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성령 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뜻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돈도 많고 또 무역이 성행하는 항구도시이기 때문에 온갖 미신 우상 섬기는 일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교회를 세웠고 교회에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의 형태는 갖추었지만, 영적 신앙의 믿음을 가꾸지는 못하고 인간의 냄새를 풍기는 자기주장만을 펼치는 곳이었습니다.
이런 고린도 교회는 영적으로 상당히 빈약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3:1-3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했습니다.
1. 진정한 그리스도인
교회는 죄인이 들어와서 진리와 성령으로 회개하고 거듭나 하늘 소망을 목적으로 성령께 이끌리며 쓰임받기 힘써야 하는 곳인데 사람이 사람의 목적을 위하여 사람의 수단과 방법으로 교회 분위기를 잘못 만들어 가고 있음을 꾸짖습니다.
본문 1절에 “사람들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고 했습니다. 우리라고 한 것은 사도 바울과 바나바, 베드로를 통칭한 것이고, 하나님의 비밀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기 백성을 구원시키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하시는 은혜의 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를 이 비밀을 전하는 사명을 맡은 자로만 알아야지 우리를 앞세워서 어떤 출세를 한다거나 교회에서 상당히 행세하는 권력을 장악 한다거나 하는 생각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절의 말씀은 사도 바울 자신을 포함해서 바나바나 베드로가 다 영혼을 예수님께로 이끌어 하늘나라 가게 하는 목적으로만 힘써야지 자기 이름으로 모이는 그룹을 만들거나 자기를 추종하는 세력을 만들거나 하는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입니다.
충성이라고 하는 것은 한자를 보면 忠誠(충성), 즉 마음의 중심을 다해서 정성으로 하는 것입니다. 전혀 거짓이 없이 내 마음에 중심을 다해서 하나님 섬기는 것이 충성입니다. 그리고 3-5절을 보면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비판하는 것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잘해도 잘못해도 사람들의 사고 방식의 기준에 따라서 서로 다른 입장으로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판단의 기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바울파, 아볼로파 그리고 게바파도 있다 보니까 게바파나 아볼로파에 속한 사람들 중에서 분위기를 장악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사도 바울을 비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따르는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도 바울을 나쁘게 말하고 불신하도록 이간질하고 선동하였습니다. 이것은 마귀가 하는 짓입니다.
2.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자세
우리는 판단의 기준을 3가지로 생각해 봐야 됩니다. 첫째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판단하는가 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스스로 자신을 어떻게 판단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이 나를 판단하는 것보다 자기가 자기를 판단하는 것이 더 옳은 판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이성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판단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그 말을 들음으로써 내가 하나님 앞에 더욱 똑바로 설 수 있는 교훈이 되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자기를 올바르게 비판, 판단할 줄 아는가입니다. 사람들은 남들에게는 인색하고 자신을 두고는 무척 관대합니다. 남의 눈의 티는 하나도 그냥 넘어가 주지 못하면서 자기 눈에 들보는 깨닫지도, 뺄 생각도 못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참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판단받는 것은 아주 작은 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입각해서 성령에 이끌리고 순종함으로 하나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한 목적으로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생활을 하고 있다면 마귀 앞잡이들로부터 잘 믿는 사람을 판단하고 핍박하고 행패 부리며 못살게 구는 것을 당하는 것은 영적 싸움의 한 단면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악령의 앞잡이고 나는 성령의 사람으로 성령께 요긴하게 잘 쓰임 받고 있기 때문에 악령이 사람들을 통하여 자꾸 분노하게 하며 신앙을 넘어 뜨리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이 상황들을 충고로 받아 들이는 것이 아니라 원수의 공격으로 알아야 합니다. 마귀가 도전해 오는 것을 물리치기 위해 말씀으로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마귀는 꼬투리를 잡고 나를 시험도 하고 대적도 하고 훼방도 하며, 또 지옥에 보내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으로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모든 말씀을 다 순종하고 실천하고 살았을 때 전신 갑주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바로 선 성숙한 사람이 믿음이 아직 초보인 사람을 염려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권면할 때 받아 들여야 합니다. 이것을 뿌리치는 것은 허세이고 교만입니다. 사람은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번째 판단은 하나님의 판단입니다. 이 판단은 앞에서의 두 판단보다 훨씬 더 크고 능력 있는 것입니다. 3-4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하신 은혜가 믿어져서 회개함으로 죄 용서받고 의로워진 것이지 내가 하나님 앞에 남들로부터 비판받을 일이 없고 내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신앙에 책망할 것이 없다고 해도 그렇게 살았다는 것으로 의롭다는 자격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을 볼 때 겉만 보고 속은 보지 못합니다. 그렇게 겉만 보고는 그 사람을 온전히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이기적 사고 방식의 틀을 가진 상황에서는 그 판단이라는 것은 기준이 모호하고 애매하고 엉터리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마지막 심판날에 어두움에 감추인 것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까지 다 나타내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판단은 가장 두려워해야 할 무서운 판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열매
현재 자신에게 맡겨진 직책이 있다면 그 직책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참으로 그 자격에 합당한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까지 우리는 서로 시험에 들게 비판하려 하지 말고 그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권면하고 이끌어 주기를 힘쓰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상벌의 심판이 있게 될 때 예수님은 겉으로 행한 흔적만 보시고 판단하셔서 야단치시고 상 주시는 것이 아니라 왜 그 사람이 그런 일을 했을지 그 깊은 마음의 뜻을 다 밝혀 내십니다.
누군가가 목사님을 대접하기 위해 정성으로 음식을 준비했는데, 그것을 목사님 앞으로 가져갈 때에 다른 사람이 나타나 마치 자신이 준비한 것인양 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사람들조차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다보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준비한 마음도 수고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의 신앙이 영적 인격으로 성숙되기를 원하십니다. 껍데기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중심의 정성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섬김을 다하는 제물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 지혜로운 사람은 설혹 자기가 준비를 다했다 하더라도 그렇게 스스로 나타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더욱 성숙된 여유있는 믿음입니다. 목사님을 공궤하는 자리에 아직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세워줌으로 그 사람이 목사님을 한 번 더 만나 신앙이 더욱 성숙할 수 있는 대화의 기회를 마련해 주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말 향기롭고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자신을 나타내기를 애쓰기보다 나를 숨기고 낮추면서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더 이끌어 들이는 지혜는 상당히 성숙된 신앙의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사람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시험 들게 하는 판단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영혼을 사랑하고 구원을 얻게 하고 하늘 영광에 결실하도록 하기 위하여 내가 수고는 했지만 공적은 그 사람에게 돌리는 지혜로 예수님 재림하셔서 심판 하실 때 그 감추인 공적까지도 다 들추어서 상을 주실 때 그 상을 받을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알아보는 믿음이고 진짜 믿어서 사는 신앙인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성령 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뜻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돈도 많고 또 무역이 성행하는 항구도시이기 때문에 온갖 미신 우상 섬기는 일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교회를 세웠고 교회에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의 형태는 갖추었지만, 영적 신앙의 믿음을 가꾸지는 못하고 인간의 냄새를 풍기는 자기주장만을 펼치는 곳이었습니다.
이런 고린도 교회는 영적으로 상당히 빈약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3:1-3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했습니다.
1. 진정한 그리스도인
교회는 죄인이 들어와서 진리와 성령으로 회개하고 거듭나 하늘 소망을 목적으로 성령께 이끌리며 쓰임받기 힘써야 하는 곳인데 사람이 사람의 목적을 위하여 사람의 수단과 방법으로 교회 분위기를 잘못 만들어 가고 있음을 꾸짖습니다.
본문 1절에 “사람들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고 했습니다. 우리라고 한 것은 사도 바울과 바나바, 베드로를 통칭한 것이고, 하나님의 비밀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기 백성을 구원시키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하시는 은혜의 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를 이 비밀을 전하는 사명을 맡은 자로만 알아야지 우리를 앞세워서 어떤 출세를 한다거나 교회에서 상당히 행세하는 권력을 장악 한다거나 하는 생각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절의 말씀은 사도 바울 자신을 포함해서 바나바나 베드로가 다 영혼을 예수님께로 이끌어 하늘나라 가게 하는 목적으로만 힘써야지 자기 이름으로 모이는 그룹을 만들거나 자기를 추종하는 세력을 만들거나 하는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입니다.
충성이라고 하는 것은 한자를 보면 忠誠(충성), 즉 마음의 중심을 다해서 정성으로 하는 것입니다. 전혀 거짓이 없이 내 마음에 중심을 다해서 하나님 섬기는 것이 충성입니다. 그리고 3-5절을 보면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비판하는 것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잘해도 잘못해도 사람들의 사고 방식의 기준에 따라서 서로 다른 입장으로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판단의 기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바울파, 아볼로파 그리고 게바파도 있다 보니까 게바파나 아볼로파에 속한 사람들 중에서 분위기를 장악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사도 바울을 비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따르는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도 바울을 나쁘게 말하고 불신하도록 이간질하고 선동하였습니다. 이것은 마귀가 하는 짓입니다.
2.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자세
우리는 판단의 기준을 3가지로 생각해 봐야 됩니다. 첫째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판단하는가 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스스로 자신을 어떻게 판단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이 나를 판단하는 것보다 자기가 자기를 판단하는 것이 더 옳은 판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이성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판단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그 말을 들음으로써 내가 하나님 앞에 더욱 똑바로 설 수 있는 교훈이 되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자기를 올바르게 비판, 판단할 줄 아는가입니다. 사람들은 남들에게는 인색하고 자신을 두고는 무척 관대합니다. 남의 눈의 티는 하나도 그냥 넘어가 주지 못하면서 자기 눈에 들보는 깨닫지도, 뺄 생각도 못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참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판단받는 것은 아주 작은 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입각해서 성령에 이끌리고 순종함으로 하나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한 목적으로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생활을 하고 있다면 마귀 앞잡이들로부터 잘 믿는 사람을 판단하고 핍박하고 행패 부리며 못살게 구는 것을 당하는 것은 영적 싸움의 한 단면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악령의 앞잡이고 나는 성령의 사람으로 성령께 요긴하게 잘 쓰임 받고 있기 때문에 악령이 사람들을 통하여 자꾸 분노하게 하며 신앙을 넘어 뜨리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이 상황들을 충고로 받아 들이는 것이 아니라 원수의 공격으로 알아야 합니다. 마귀가 도전해 오는 것을 물리치기 위해 말씀으로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마귀는 꼬투리를 잡고 나를 시험도 하고 대적도 하고 훼방도 하며, 또 지옥에 보내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으로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모든 말씀을 다 순종하고 실천하고 살았을 때 전신 갑주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바로 선 성숙한 사람이 믿음이 아직 초보인 사람을 염려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권면할 때 받아 들여야 합니다. 이것을 뿌리치는 것은 허세이고 교만입니다. 사람은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번째 판단은 하나님의 판단입니다. 이 판단은 앞에서의 두 판단보다 훨씬 더 크고 능력 있는 것입니다. 3-4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하신 은혜가 믿어져서 회개함으로 죄 용서받고 의로워진 것이지 내가 하나님 앞에 남들로부터 비판받을 일이 없고 내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신앙에 책망할 것이 없다고 해도 그렇게 살았다는 것으로 의롭다는 자격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을 볼 때 겉만 보고 속은 보지 못합니다. 그렇게 겉만 보고는 그 사람을 온전히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이기적 사고 방식의 틀을 가진 상황에서는 그 판단이라는 것은 기준이 모호하고 애매하고 엉터리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마지막 심판날에 어두움에 감추인 것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까지 다 나타내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판단은 가장 두려워해야 할 무서운 판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열매
현재 자신에게 맡겨진 직책이 있다면 그 직책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참으로 그 자격에 합당한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까지 우리는 서로 시험에 들게 비판하려 하지 말고 그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권면하고 이끌어 주기를 힘쓰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상벌의 심판이 있게 될 때 예수님은 겉으로 행한 흔적만 보시고 판단하셔서 야단치시고 상 주시는 것이 아니라 왜 그 사람이 그런 일을 했을지 그 깊은 마음의 뜻을 다 밝혀 내십니다.
누군가가 목사님을 대접하기 위해 정성으로 음식을 준비했는데, 그것을 목사님 앞으로 가져갈 때에 다른 사람이 나타나 마치 자신이 준비한 것인양 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사람들조차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다보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준비한 마음도 수고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의 신앙이 영적 인격으로 성숙되기를 원하십니다. 껍데기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중심의 정성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섬김을 다하는 제물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 지혜로운 사람은 설혹 자기가 준비를 다했다 하더라도 그렇게 스스로 나타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더욱 성숙된 여유있는 믿음입니다. 목사님을 공궤하는 자리에 아직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세워줌으로 그 사람이 목사님을 한 번 더 만나 신앙이 더욱 성숙할 수 있는 대화의 기회를 마련해 주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말 향기롭고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자신을 나타내기를 애쓰기보다 나를 숨기고 낮추면서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더 이끌어 들이는 지혜는 상당히 성숙된 신앙의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사람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시험 들게 하는 판단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영혼을 사랑하고 구원을 얻게 하고 하늘 영광에 결실하도록 하기 위하여 내가 수고는 했지만 공적은 그 사람에게 돌리는 지혜로 예수님 재림하셔서 심판 하실 때 그 감추인 공적까지도 다 들추어서 상을 주실 때 그 상을 받을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알아보는 믿음이고 진짜 믿어서 사는 신앙인입니다.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