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장로회(PCA) 한인동남부 노회(노회장 조영팔 목사) 제 50차 기념노회 이틀째 일정이 진행됐다. 5일 제일장로교회(담임 서삼정 목사) 비전센터에서 진행된 노회는 각 위원회 보고 및 강도사, 목사 고시, 신안건 등이 다뤄졌고 ‘PCA 한인 동남부 노회의 과거, 현재, 미래’를 조명하는 특강과 사모를 위한 시간이 마련돼 눈길을 끌었다.

노회에서 다뤄진 중요한 안건 가운데 교회에서 사역하는 목회자 후보생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교단 산하 신학대가 아닌 다른 일반 대학 혹은 신학대에서 학업을 하고 있는 경우 이들 대학의 신학적 입장을 검토 한 이후에 다음 회기에서 결정하기로 했다.

또한 EM 부에서는 올 해 처음 시작된 영어권 대학생 수련회인 ‘CAYA(College-Aged Young Adult Retreat) 2010’의 결과를 설명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했으며, 점차 발전되고 있는 영어권과 한어권의 원활한 교류를 위해 서로 노력해 갈 것을 당부했다.

이외에도 목회자가 없는 교회의 임시당회장으로 파송된 목회자들의 각 교회 보고 및 재정보고, 명성교회 전권위원회 보고가 이어졌다.

한편, 동남부 지역에서 모인 사모들은 서옥자 사모를 중심으로 지역 관광지를 돌아보고 그간 목회현장에서 쌓인 스트레스와 긴장을 풀고, 교제하는 의미 깊은 시간을 만들었다.

다음은 서삼정 목사의 특강 내용.

▲특강하는 서삼정 목사.
오늘 발표하는 내용은 주관적이긴 하지만 그간 많은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을 만나 대화하고 경험해온 것들을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객관성도 갖고 있다.

먼저 PCA 한인노회는 1982년 약 2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8개 교회가 창립멤버로 시작됐다. 한인노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준비한 분들 중에는 인도아 목사, 김영호 목사, 이원대 목사, 저(서삼정 목사) 등 이었고, 한인노회를 세우기 위해 국내선교부를 설득하고 허락 받는 일이 필요했다. 3가지를 역설했는데 하나는 한인노회가 있어야 우리 뿐 아니라 2세들을 위해 일할 터전이 생긴다, 두 번째는 이보다 앞서 엘에이 지역에 있던 태평양 노회에서 한인노회원들이 한국 총회와 정치적으로 연결 돼 한번에 나간 일이 있었는데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 그리고 다른 소수인종과 달리 독자적인 노회를 구성할 때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와 미국총회와의 동화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설득이 필요했다.

2년에 걸쳐 드디어 국내선교부에서 허락을 하고 총회 아젠다로 내 놓았다. 1982년 전체총회에서 허락을 받고 PCA 한인노회가 생겼고 제(서삼정 목사)가 초대 회장, 고인호 목사가 서기를 맡았다. 다음해 동부노회로 이름을 바꾸고 이후 3년을 운영하다 1985년 필라델피아 노회에서 동부노회가 분립되어 한인동남부 노회로 창립한 것이 1회 노회다. 1992년 워싱턴디시 볼티모어 지역은 수도노회로 분립됐고, 이외 지역은 동남부 노회로 남아 지금까지 온 것이다.

한인 동남부 노회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살펴보자. 이것은 PCA 동남부 노회에 속한 교회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민교회 전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70-80년대 교회는 개척기/시련기 였다. 초기 교회는 이민자들로 구성됐지 교인이 아니었다. 이때는 목사 중심의 정치행정 이뤄졌고, 교인들이 목회자에게 원하는 자질이 청빈과 헌신이었다. 목사가 평신도들보다 가난하고 헌신적이어야 했고 설교와 심방, 이민생활 도우미 역할이 주된 일이었다. 이때 목사들은 당회가 아닌 평신도들에게 도전을 받았다. 교육측면에서는 성경공부만 하면 됐다. 예배는 당연히 전통예배만 드렸다.

90년대는 교회의 부흥과 안정기였다. 90년대 들어서 이민자들이 많아지면서 교회가 자라기 시작했고 부흥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안정됐는데 자체 교회당을 사거나 짓는 일이 많았다. 이와 함께 교회는 당회중심으로 행정이 이뤄졌는데, 목사는 당회의 도전을 받게 된다. 당회가 잘 운영되고 안정적으로 자리잡으며 교회도 평안했고, 당회와 갈등이 있으면 교회는 어려움에 처했다. 성도들은 목회자가 청빈하고 헌신적인 동시에 인격과 삶으로 본을 보이기 원했다. 이때부터 제자훈련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2세 교육에 대한 요청이 생겨났지만 아직까지는 단순해서 교육 목회자가 있으면 됐다. 90년대 들어오면서 전통예배에 찬양이 도입되면서 대부분 교회들이 준비찬양을 한 이후에 전통예배를 드렸다.

2000년도부터 지금까지 현재를 살펴보자. 현재는 부흥기인 동시에 경쟁기다. 교회들이 부흥하면서 본의 아니게 교회와 교회간 경쟁의 시대가 됐다. 교회정치는 목사, 당회와 함께 전문위원회가 생기면서 당회 권한이 분산돼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목회의 패턴도 바뀌어 제자훈련과 함께 셀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으며, 선교가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목회자의 자질에 대한 요구는 크게 변화되어 이제는 리더십과 영성, 지성, 덕성을 갖춘 지도자 거기에 비전메이커가 되야 한다. 다른 교회보다 앞서는 비전을 제시하는 목회자가 되야 하고 도덕적으로 결함이 없어야 한다. 2세 교육에 대한 욕구는 더 복잡해져서 단순히 목회자만 있을 뿐 아니라 그 목사가 학생들에게 사회적, 영적, 교육적으로 영향을 줘야 한다. 예배는 전통예배와 현대예배가 균형을 맞춰간다. 2000년대까지 가스펠과 뜨거운 감정을 표현하는 현대적 예배가 성황을 이뤘지만 이제는 오히려 진지하고 조용한 예배를 원한다. 지금은 현대적 예배의 요소인 찬양으로 예배의 문을 열고, 예배는 전통적인 형식으로 드리는 것으로 정리가 됐다.

마지막으로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앞으로 교회는 부흥기인 동시에 무한 경쟁기로 들어간다. 교회가 조금이라도 다른 교회에 비해 앞서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회행정은 목사와 당회, 전문위원회와 함께 부교역자도 권한을 나누게 되는데 담임목사 혼자만 교회를 이끌어 가던 것에서 팀 목회를 하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당회의 권한은 점차적으로 적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또한 목회에 있어서 설교와 교육, 셀과 선교가 중시되면서 아날로그 시대의 목회에서 이제는 디지털시대로 빠르게 변하고 있어 이런 부분은 젊은 목회자들에게 배워야 한다. 또한 목회자는 리더십과 영성, 지성과 덕성을 갖추고 비전메이커가 되야 하며 인터치를 해야 한다. 뭔가 감동이 되야 성도들이 은혜를 받는다. 설교도 단순하면서도 메시지가 가슴에 와 닿아야 남는다. 그리고 2세 교육은 더욱 다양해지고 전문적으로 바뀌며 예배는 점점 세상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교회에서라도 진지하게 무게 있는 예배를 선호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