이 범죄한 직후에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창3:15)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삭은 아들을 번제로 드리려고 모리아 산을 오르고 있었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창22:7)라고 물었다. 이것은 전 인류의 질문이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사역을 막 시작 하셨을 때 침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키면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라고 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다.
둘째, 예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것이다. 은혜라는 말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자격과 공로가 없는 자에게 거저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주님의 사랑이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오직 주님의 은혜에 근거한 것이다. 성경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2:8-9)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은 내가 받아야 할 저주와 심판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품에 안긴 영화로운 아들이나 딸이 된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고 하신다. 예수님은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단번에 이루신 것이다.(히9:12)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고 선언 하셨다. 십자가의 승리를 소리 높여 찬양해야 하는 것이다.
구원과 관계된 은혜는 물론이고 매일의 삶 속에 부어지는 예수님의 측량키 어려운 풍성하신 은혜를 깊이 생각하고 찬양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도는 신나는 것이고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고 애틋한 사랑을 계속하여 고백하고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의 여유에 따라 얼마든지 주님의 베푸신 은혜를 다 많이 찬양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복음적인 기도이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기도인가?
셋째, 성령님의 조명을 찬양하는 것이다.
1.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가 주님을 알 수 없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고 성경은 말씀한다.(고전12:3) 성령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주신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셨기에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과 생애 속에 모신 것이다. 성령의 깨닫게 하심은 엄청난 찬양 거리이다. 구원과 관련하여 마음의 눈을 열어 주신 것을 찬양해야 한다.
2.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것에 대하여 찬양을 드린다.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3. 성령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시는 역사에 대하여 찬양해야 하는 것이다. 성령님께서 사역의 문을 열어 주시는 역사를 하신다. 바울은 이것을 “내게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리고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니라.”라고 고린도전서 16장 9절에서 표현하고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감사로 기도를 시작 하는 것은 성경적이고 체계적이며 복음적인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렇게 삼위 일체 되시는 하나님을 기도 할 때마다 찬양하고 깊이 교제하게 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기도에 대한 의욕이 생기고 활기가 넘치게 되는 것을 기도하면서 경험하게 될 것이다.
라피엣한인교회 담임 심윤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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