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해야 할 사순절 기간에 예수를 팔아넘긴 가룟 유다를 옹호하는 소설이 출간돼 파문이 일고 있다. 이 소설의 핵심 주제는 유다가 신의 섭리에 따른 도구였을 뿐이며, 그에게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교황청이 장기간에 걸쳐 추진해 오던 유다 복권(復權)운동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

20일 로마에서는 영국의 유명 작가 제프리 아처(Jeffrey Archer)와 아메리카가톨릭대학교 종교학과 프랭크 몰로니(Frank Moloney) 교수가 공동 저술한 소설 유다복음(The Gospel According to Judas) 출판 기념 기자회견이 열렸다. 저자인 아처는 “이 작품이 단편적 이야기나 소설이 아니라 복음서처럼 보이고, 그렇게 읽혀지길 원한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아처는 영국 보수당 부의장까지 맡는 등 촉망받던 정치인이었으나 매춘부와 동침하고 친구에게 위증을 부탁하는 등 물의를 일으켜 실형을 선고받고 정치적으로 실각한 인물이다.

이 소설은 25장 1백 쪽 분량의 운문체로 쓰여졌고 각 운문에는 일련번호가 매겨져 있으며, 가장자리에 금박까지 입혀져 있어 성경과 흡사한 인상을 주고 있다. 이 소설은 유다가 자살하지 않고 살아 남았다는 가정 하에 그의 맏아들 ‘베냐민 이스카리옷’이 아버지에게 들은 것을 전하면서 아버지를 변호하는 형식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소설에는 성경과 다른 사실이 많이 나온다. 소설에서는 예수의 첫 기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물이 포도주가 된 사건’은 사실이 아니며, 예수는 물 위를 걷지도 않았다. 또 한 명의 저자인 몰로니 교수는 “이 책의 모든 내용이 실제로 간주될 수는 없다”면서도 “모든 것은 가능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 충격적인 것은 유다에 관한 부분이다. 소설은 유다는 예수가 불필요하게 살해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부득이하게 예수를 밀고한 대가로 은 30냥을 받은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들은 “비록 유다가 예수를 신의 아들이라고는 믿지는 않았지만 그를 흠모해 왔으며, 로마의 지배를 물리치기 위한 무력 사용을 예수가 거부한 것에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역사가 그를 공정하게 다루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자회견에는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장 스티븐 피사노 신부가 동석했다. 교황청은 과거부터 유다가 예수를 팔지 않았으면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고 구원도 이뤄질 수 없었다는 논리를 펼치며 유다 복권운동을 벌여 왔다. 교황청 역사과학위원회 책임자인 발터 브란트뮐러는 이미 과거부터 유다 복권운동을 추진해 왔으며 교황청의 암묵적인 지지를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남아공의 가톨릭 지도자 데스몬드 투투(Desmond Tutu) 주교가 이 책의 오디오북 녹음을 맡기도 했다. 투투 주교는 “이 책은 아들이 아버지를 변호하는 형식을 띠고 있어 매우 설득력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소설은 영어, 이탈리아어, 폴란드어, 포르투갈어, 네덜란드어, 독일어, 스페인어, 세르비아어 등으로 번역돼 동시에 출판됐다.

한편, 소설 다빈치코드, 다큐멘터리 유다복음 등의 반기독교적 내용에 적극 반박해온 라은성 교수(국제신대 교회사)는 “기독교적 입장에서 봤을 때 이 소설의 내용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고, 설명의 가치도 없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