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에 관해서 우리가 들은 바, 본 바, 만진 바라(요일1:1)”했다. 귀로 듣는 것만이 가능했던 성서를 눈으로 읽을 수 있게 된 획기적인 사건 후, 이제 그 성서를 성도들이 손으로 직접 만지듯 성서 안의 인물이 되어 보는 새로운 성경 공부가 가능할까? 그 효과는 어떨까?

한국기독교연구소(CSKC)의 10월 월례포럼에 강사로 선 황헌영 목사(남부시카고한인연합감리교회 담임)는 <비블리오 드라마- 새로운 유형의 치유성경공부>라는 발제에서 “설교, 성경 공부, 제자훈련 등 교회의 대부분 교육이 말에 의존하고 있다면, 비블리오 드라마는 몸으로 하는 성경공부”라고 정의했다. 그는 “말로 이뤄지는 주입식 교육의 효과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라며 “직접 몸으로 경험하는 성경 공부는 성경 자체에 대한 이해는 물론 삶의 문제를 돌파하는 새로운 창조적 능력을 배양해 주고 집단 치유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성경 공부가 필요한 이유는 기존의 것이 지닌 한계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한국 한동대에서 목회상담학과 교수를 역임한 바 있기도 한 황 목사는 “한국에 한때 가정사역 붐이 일었으나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고 지적했다. 대부분 가정사역이 유명 강사를 초청해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끝나지 어떤 구체적인 치유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황 목사는 이것을 “새로운 유형의 부흥회 중 하나”라고 꼬집었다. 강사가 해 주는 강의와 사례를 듣고 일시적인 은혜나 위로를 받는 것으로 근본적 치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터넷 등 매체의 발달로 인해 강사들의 메시지가 유사해진 것도 한계 중 하나다.

비블리오 드라마는 성경의 텍스트에 기초한 사이코 드라마다. 사이코 드라마가 개인의 치유에 상당한 효과를 가져 오는 것은 학계에서 어느 정도 입증이 됐다. 프로이트의 제자이자 사이코 드라마의 창시자인 제이콥 모레노는 “당신은 꿈을 분석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꿈을 다시 꾸게 하려 한다”라고 말했다. 프로이트가 꿈으로 개인의 무의식 속에 잠재된 상처를 분석해 내는 데에 큰 기여를 했다면 모레노는 그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꿈을 극적 상황을 만들어 잉여 현실에서 체험하게 해 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모레노는 어떤 사람이 아버지로부터 당했던 학대를 사이코 드라마에서 스스로 풀어내게 함을 통해 그 상처를 치유하고자 했던 것이다.

사이코 드라마가 한 개인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치유 방식이라면 비블리오 드라마는 사이코 드라마의 형식을 띠면서도 성경의 텍스트로 들어간다. 황 목사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사건을 예로 들었다. 이미 율동이나 게임 등 레크리에이션을 통해 자신을 가두고 있던 껍질을 벗어버린 사람들이 수로보니게 여인의 사건을 함께 읽는다. 그리고 그 사건에 나오는 배역을 자원해서 맡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발성과 창조성이다. 누가 어떤 배역을 맡아야 하거나 어떤 대본대로 하거나, 무조건 치유 받아야 한다, 자신을 깨놓고 공개해야 한다는 강요는 없다. 이 사건에서 어떤 이는 수로보니게 여인이 된다. 어떤 이는 예수가 된다. 심지어 개가 되는 사람도 있고 밥상이 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세팅 위에 예수는 자신이 얼마나 피곤했는지, 자신도 영적 충족이 얼마나 필요한지, 이방 여인을 왜 치유해 줄 수 없는지 변론한다. 그럼 여인은 자신이 얼마나 영적 고통을 받아 왔는지, 예수가 왜 치유해 줘야만 하는지를 변론한다. 개는 개 입장에서 둘의 대화를 보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밥상은 밥상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첨예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난 후, 갈등의 당사자들이 배역을 바꾼다. 여인은 예수의 입장이 되고 예수는 여인의 입장이 된다. 지금까지 자신의 의견만 주장하거나 상대방의 의견을 깨기 위해 고심하던 이들은 배역이 바뀌는 순간 상대방을 이해하고 변론해 주어야 하는 상황에 도달한다.

이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먼저 성경 속에 감춰진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직접 예수가 되어 보고, 여인이 되어 보면서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심층 깊게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면, 이삭 번제의 사건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순종만을 읽어 낸다. 왜냐면 성경에 검은 글자로 쓰여진 내용이 아브라함만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블리오 드라마로 이 사건이 펼쳐지면 글자 뒤에 있는 성경의 하얀 종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 즉, 이삭이 겪었을 갈등과 순종, 아브라함과 사라의 갈등까지 읽어 낼 수 있다. 황 목사는 “성경을 글자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두번째 효과는 치유다. 등장인물과 일체화를 느끼며 갈등 상황으로 들어간 이들은 그 갈등을 털어 놓는 과정 혹은 배역이 바뀌는 과정에서 자신이 겪었던 갈등을 표현하기도 한다. 혹은 그 인물과 일체화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교회에서 소외감을 느꼈던 사람이라면 수로보니게 여인이 되어 “예수님, 왜 선민만 사랑하세요. 예수님이 그랬으니 목사님도 장로들만 감싸잖아요”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예수를 비난하던 여인이 잠시 뒤 예수의 역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예수의 입장에서 변론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목사로부터 받았던 상처가 공개되고 치유되는 효과가 생긴다.

모든 극이 끝난 후에는, 반드시 손을 씻는다든지, 몸에 걸쳤던 천을 떨구어 낸다든지 하는 식으로 배역을 털어 버려야 한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와 함께 그 극에 관해 토론하면서 성경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공감대를 형성한다.

황 목사의 발제 후, 포럼에 참석한 목회자, 교수, 유학생, 평신도 등 30여명은 질문을 쏟아냈다. “보수적인 이민교회 현실에서 아무리 치유적 효과가 좋다 한들, 성경이 자의적으로 해석될 위험이 있는데 도입이 가능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황 목사는 “편견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는 있지만 비블리오 드라마를 시행해 본 결과 성경 이해에 큰 효과가 있었다”고 답했다. “한국인, 이민교회라는 현실상 자신의 아픔을 공개하는 것에 상당한 위험성이 따른다”는 지적에는 “절대적으로 비밀이 보장되는 신뢰 관계 속에서만 시행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개교회에서 이것을 도입할 경우, 개인적 갈등 이슈를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교회 내 집단 간의 갈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여러 교회의 연합 모임이나 노회 내 청년 연합 모임 등 어느 정도 익명성이 보장되는 경우 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답했다. 그는 “치유를 목적으로 하지만 자신의 문제를 공개하기 원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에만 더 깊이 들어가게 되며 이를 위해서는 그 수위를 정확히 판단할 훈련받은 디렉터가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이미 수많은 성경공부나 설교를 통해서 성서의 사건을 보는 시각이 고정된 성도들이 많은데 비블리오 드라마를 할 때, 새롭게 성경을 읽겠냐. 원래 알던 모범 그대로 하려 하고 그것을 벗어나는 것에 상당한 두려움을 갖지 않겠나”는 질문에는 “직접 해 본 결과,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리고 설령 그렇게 된다 해도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불신자 전도에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는 “비블리오 드라마는 불신자 전도를 목표로 하지 않고 성도들의 치유를 목표로 한다”고 답하면서 동시에 “탕자의 비유처럼 불신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이야기를 대상으로 하면 성서 이해 및 치유에 적지 않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황 목사는 “비블리오 드라마는 기독교 교육과 상담계에 새로운 활력이 될 것”이라 전망하면서 “성직자 중심의 성경 연구가 평신도가 주체가 되는 성경적 삶으로 변혁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또 교회 내에 존재하는 집단 간 갈등을 치유해 주어 내부적 응집력을 강화시켜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황헌영 목사 약력

-서울신대 B.Th.
-중부텍사스대학교(현 Texas A&M University Central Texas Campus), M.S.
-Southern Methodist University, M.Div.
-시카고신학교 Ph.D. 목회상담학
-일리노이 주정부 공인심리상담사(LPC)
-한국 나사렛대학교 교수
-한동대 교목실장 및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