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이어령-이재철 대담 ‘문화로 성경읽기’ 세번째 시간은 ‘말씀과 빵’을 주제로 진행됐다. 올해 마지막으로 진행된 대담은 ‘예수의 세 가지 시험(마 4:1-11)’을 본문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펼쳐 나갔다.
이어령 박사(양화진문화원 명예원장)는 먼저 “성경을 유치원 아이처럼, 국어책을 읽듯 시학적으로 먼저 읽고 신학적으로 읽어야 한다”며 “국어 실력 없이는 아무리 신앙심이 있어도 잘못 읽을 수 있고, 이는 신학의 문제가 아니라 문법과 분석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사람이 떡으로만…’의 구절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문을 열었다. “‘빵만으로 살 수 없다’와 ‘빵으로만 살 수 없다’는 포함과 배제라는 전혀 다른 뉘앙스를 담고 있는데, 우리는 모두 ‘배제’의 뜻으로 읽고 있다”며 “하나님은 한 번도 ‘빵이 필요 없다’고 하신 적이 없고, 기독교에서 빵은 정말 중요하다”고 밝혔다. 영어로 본다면 ‘not bread but the Word(빵이 아니라 말씀)’라고 하신 게 아니라, ‘not only bread but also the Word(빵과 말씀)’이라고 했다는 것.
이 박사는 “빵이 중요해야 우리 몸도, 하나님도 소중함을 알게 되는데, 물질은 아무 소용 없이 말씀만 들으라고 해석하면 안 된다”며 “이웃을 내 몸 사랑하듯 하라고 하셨지, 나를 희생해 남을 사랑하라고 하지도 않으셨듯 내 몸이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문제는 기호학까지 가지 않아도, 중학교 국어시험 치듯 문장을 정확하게 읽는 1차 해독이 돼야 다음에 비유도 읽고 알 수 있다”며 “믿으면 ‘믿는 사이끼리 뭘 따져’ 하고 그냥 읽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성경을) 엄청나게 따지는데, 저는 원래 믿지 않았으니 철저하게 읽었다”고도 했다.
‘떡’은 의식주나 물질 전체 대변할 수 없어
이후에는 ‘빵’을 ‘떡’으로 잘못 번역해 생긴 문제들을 따졌다. 이어령 박사는 “빵을 떡으로 번역했기 때문에 기독교는 완전히 번안 기독교가 돼 큰 오해들이 생기고 있다”며 “성경에서 빵은 말씀과 대립되면서 모든 물질적인 부분들을 통틀어서 표현하고 있고 예수님은 이를 ‘대유법’으로 말씀하셨는데, 떡은 ‘끼니’가 아니라 어쩌다 먹는 것이어서 전체를 나타내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빵’은 물질적인 양식·육의 세계, ‘말씀’은 영혼의 양식·영의 세계를 상징하고, 그래서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이라는 구절에서도 빵(Daily Bread)이 등장하는 것을 단순히 한국적이라며 ‘떡’으로 번역한 것은 돌덩이와 비슷한 모양만 보고 뜻을 생각하지 못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재철 목사는 이에 “성경을 번역할 당시 우리나라 사람이 한 번도 빵을 본 적이 없었다”고 했지만, 이어령 박사는 “이 장면 이후에도 빵에 들어가는 ‘누룩(yeast)’의 비유와 출애굽에서도 누룩 없는 빵이 등장하는데, 떡에는 이런 게 없다”며 “전체 상징 코드가 틀려지므로 번역이 불가능하고 모르는 건 모르는 대로 두고, 이스라엘에서는 뭘 먹고 빵은 어떻게 먹는지 가르쳤어야 예수님이 어디서 사셨고 예루살렘까지 왜 가셨는지 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응수했다. “번역한답시고 예루살렘을 한양으로 번역하고, 사마리아를 어디라고 하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빵과 떡의 차이를 유목 민족과 농경 민족의 차이로도 해석했다. 이어령 박사는 “예수님께서 2000년 전 나타나신 역사 속 화육(incarnation)을 개별화된 상황으로 인식해야지, 보편성을 갖고 번안을 하면 이렇듯 엉망이 된다”며 “떡은 유목민 아닌 농경민족들이나 만들 수 있는 찐 음식이고 빵은 정착할 수 없는 유목민들이 직화, 바로 구워먹는 음식”이라고 밝혔다. 이 박사는 “그러므로 제대로 번역하려면 차라리 빵떡으로 했어야 했다”며 “빵 코드는 이후에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와 오병이어까지 이어지는 등 성경 전체에 걸려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경은 전체가 구조적으로 얽혀있는, 시와 질적으로 다른 보고(寶庫)”라며 “이 말이 저 말이랑 움직이고, 저 말이 이 말이랑 움직여서 한 단어만 챙겨도 전 성경이 움직인다”고 했다. 또 “성당이 돔 구조라 말하면 다 울리듯 성경도 돔 구조로 돼 있어 조금만 공부하면 이렇게 읽을 수 있는데 그걸 못 읽으니 너무 아쉽다”며 “인간이 써도 베스트셀러가 되는데, 베스트셀러 중 베스트셀러인 성경을 시처럼 소설처럼 에세이처럼 믿는 사람이든 안 믿는 사람이든 읽어보면 좋겠다”고 권했다.
이 박사는 “바이블(Bible)이 희랍어로 책이라는 말이듯 책 중의 책이 바로 성경인데,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많이 읽히고 가장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였다면 읽어야 하지 않겠나”며 “먼저 읽으면 자연스럽게 신학도 들어오고 목사님 말씀도 들어온다”고 덧붙였다.
교회가 빈곤퇴치 운동 이전에 풍요퇴치 운동 펼쳐야
이어령 박사는 논의를 오병이어(五餠二魚) 사건까지 진전시키며 “지금 교회에서는 오병이어가 중요하다고 가르치는데 안 되는 얘기”라며 “예수님은 오병이어 이후 구름떼처럼 사람들이 몰렸을 때 ‘저들이 나를 지상의 왕으로 만들까 두렵다’시며 산으로 도망가셨을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지 않으셨다”고 주장했다.
이 박사는 “그게 바로 유혹자의 세번째 시험, ‘경배하면 저 왕국을 너에게 주겠다’는 것이었는데 ‘노(No)’ 하셨다”며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두려워하면 하나님과 거리가 생기고 영원히 하나님 말씀을 못 듣는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런데 얼마나 많은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돌덩이를 가지고 빵을 만들려 하고, 그걸 기적이라고 생각하나”며 “말씀 하나도 안 듣고 빵 주고 떡 주는 걸 종교로 알면 세상과 다를 게 없다”고도 했다.
예수님은 인간이 딱 하나 할 수 없는 ‘죽음’의 문제 때문에 오셨다는 것. 이 박사는 “하나님 말씀만이 영원한 생명을 주니 ‘나는 생명의 빵이니라. 만나 먹은 사람, 오병이어 먹는 사람 다 죽는데 왜 죽는 떡을 찾아다니느냐? 나를 먹으라’고 하신다”며 “오늘날 빵 때문에 기독교가 무너지고 빵 때문에 쫓아다니느라 성도들이 싸우고 있는데, 말씀을 놔두고 죽는 빵을 위해 돌아다니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어령 박사는 “잘 산다는 걸 잘못 알고 있는데, 교회가 빈곤퇴치 운동 이전에 풍요퇴치 운동을 해야 한다”며 “사람들은 먹지 못하는 걸 빈곤이라 하지 않고,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빈곤하다고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간은 사실 태어나면서부터 먹는 게 목적이 아님을 다 알고 있고 그래서 풍요가 뭔지 모른다. 인간의 욕망이 먹는 데 있지 않음은 배가 고파서 담을 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먹는 게 해결되면 더 중요한 걸 찾는데, 그게 하나님 말씀인지 모르고 자동차, 좋은 옷, DVD, 스마트폰을 사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쌀값을 내리면 오히려 쌀 소비가 떨어지고, 빵 좀 먹을 정도 되면 으레 다른 거 달라고 한다”며 “빈곤이 퇴치 안 되는 건 먹을 걸 바라는 게 아니라 영적인 걸 원하고 있어서, 즉 하나님 말씀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나님 아들이라면, 먹더라도 보다 높은 가치 봐야
이 박사는 “하지만 빵이 그만큼 귀중하기 때문에 말씀을, 자기 몸을 빵에다 비유하셨듯 빵이 불필요하다는 말씀은 아니다”며 “지상 최고의 가치는 물질이지만, 이 예수님의 시험은 ‘하나님 아들이라면’ 그런 데 가치를 두지 않고,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의 빵’에 둔다는 뜻”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물이 넘쳐나 홍수를 이루고 빵이 주변에 그득하지만 우리의 갈증을 적실 물이 없고 배고픔을 달랠 빵 한 조각이 없다는 게 비극”이라며 “빵과 말씀을 코드로 볼 때 이 말씀에서 ‘떡’을 다시 빵으로 고쳐주시고, 떡과 빵의 차별이 바로 농경과 유목, 지상의 언어들이 문화에서 서로 다른 코드들을 찾아내 이스라엘을 가서 살아보지 않아도 예수님의 리얼한 목소리를 듣게 한다”고 정리했다.
이재철 목사는 “오병이어의 표적을 베풀고 돌덩이로 떡을 만드는 게 기적이 아니라, 그렇게 할 능력이 있음에도 하나님 말씀을 목적으로 삼는 삶, 그것이 기적임을 우리가 깨닫게 된다”며 “먹는 걸 목적으로 삼는 삶은 결국 고깃덩어리 위에 사는 것이지만, 예수님께서는 먹지 않는다는 말씀이 아니라 먹더라도 보다 높은 ‘영원하신 말씀’을 목적으로 사는 수단으로 먹으심을 알 수 있다”고 거들었다.
이 목사는 또 “모든 인간은 아담과 하와의 피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말씀을 인용해서 예수님을 시험하는 마귀처럼 말씀을 왜곡시키는 쪽에 있다”며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에 적극적·긍정적 사고방식이라는 불순물을 타고 있는데, 이는 2000년 전에도 그랬기 때문에 오늘날이라고 예외는 아니다”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가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어도 하나님 말씀이 나를 지배하게 하지 않고, 내가 하나님 말씀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주인이 되겠다고 하면 오히려 하나님 말씀으로 인해 실족하는 자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목사는 “이 마귀와 예수님의 대결은 언제든지 우리 삶 속에도 일어날 수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오늘 해답도 얻었다”고 전했다.
이어령 박사(양화진문화원 명예원장)는 먼저 “성경을 유치원 아이처럼, 국어책을 읽듯 시학적으로 먼저 읽고 신학적으로 읽어야 한다”며 “국어 실력 없이는 아무리 신앙심이 있어도 잘못 읽을 수 있고, 이는 신학의 문제가 아니라 문법과 분석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사람이 떡으로만…’의 구절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문을 열었다. “‘빵만으로 살 수 없다’와 ‘빵으로만 살 수 없다’는 포함과 배제라는 전혀 다른 뉘앙스를 담고 있는데, 우리는 모두 ‘배제’의 뜻으로 읽고 있다”며 “하나님은 한 번도 ‘빵이 필요 없다’고 하신 적이 없고, 기독교에서 빵은 정말 중요하다”고 밝혔다. 영어로 본다면 ‘not bread but the Word(빵이 아니라 말씀)’라고 하신 게 아니라, ‘not only bread but also the Word(빵과 말씀)’이라고 했다는 것.
이 박사는 “빵이 중요해야 우리 몸도, 하나님도 소중함을 알게 되는데, 물질은 아무 소용 없이 말씀만 들으라고 해석하면 안 된다”며 “이웃을 내 몸 사랑하듯 하라고 하셨지, 나를 희생해 남을 사랑하라고 하지도 않으셨듯 내 몸이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문제는 기호학까지 가지 않아도, 중학교 국어시험 치듯 문장을 정확하게 읽는 1차 해독이 돼야 다음에 비유도 읽고 알 수 있다”며 “믿으면 ‘믿는 사이끼리 뭘 따져’ 하고 그냥 읽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성경을) 엄청나게 따지는데, 저는 원래 믿지 않았으니 철저하게 읽었다”고도 했다.
‘떡’은 의식주나 물질 전체 대변할 수 없어
이후에는 ‘빵’을 ‘떡’으로 잘못 번역해 생긴 문제들을 따졌다. 이어령 박사는 “빵을 떡으로 번역했기 때문에 기독교는 완전히 번안 기독교가 돼 큰 오해들이 생기고 있다”며 “성경에서 빵은 말씀과 대립되면서 모든 물질적인 부분들을 통틀어서 표현하고 있고 예수님은 이를 ‘대유법’으로 말씀하셨는데, 떡은 ‘끼니’가 아니라 어쩌다 먹는 것이어서 전체를 나타내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빵’은 물질적인 양식·육의 세계, ‘말씀’은 영혼의 양식·영의 세계를 상징하고, 그래서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이라는 구절에서도 빵(Daily Bread)이 등장하는 것을 단순히 한국적이라며 ‘떡’으로 번역한 것은 돌덩이와 비슷한 모양만 보고 뜻을 생각하지 못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재철 목사는 이에 “성경을 번역할 당시 우리나라 사람이 한 번도 빵을 본 적이 없었다”고 했지만, 이어령 박사는 “이 장면 이후에도 빵에 들어가는 ‘누룩(yeast)’의 비유와 출애굽에서도 누룩 없는 빵이 등장하는데, 떡에는 이런 게 없다”며 “전체 상징 코드가 틀려지므로 번역이 불가능하고 모르는 건 모르는 대로 두고, 이스라엘에서는 뭘 먹고 빵은 어떻게 먹는지 가르쳤어야 예수님이 어디서 사셨고 예루살렘까지 왜 가셨는지 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응수했다. “번역한답시고 예루살렘을 한양으로 번역하고, 사마리아를 어디라고 하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빵과 떡의 차이를 유목 민족과 농경 민족의 차이로도 해석했다. 이어령 박사는 “예수님께서 2000년 전 나타나신 역사 속 화육(incarnation)을 개별화된 상황으로 인식해야지, 보편성을 갖고 번안을 하면 이렇듯 엉망이 된다”며 “떡은 유목민 아닌 농경민족들이나 만들 수 있는 찐 음식이고 빵은 정착할 수 없는 유목민들이 직화, 바로 구워먹는 음식”이라고 밝혔다. 이 박사는 “그러므로 제대로 번역하려면 차라리 빵떡으로 했어야 했다”며 “빵 코드는 이후에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와 오병이어까지 이어지는 등 성경 전체에 걸려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경은 전체가 구조적으로 얽혀있는, 시와 질적으로 다른 보고(寶庫)”라며 “이 말이 저 말이랑 움직이고, 저 말이 이 말이랑 움직여서 한 단어만 챙겨도 전 성경이 움직인다”고 했다. 또 “성당이 돔 구조라 말하면 다 울리듯 성경도 돔 구조로 돼 있어 조금만 공부하면 이렇게 읽을 수 있는데 그걸 못 읽으니 너무 아쉽다”며 “인간이 써도 베스트셀러가 되는데, 베스트셀러 중 베스트셀러인 성경을 시처럼 소설처럼 에세이처럼 믿는 사람이든 안 믿는 사람이든 읽어보면 좋겠다”고 권했다.
이 박사는 “바이블(Bible)이 희랍어로 책이라는 말이듯 책 중의 책이 바로 성경인데,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많이 읽히고 가장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였다면 읽어야 하지 않겠나”며 “먼저 읽으면 자연스럽게 신학도 들어오고 목사님 말씀도 들어온다”고 덧붙였다.
교회가 빈곤퇴치 운동 이전에 풍요퇴치 운동 펼쳐야
이어령 박사는 논의를 오병이어(五餠二魚) 사건까지 진전시키며 “지금 교회에서는 오병이어가 중요하다고 가르치는데 안 되는 얘기”라며 “예수님은 오병이어 이후 구름떼처럼 사람들이 몰렸을 때 ‘저들이 나를 지상의 왕으로 만들까 두렵다’시며 산으로 도망가셨을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지 않으셨다”고 주장했다.
이 박사는 “그게 바로 유혹자의 세번째 시험, ‘경배하면 저 왕국을 너에게 주겠다’는 것이었는데 ‘노(No)’ 하셨다”며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두려워하면 하나님과 거리가 생기고 영원히 하나님 말씀을 못 듣는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런데 얼마나 많은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돌덩이를 가지고 빵을 만들려 하고, 그걸 기적이라고 생각하나”며 “말씀 하나도 안 듣고 빵 주고 떡 주는 걸 종교로 알면 세상과 다를 게 없다”고도 했다.
예수님은 인간이 딱 하나 할 수 없는 ‘죽음’의 문제 때문에 오셨다는 것. 이 박사는 “하나님 말씀만이 영원한 생명을 주니 ‘나는 생명의 빵이니라. 만나 먹은 사람, 오병이어 먹는 사람 다 죽는데 왜 죽는 떡을 찾아다니느냐? 나를 먹으라’고 하신다”며 “오늘날 빵 때문에 기독교가 무너지고 빵 때문에 쫓아다니느라 성도들이 싸우고 있는데, 말씀을 놔두고 죽는 빵을 위해 돌아다니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어령 박사는 “잘 산다는 걸 잘못 알고 있는데, 교회가 빈곤퇴치 운동 이전에 풍요퇴치 운동을 해야 한다”며 “사람들은 먹지 못하는 걸 빈곤이라 하지 않고,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빈곤하다고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간은 사실 태어나면서부터 먹는 게 목적이 아님을 다 알고 있고 그래서 풍요가 뭔지 모른다. 인간의 욕망이 먹는 데 있지 않음은 배가 고파서 담을 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먹는 게 해결되면 더 중요한 걸 찾는데, 그게 하나님 말씀인지 모르고 자동차, 좋은 옷, DVD, 스마트폰을 사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쌀값을 내리면 오히려 쌀 소비가 떨어지고, 빵 좀 먹을 정도 되면 으레 다른 거 달라고 한다”며 “빈곤이 퇴치 안 되는 건 먹을 걸 바라는 게 아니라 영적인 걸 원하고 있어서, 즉 하나님 말씀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나님 아들이라면, 먹더라도 보다 높은 가치 봐야
이 박사는 “하지만 빵이 그만큼 귀중하기 때문에 말씀을, 자기 몸을 빵에다 비유하셨듯 빵이 불필요하다는 말씀은 아니다”며 “지상 최고의 가치는 물질이지만, 이 예수님의 시험은 ‘하나님 아들이라면’ 그런 데 가치를 두지 않고,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의 빵’에 둔다는 뜻”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물이 넘쳐나 홍수를 이루고 빵이 주변에 그득하지만 우리의 갈증을 적실 물이 없고 배고픔을 달랠 빵 한 조각이 없다는 게 비극”이라며 “빵과 말씀을 코드로 볼 때 이 말씀에서 ‘떡’을 다시 빵으로 고쳐주시고, 떡과 빵의 차별이 바로 농경과 유목, 지상의 언어들이 문화에서 서로 다른 코드들을 찾아내 이스라엘을 가서 살아보지 않아도 예수님의 리얼한 목소리를 듣게 한다”고 정리했다.
이재철 목사는 “오병이어의 표적을 베풀고 돌덩이로 떡을 만드는 게 기적이 아니라, 그렇게 할 능력이 있음에도 하나님 말씀을 목적으로 삼는 삶, 그것이 기적임을 우리가 깨닫게 된다”며 “먹는 걸 목적으로 삼는 삶은 결국 고깃덩어리 위에 사는 것이지만, 예수님께서는 먹지 않는다는 말씀이 아니라 먹더라도 보다 높은 ‘영원하신 말씀’을 목적으로 사는 수단으로 먹으심을 알 수 있다”고 거들었다.
이 목사는 또 “모든 인간은 아담과 하와의 피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말씀을 인용해서 예수님을 시험하는 마귀처럼 말씀을 왜곡시키는 쪽에 있다”며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에 적극적·긍정적 사고방식이라는 불순물을 타고 있는데, 이는 2000년 전에도 그랬기 때문에 오늘날이라고 예외는 아니다”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가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어도 하나님 말씀이 나를 지배하게 하지 않고, 내가 하나님 말씀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주인이 되겠다고 하면 오히려 하나님 말씀으로 인해 실족하는 자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목사는 “이 마귀와 예수님의 대결은 언제든지 우리 삶 속에도 일어날 수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오늘 해답도 얻었다”고 전했다.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