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흔히 자신이 하지 않은 일에 대해 오해를 받거나 모함을 받을 때나 엉뚱한 일을 당했을 때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한다. 국어사전에 나오는 어처구니의 뜻은 “엄청나게 큰 물건이나 사람”이라고 정의하는데 상상을 벗어난 일을 당하여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 ‘어이가 없다’는 말로 사용된다.
어떤 사람은 ‘어처구니’를 기와지붕을 덮는 기와장의 측면에 기와가 서로 맞물리게 하기 위하여 요철처럼 파여 있는 부분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맷돌의 손잡이가 어처구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짜 어처구니의 뜻은 맷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맷돌은 아랫돌과 윗돌이 맞물려있는데 아랫돌의 정중앙에 윗돌을 올려놓기 위해 쇠로된 뾰족한 축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어처구니’다. 이 어처구니가 너무 높으면 윗돌과 아랫돌 사이가 너무 넓어 곡식이 잘 갈리지 않고 너무 좁으 면 큰 낱알은 갈리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어처구니가 없어져 버리면 윗돌과 아랫돌이 이가 서로 맞지 않아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이 어처구니는 실제로 별 볼일 없이 작아 보이지만 그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 어처구니가 없이는 아무리 좋은 재료의 돌로 만든 맷돌이라 할 지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그만큼 맷돌에 있어서 어처구니는 전부나 다름없이 중요하다.
세상 모든 일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한 개인에게 어처구니가 빠지고 나면 얼빠진 인간이 되는 것이고, 가정에서 어처구니가 없으면 그 가정은 콩가루 집안이 되어 어른 아이 구별 없이 자기 멋대로 살게 된다. 학교에 어처구니가 없으면 교사와 학생이 구별이 없어져 선생님께 꾸지람을 들었다고 선생님의 뺨을 치는 세상이 되는 것이고, 군대에 어처구니가 없으면 먼저 총을 뽑는 사람이 이기는 제로섬 게임장이 되고 만다. 사회에 어처구니가 없다면 양육강식의 정글로 변할 것이고, 국가에 어처구니가 없으면 나라는 무법처지로 변해 다른 나라의 식민지나 속국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우주의 태양계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 가듯이 중심축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모래위에 세워진 집처럼 불안하기 마련이다. 보기에는 그럴듯 해보여도 금새 무너지고 만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우리 개인의 신앙생활에 예수님이라는 중심축이 없다면 우리는 신앙인이 아닌 어처구니 없는 종교인이 되어 버리고, 교회에 예수님이 빠지고 나면 그 모임은 일종의 친목단체로 전락하고 말 것이고, 선교회에 예수님이 없으면 그것은 일종의 봉사단체로 전락하고 만다.
요즘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교회는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구제와 봉사와 선교를 통해서 주님의 지상명령을 완수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일종의 비지니스화 되어가는 모습 속에서 교회에서 예수님이라는 어처구니를 찾기가 쉽지 않다.
교회협의회라는 기구는 교회가 회원권을 갖는다. 그런데 교회는 없는데 이름만 올려 놓고 협회의 회원권을 주장하는 일이있다. 설령 전에 교회협의회의 회원이었더라도 교회가 없어졌다면 자동적으로 회원이 될 수 없음에도 마치 paper company를 세워 놓고 돈세탁을 하는 사업가처럼 교회의 이름만 등록해 놓고 회원임을 주장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다.
목사회도 마찬가지다. 목사회는 목사들의 친목단체다. 그러면 무슨 행사를 하든 목사회의 모임은 목사들이 모여야 한다. 그런데 목사들의 행사에 목사가 아닌 다른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면 야구경기를 축구공으로 하는 것같은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이뿐만 아니다. 어느 선교회든 그 이름에 맞는 목적과 역할이 있을 것이고 그 목적에 맞는 정관을 만들어 일을 해야 한다. 이유는 교회 사업이나 선교회 일은 대부분 비영리단체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후원으로 이루어지고 그 후원금은 어디에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를 정확히 밝혀 줌으로 영리단체와 구별이 되고 또 이는 후원자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그리고 회계년도에 맞춰 수입과 지출이 정확하게 회계보고가 되어야 한다. 만약 이런 절차로 이루어 지지 않는다면 IRS법에 저촉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정치후원금과 비영리단체 후원금에 대해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기에 더 조심해야 한다.
어떠한 선교회든 그 이름에 맞게 그 후원금이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선이 무너지면 선교회를 빙자한 개인의 치부로 이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또한 교회가 구제사업으로 후원금을 거뒀다면 반드시 구제사업에 사용해야 한다. 만약 노숙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받았다면 노숙자를 위해 사용해야지 맞지 교회 재정으로 잡으면 이 또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되고 만다.
어떤 정치인이 말했다. “정치인은 최상의 선을 생각하지만 행동은 자기 이익을 따라 간다고, 이들은 자신은 최고의 선을 추구하듯 국민들 앞에서 그럴싸하게 말하지만 그들은 결국은 자기의 이익에 따라 줄을 서고 움직이게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어찌보면 정치인들처럼 신앙인도 최상의 선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자신을 위한 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최상의 선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만일 몰지각한 정치인들처럼 자신의 이익만을 쫒는 신앙인이 있다면 타락한 정치인들이 나라를 망치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에 먹칠을 하는 어처구니 없는 신앙인이 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