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알고자 선택한 언어학, 정작 답은 다른 곳에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을 살다 가지 못한 이 길을 후회할 것 같아서 일년만 공부하자는 생각으로 오른 뉴욕 유학길. ‘인간이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알고 싶어 선택한 ‘언어학’을 뉴욕대학교에서 공부하면 할 수록 애초에 던졌던 질문의 답은 점점 더 멀어지는 듯 했다. 근 8년간 평일에는 공부하고, 주말에는 일하는 삶이 반복되던 중 간만에 얻은 휴일. 친구의 권유로 교회에 발을 들여 놓고 지금까지 왔다. 함께가는교회 서경훈 목사의 이야기다.

“한국에서 기독교대학을 다녔지만 무신론자였어요. 제가 너무 갈급해 하는 걸보고 절 인도했던 친구가 뉴욕 새교회 이학권 목사님 설교 테이프를 한아름 주면서 그 교회 가서 제자훈련 받으라고 하더라고요. 듣고 또 듣고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듣고 찾아가 2년 동안 훈련 받았는데, 제가 평생을 찾아온 질문에 답이 여기 있는 듯했어요. 어느 날 이 목사님이 부르시더니 언어학 은사보다 신학 은사가 있으니 신학교 가서 공부하라고 하셨죠. 마음을 들킨 듯 뜨끔했어요.”

공부를 마치면 중학생 때 중풍을 쓰러진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으로 한국의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미국에서 일군 가정도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서 신학공부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갈등했지만 희미하게나마 빛이 이쪽에서 비추고 있었고, 서경훈 목사는 이 빛을 따라 나서기로 했다.

돌고 돌아온 아버지의 품, 마흔 살에 목사 안수
마흔 살 생일을 불과 몇 주 앞두고 안수를 받은 서경훈 목사는 “목회의 길을 결심하고 돌아보니 하나님의 우리 가족을 향한 계획은 이미 짜여 있었다”고 고백했다.

할머니 성함 ‘조마이’는 인천으로 들어온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세례명 ‘마리아’에서 ‘아’를 빼고 ‘리’를 ‘이’로 바꿔 붙인 것이다. 신앙이 좋던 할머니의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자녀가 바로 서경훈 목사의 부친이었다. 할머니의 기대와 달리 부친은 다른 종교를 가졌지만, 결국 그 기도와 눈물의 씨앗이 서경훈 목사를 통해 맺힌 것이다.

한가지 더. 그가 다닌 연세대학교를 세운 호레스 G. 언더우드 선교사는 미국개혁교단(Reformed Church in America, RCA) 산하 뉴브런스위크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아 조선 복음화의 소망을 품고 북장로교회 선교사로 조선땅을 밟았다. 세월이 흘러 언더우드 선교사의 발자취를 거꾸로 밟아 서경훈 목사는 미국으로 건너와 뉴브런스위크신학교를 졸업하고, 기도하던 대로 마흔 살이 되기 몇 주 전 목사안수를 받았다. 조금 늦었지만 돌고 돌아 안긴 아버지의 품, 서경훈 목사는 이 품에서 끝까지 떠나지 않을 작정이다.

‘애틀랜타 땅을 향한 눈물을 보여주세요’
신학공부를 한다고 꼭 목회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담임목사의 권면으로 뒤늦은 나이에 시작한 신학공부. 그 안에 여러 길이 있고 그 가운데 하나를 찾아볼 작정으로 뛰어들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오직 한가지 길’만 계획하고 계셨다. 신학공부 하던 중 세 번의 부르심이 있었고, 졸업을 앞두고 ‘이민교회 개척 목회자’라는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졌다.

“신학공부를 시작하고 한 일년쯤 지나 목회하는 목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들었어요. 또 일년쯤 지나고는 ‘이민교회 목사’, 졸업을 앞두고는 ‘개척교회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굳어졌죠. 부목사로 가기엔 나이도 많았고(웃음), 신앙연륜이 짧아 아는 목사님도 없고 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점점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주신 것 같아요. 개척을 결심하고는 어디로 갈지 몰라 미국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서 ‘어딘가에 하나님이 눈물 흘리시는 것을 보여주시면 군말 없이 가겠습니다’ 약속했어요.”

졸업을 한 학기 가량 남겨 놓고 그를 신학교로 이끌어 준 이학권 목사가 애틀랜타에 왔다 어려움에 처한 교회를 보고, 서경훈 목사를 권면해 한번 내려가보라고 한 것이 인연이 됐다. 주일 설교를 하고 다음날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예상치 못한 폭풍으로 5일 동안 머물면서 밤마다 몇 가정이 모여 부흥회를 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눈물’을 봤다. 졸업을 하고 안수 받은 이후 바로 내려와 개척한 곳이 마리에타새교회다.

▲함께가는교회 모습. 교회 구석 구석을 단정하게 꾸며놨다. 친교실 안에 벽 없이 들어서 있는 목회자 실이 인상적이다.
단 한 순간도 떠나지 않는 질문 ‘교회는 무엇인가?’
목회비전을 묻자 서경훈 목사는 자신의 약점이 무엇인지부터 설명했다.

“저는 교회를 다녀본 기간이 짧고, 목사님들의 목회를 많이 봐 온 것이 아니라 교회 자체에 대한 경험이라고 할까요? 개념이 부족해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가정을 이루면, 막연하지만 각자의 가정에서 봐온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바탕으로 어떤 가정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하잖아요. 그런 면이 저에게 부족해서 그런지 끊임없이 묻는 질문이 ‘과연 교회는 무엇인가?’예요. 어떤 완성된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시고 그걸 만들어 가라면 쉽겠는데 그게 없으니 계속 묻고 답을 구하는 중이죠.”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카리스마적인 목회자의 비전은 성도들을 끌고 가는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서경훈 목사는 그런 비전이 없다고 했다. 그럼 무엇을 붙들고 가는 것일까?

“처음엔 그 비전이 제 안에 있는 줄 알았어요. 성경 읽고 기도 많이 하면 하나님께서 딱 깨닫게 하셔서 이런 교회 만들어라 이런 것 말이죠.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비전은 예수님 가슴에 있어요. 함께가는교회가 5년 뒤, 10년 뒤 어떨지는 그분만 아시고 우리에게는 공구(Tool)를 주셨죠. 그때 그때 여기 가서 두드려라 하면 두드리고, 이것 좀 잘라라 하면 자르고 하면서 희끗희끗 보여주시는 걸 따라 오늘 순종할 뿐이에요. 만일 그 비전이 저에게 있었으면 내 마음대로 만들고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비전이 없다는 말은 오직 주님께 순종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함께가는교회는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 그것을 꿈꾸며 가고 있다.

둘루스로 예배당 옮기고 철저히 깨달은 한 가지
함께가는교회는 올해 원래 있던 마리에타에서 지금의 둘루스로 성전을 이전했다. 교회 이름도 마리에타 새교회에서 바꿨다. 지역이 교회이름에 들어가니 포커스가 지역 안으로만 작아지는 것 같아서다. 둘루스에서 오는 성도들이 생기고, 예배당을 한인들이 많은 둘루스로 옮길 수 있는 기회가 두어 번 있었지만 ‘물고기 많은데 그물 치러 가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에 매번 마음이 불편했다고 한다. 하지만 올 해 평안한 마음을 주셨고, 준비된 사람과 장소, 시간을 통해 순조롭게 이전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철저히 깨달은 한 가지가 있다.

“둘루스로 이전하고 1년을 경험하면서 깨닫는 것은 ‘물고기 많은데 그물을 치면 많이 잡힐 것’이라는 건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이라는 거에요. 교회의 주인이 예수님이라고 한다면 저 문턱을 넘어 올 수 있는 것은 그분의 허락하심이 아니면 불가능하죠. 성도님들도 여기로 옮기면 누구, 누구 올 수 있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는데 그게 안 되는 걸 보면서 철저히 이 교회의 주인이 누구신지 깨닫고 있어요. 전도가 쉽지 않지만 오히려 감사한 일이에요.”

모두가 손 잡고 함께 가는 교회
함께가는교회로 이름을 바꾸면서 꿈꾸는 것이 있다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사람이 십자가를 지고 모두가 손을 잡고 가는 공동체의 모습이다. 한 가정에 부모가 있고 형, 누나가 있고 갓난아이가 있다면 가장 많은 사랑과 관심, 돌봄을 받는 사람은 다름아닌 아기다. 가장 연약한 자 앞에 모두가 무릎을 꿇는다.

“교회는 죄인들의 공동체 입니다. 내가 저 사람보다는 낫고, 그래도 괜찮다 싶겠지만 예수님께서 거룩하지 않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때문에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고 춤추는 공동체, 매일의 삶 가운데 조금 더 낮아지는 성도들…… 더 성숙한 사람이, 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먼저 낮아져 손을 잡고 가는 것이 주님의 원하시는 함께 가는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요.”

함께가는교회는 2730 North Berkeley Lake Rd. Suite B 1100 Duluth, GA 30096에 위치하고 있으며 매 주일 오전 10시, 11시 15분 대예배를 수요일 오후 8시 강해설교가 있는 삼일예배를, 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오전 6시에 새벽예배를 드리고 있다. 문의는 404-644-7166, 홈페이지 www.rchandinhand.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