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3: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주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11 이 닦아 둔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힘쓰고 공들여 놓은 것을 공력(功力)이라 합니다. 이 공력이 심판 날에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동양과 서양의 문물이 교차하는 곳으로 무역이 성행했습니다. 무역이 성행하고 항구도시이다 보니 온갖 미신 우상을 섬기는 일이 많고 음란 방탕하고 타락한 죄악의 도성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이 그곳에 가서 교회를 세웠는데, 교회를 나오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자기 생활여건이 어려움이 없고 여유 있는 생활인이 많았습니다. 때문에 신앙이 영적인 내세소망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육신의 세상 조건으로 교회 분위기를 휩쓸거나 자기 존재를 의식시키려는 폐단이 많았습니다. 자기를 돋보이게 하고 싶어 분위기를 유도하지만 자기 혼자서는 잘 안되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를 목회했던 여러 사람들 중에서 인맥을 형성하고자 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또는 예수파라고 하면서 파당을 지어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었습니다.
1. 심판 날에 나타날 공력- 맡겨진 소임에 충실
교회는 죄인들이 들어와서 진리를 깨달아 회개하고 거듭날 때 성령님이 오셔서 인치심으로 하나님 자녀라는 신분보증을 하시고 그 성령에 이끌려서 하나님 뜻을 받들어 하늘나라 확장을 위하여 더 많은 영혼을 전도해서 구원하고 예수 그리스도 나라에 더 많은 영혼이 들어가서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서 말씀과 성령에 이끌리며 쓰임 받는 영적 체질 신앙을 가꾸는 곳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예수님이 걱정하시는 교회였고 성령님이 실망하시는 교회였습니다. 파당을 지어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폐단이 있었다는 것은 교회의 망조입니다.
고린도전서3:1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이 말씀은 3장 편지 모두에 전제하는 서술입니다. 이 말씀의 내용에 따르면, 고린도 교회를 보는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신령한 믿음의 사람들이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영적 체질 신앙이 아니라 육에 속한 상태로 아직도 죄인 그대로 교회만 들락거리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소망을 위하여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여 하늘나라 들어가도록 애쓰지 아니하고 자기 설 자리를 만들고 행세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며, 교회 분위기를 자기가 좌지우지 하려고 하니 이들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교회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돈도 뿌리고 선물도 사주며 자기 파당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망조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에 휩쓸리는 영혼도 천국가기가 참으로 어렵다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노골적으로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다 너희 믿음이 신령한 믿음이 아니고 육에 속한 상태,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 대함같이 하노라”고 말합니다. 어린아이로 취급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전3:2)고 합니다.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3:3) 시기와 분쟁이 있다는 것은 곧 육신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4절에는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이처럼 파당을 짓는 사람들은 신앙인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볼로나 바울은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씨를 심었다고 합니다. 그 위에 아볼로는 물을 주면서 빨리 생명의 싹이 나기를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보며 가꾸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의 싹이 나서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온전히 성령의 몫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목적은 지옥 갈 영혼이 천국가기 위한 목적뿐이어야 합니다.
그간에 많은 교역자들이 교회사역을 보조하기 위하여 오기도 하고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목자는 당회장 한 사람이고 그 외에는 보조교역자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씨앗을 뿌리고 그들이 교구 단위로 교역을 맡아 감당할 때에 열심히 물을 주고 싹이 나게 해서 그 싹이 자라고 결실하도록 열매를 맺어 하늘나라 들어가도록 애씁니다. 그러나 어느 교역자라도 누구든지 하나님과 양떼인 여러분 사이에 자기라는 것이 끼어서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양떼를 예수님께 직결시켜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알되 깊게 알고 믿어지는 믿음으로 그 분과 연합해서 그 분의 나라인 하늘나라에 성령으로 인도받아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당회장이고 목자라 해도 여러분과 예수님 사이에 중매장이 역할 외엔 없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표현에 의하면 자신을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신랑된 예수께 중매하는 중매장이라 했습니다. 중매는 신랑감 신부감 사이에 서로를 이해하도록 소개시켜서 마음이 맞고 뜻이 맞고 여러 가지로 기대가 넘쳐서 부부가 되어 짝을 이루고 가정을 만들도록 하는 것인데 중매장이가 그 중간에 계속 끼어 있다면 도움이 안되고 훼방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믿음이 어릴 때는 어머님 품에 맴돌고 어머니 품에서 벗어나면 죽을 것만 같았는데 조금 더 자라게 되면 어머니 품을 떠나서 유치원도 다니고 학교도 다닙니다. 좀 더 자라서는 이성에 눈을 뜨고 짝을 찾느라고 연애할 때에는 왠지 부모님이 부담스럽고 장애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것을 관계원리라고 하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목자에게 데려다 맡기신 것은 목자로 하여금 여러분들을 영적 표현으로 영원한 신랑 되실 예수님께 중매하라고 목자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믿음이 수준급 이상으로 성숙되면 목자가 없어도 자기 혼자 기도, 봉사, 전도, 구제도 하고 예수님을 아주 당당하고 자신만만하게 자랑하고 증거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모든 중매자들은 죄인이 예수님을 알고 믿음으로 회개하고 예수님과 연합했으면 옆에 물러나 그 구원 얻은 성도로 하여금 예수님 마음에 들고 예수님 기대가 새로워져서 더 알뜰한 관심으로 세밀히 보살펴 주시고 예수님 나라에 더 요긴하게 쓰임 받도록 옆에서 지원해야 합니다.
본문 10절에 보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들과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은교회는 39년전 5월 17일 옥수동에서 골방 하나 얻어서 시작했습니다. 삼각산에 가서 며칠 단식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 우리 내외 둘이서 시작한 교회가 이제는 많은 사람들로 채워졌습니다. 예수님이 택하신 백성을 불러내시어 목자에게 책임지워 맡기신 것입니다. 이 영혼을 진리를 깨닫게 하고 성령으로 회개하며 거듭나게 해서 믿음으로 성장하고 성숙된 결실로 하늘나라에 들여보내야 한다는 책임을 맡기신 것입니다.
2. 심판 날에 나타날 공력- 그리스도의 심장 소유
이 책임 목회라는 중심에는 그리스도 심장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심장이 목자에게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심장을 갖고 애를 쓰며 가르쳐도 세상 떠날 때 하늘나라 들어 가지 못하는 사람을 보기도 합니다. 천국에 가지 못한 사람은 왜 그런지 하나님은 구분을 지어 말씀하십니다. 디모데 전서 3:15에 보면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터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 위에 세워진 믿음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세워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확실할 때 예수님 터 위에 자기 믿음을 가꾸어 가야 되는 것입니다.
본문 12절~13절에 보면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합니다. 공력이라는 것은 자기가 힘들이고 공들여서 만들어 온 결과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불로 심판하실 때 불에 타지 아니할 보석이 있고 불에 금방 타버리고 재가 되어 금방 흩어지고 말 나무, 풀, 짚으로 세우는 믿음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지막 심판이 아니고 중간 심판 때에 받게 되는 것인데 그날에 나무나 풀, 짚처럼 활활 타버리고 재는 바람에 흩어지고 나면 흔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헛수고한 신앙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금이나 은이나 보석은 아무리 불로 태워도 타지 않습니다.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영원불변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계신 분이고 변치 않으시는 분이고 한량없으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 얻고자 하는 것은 그 예수님과 같이 우리도 영원불변 무한한 존재로 예수님과 더불어 영생복락을 누리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과 영원히 같이 살기 위해서는 내가 믿음 생활을 시작해 예수님 품에 들어갈 그때까지 영원불변한 공적을 쌓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같이 살 때에 공력이 계속 빛나는 내 입장을 대변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믿기는 믿었고 회개도 했고 구원도 얻었다고 하지만 그 인생이 공력을 나무나 풀이나 짚 같은 것으로 대충 쌓고 다른 데에 목적을 두고 살며 체면을 위해 하나님을 적당히 섬기고 교인들과의 교제도 적당히 하는 풍조가 자리 잡으면서 우리나라가 망조가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1992년도부터 이단들이 시한부종말론을 가지고 못된 짓을 했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 중에 열성이 있는 사람들을 이끌어 내어 재산을 다 기증하게 하고 남의 재산을 수탈했습니다. 그래서 그 뒤에 나온 말들이 예수님을 믿되 부담없이 적당하게 믿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한국교회는 내리막길로 갔습니다. 부담없이 적당하게 교회 생활했다는 것은 풀이나 짚으로 쌓은 공적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한국교회에 많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자기 삶의 목적을 하나님께 두고 하늘나라에 들어갔을 때 어떤 자격으로 주님을 맞을 수 있을까, 자신이 교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그 일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 공적이 영원히 남아 있게 하기 위한 가장 보람되고 알찬 수고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직분과 직책들을 잘 감당하심으로 온 교회가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성령의 하나됨을 따라 타 없어질 것이 아닌 금이나 은이나 보석같이 영원히 빛날 수 있는 공적 쌓기에 힘쓰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힘쓰고 공들여 놓은 것을 공력(功力)이라 합니다. 이 공력이 심판 날에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동양과 서양의 문물이 교차하는 곳으로 무역이 성행했습니다. 무역이 성행하고 항구도시이다 보니 온갖 미신 우상을 섬기는 일이 많고 음란 방탕하고 타락한 죄악의 도성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이 그곳에 가서 교회를 세웠는데, 교회를 나오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자기 생활여건이 어려움이 없고 여유 있는 생활인이 많았습니다. 때문에 신앙이 영적인 내세소망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육신의 세상 조건으로 교회 분위기를 휩쓸거나 자기 존재를 의식시키려는 폐단이 많았습니다. 자기를 돋보이게 하고 싶어 분위기를 유도하지만 자기 혼자서는 잘 안되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를 목회했던 여러 사람들 중에서 인맥을 형성하고자 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또는 예수파라고 하면서 파당을 지어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었습니다.
1. 심판 날에 나타날 공력- 맡겨진 소임에 충실
교회는 죄인들이 들어와서 진리를 깨달아 회개하고 거듭날 때 성령님이 오셔서 인치심으로 하나님 자녀라는 신분보증을 하시고 그 성령에 이끌려서 하나님 뜻을 받들어 하늘나라 확장을 위하여 더 많은 영혼을 전도해서 구원하고 예수 그리스도 나라에 더 많은 영혼이 들어가서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서 말씀과 성령에 이끌리며 쓰임 받는 영적 체질 신앙을 가꾸는 곳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예수님이 걱정하시는 교회였고 성령님이 실망하시는 교회였습니다. 파당을 지어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폐단이 있었다는 것은 교회의 망조입니다.
고린도전서3:1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이 말씀은 3장 편지 모두에 전제하는 서술입니다. 이 말씀의 내용에 따르면, 고린도 교회를 보는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신령한 믿음의 사람들이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영적 체질 신앙이 아니라 육에 속한 상태로 아직도 죄인 그대로 교회만 들락거리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소망을 위하여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여 하늘나라 들어가도록 애쓰지 아니하고 자기 설 자리를 만들고 행세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며, 교회 분위기를 자기가 좌지우지 하려고 하니 이들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교회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돈도 뿌리고 선물도 사주며 자기 파당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망조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에 휩쓸리는 영혼도 천국가기가 참으로 어렵다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노골적으로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다 너희 믿음이 신령한 믿음이 아니고 육에 속한 상태,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 대함같이 하노라”고 말합니다. 어린아이로 취급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전3:2)고 합니다.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3:3) 시기와 분쟁이 있다는 것은 곧 육신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4절에는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이처럼 파당을 짓는 사람들은 신앙인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볼로나 바울은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씨를 심었다고 합니다. 그 위에 아볼로는 물을 주면서 빨리 생명의 싹이 나기를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보며 가꾸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의 싹이 나서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온전히 성령의 몫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목적은 지옥 갈 영혼이 천국가기 위한 목적뿐이어야 합니다.
그간에 많은 교역자들이 교회사역을 보조하기 위하여 오기도 하고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목자는 당회장 한 사람이고 그 외에는 보조교역자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씨앗을 뿌리고 그들이 교구 단위로 교역을 맡아 감당할 때에 열심히 물을 주고 싹이 나게 해서 그 싹이 자라고 결실하도록 열매를 맺어 하늘나라 들어가도록 애씁니다. 그러나 어느 교역자라도 누구든지 하나님과 양떼인 여러분 사이에 자기라는 것이 끼어서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양떼를 예수님께 직결시켜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알되 깊게 알고 믿어지는 믿음으로 그 분과 연합해서 그 분의 나라인 하늘나라에 성령으로 인도받아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당회장이고 목자라 해도 여러분과 예수님 사이에 중매장이 역할 외엔 없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표현에 의하면 자신을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신랑된 예수께 중매하는 중매장이라 했습니다. 중매는 신랑감 신부감 사이에 서로를 이해하도록 소개시켜서 마음이 맞고 뜻이 맞고 여러 가지로 기대가 넘쳐서 부부가 되어 짝을 이루고 가정을 만들도록 하는 것인데 중매장이가 그 중간에 계속 끼어 있다면 도움이 안되고 훼방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믿음이 어릴 때는 어머님 품에 맴돌고 어머니 품에서 벗어나면 죽을 것만 같았는데 조금 더 자라게 되면 어머니 품을 떠나서 유치원도 다니고 학교도 다닙니다. 좀 더 자라서는 이성에 눈을 뜨고 짝을 찾느라고 연애할 때에는 왠지 부모님이 부담스럽고 장애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것을 관계원리라고 하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목자에게 데려다 맡기신 것은 목자로 하여금 여러분들을 영적 표현으로 영원한 신랑 되실 예수님께 중매하라고 목자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믿음이 수준급 이상으로 성숙되면 목자가 없어도 자기 혼자 기도, 봉사, 전도, 구제도 하고 예수님을 아주 당당하고 자신만만하게 자랑하고 증거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모든 중매자들은 죄인이 예수님을 알고 믿음으로 회개하고 예수님과 연합했으면 옆에 물러나 그 구원 얻은 성도로 하여금 예수님 마음에 들고 예수님 기대가 새로워져서 더 알뜰한 관심으로 세밀히 보살펴 주시고 예수님 나라에 더 요긴하게 쓰임 받도록 옆에서 지원해야 합니다.
본문 10절에 보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들과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은교회는 39년전 5월 17일 옥수동에서 골방 하나 얻어서 시작했습니다. 삼각산에 가서 며칠 단식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 우리 내외 둘이서 시작한 교회가 이제는 많은 사람들로 채워졌습니다. 예수님이 택하신 백성을 불러내시어 목자에게 책임지워 맡기신 것입니다. 이 영혼을 진리를 깨닫게 하고 성령으로 회개하며 거듭나게 해서 믿음으로 성장하고 성숙된 결실로 하늘나라에 들여보내야 한다는 책임을 맡기신 것입니다.
2. 심판 날에 나타날 공력- 그리스도의 심장 소유
이 책임 목회라는 중심에는 그리스도 심장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심장이 목자에게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심장을 갖고 애를 쓰며 가르쳐도 세상 떠날 때 하늘나라 들어 가지 못하는 사람을 보기도 합니다. 천국에 가지 못한 사람은 왜 그런지 하나님은 구분을 지어 말씀하십니다. 디모데 전서 3:15에 보면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터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 위에 세워진 믿음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세워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확실할 때 예수님 터 위에 자기 믿음을 가꾸어 가야 되는 것입니다.
본문 12절~13절에 보면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합니다. 공력이라는 것은 자기가 힘들이고 공들여서 만들어 온 결과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불로 심판하실 때 불에 타지 아니할 보석이 있고 불에 금방 타버리고 재가 되어 금방 흩어지고 말 나무, 풀, 짚으로 세우는 믿음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지막 심판이 아니고 중간 심판 때에 받게 되는 것인데 그날에 나무나 풀, 짚처럼 활활 타버리고 재는 바람에 흩어지고 나면 흔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헛수고한 신앙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금이나 은이나 보석은 아무리 불로 태워도 타지 않습니다.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영원불변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계신 분이고 변치 않으시는 분이고 한량없으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 얻고자 하는 것은 그 예수님과 같이 우리도 영원불변 무한한 존재로 예수님과 더불어 영생복락을 누리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과 영원히 같이 살기 위해서는 내가 믿음 생활을 시작해 예수님 품에 들어갈 그때까지 영원불변한 공적을 쌓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같이 살 때에 공력이 계속 빛나는 내 입장을 대변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믿기는 믿었고 회개도 했고 구원도 얻었다고 하지만 그 인생이 공력을 나무나 풀이나 짚 같은 것으로 대충 쌓고 다른 데에 목적을 두고 살며 체면을 위해 하나님을 적당히 섬기고 교인들과의 교제도 적당히 하는 풍조가 자리 잡으면서 우리나라가 망조가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1992년도부터 이단들이 시한부종말론을 가지고 못된 짓을 했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 중에 열성이 있는 사람들을 이끌어 내어 재산을 다 기증하게 하고 남의 재산을 수탈했습니다. 그래서 그 뒤에 나온 말들이 예수님을 믿되 부담없이 적당하게 믿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한국교회는 내리막길로 갔습니다. 부담없이 적당하게 교회 생활했다는 것은 풀이나 짚으로 쌓은 공적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한국교회에 많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자기 삶의 목적을 하나님께 두고 하늘나라에 들어갔을 때 어떤 자격으로 주님을 맞을 수 있을까, 자신이 교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그 일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 공적이 영원히 남아 있게 하기 위한 가장 보람되고 알찬 수고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직분과 직책들을 잘 감당하심으로 온 교회가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성령의 하나됨을 따라 타 없어질 것이 아닌 금이나 은이나 보석같이 영원히 빛날 수 있는 공적 쌓기에 힘쓰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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