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두 설교자가 광장에서 청중을 모아 놓고 복음을 전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죄 짐입니다. 참된 행복은 바로 이 죄 짐을 벗어 버리는데 있습니다. 그러는데 한 사람이 소리치기를 그럼 그 죄 짐이 몇 파운드나 됩니까? 나야 말로 그런 무게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니 정말 행복한 사람이 아니겠소..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설교자는 그 청년을 향해 이렇게 반문하기를 청년이여 만약에 시체위에다 400파운드 바위를 올려놓았다고 한다면 시체가 그 무게를 느끼겠소? 안 느끼겠소? 그야 못 느끼죠. 죽었으니까. 맞습니다.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은 아무 죄책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자기의 죄책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살아나기 시작한 증거라 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최대의 기쁨은 무엇이라고 생각 합니까? 그것은 죄사함의 기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용납하시고, 용서 하시고, 새롭게 해 주셨다는 기쁨보다 큰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최대의 슬픔이 있다면 우리가 용서 받은 그 확신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가 죄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죄와 더불어 싸움으로,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려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알아야 하는 세 가지 사실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서두에 바울은 이런 질문으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롬 6: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죄에 거하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계속 죄를 짓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 바울은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전장 마지막 절에 (롬 5:20)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 부분의 말씀을 잘못 오용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의 계속적인 죄악의 삶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넘치니까 더 큰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더 많이 죄를 지어야 한다는 궤변을 전개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남용하고 오용하는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바울의 답은 바로 전혀, 결코, Never ever..No 결코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New English Bible에서는 NO NO NO.. 왜냐? 우리는 죄에 대해서 죽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근거이며 , 사실입니다.

물론 바울은 여기서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앞으로 전혀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여전히 죄의 영향(Power)에 놓여 있음으로 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계속적으로 죄를 범하며 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새가 지나가다가 머리에 똥을 떨어뜨리는 건 막을 수 없지만 새가 내 머리에 둥지 틀게 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바로 바울이 말하는 것이 이러한 맥락인 것입니다. 우리가 연약해서 죄를 짓지만 그 죄 속에서 알 까고, 둥지 짓고 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 죄와 동고동락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면서 그의 삶에 변화가 없다면 그는 진정한 크리스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이 달라야 합니다. 말하는 것이 달라야 합니다. 행동하는 것이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를 고의적으로 지속적으로 짓고 살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가장 불쌍한 기독교인을 꼽으라면 죄를 계속 짓고는 도망 가버리면, 그 자리를 피해버리든지, 부인하면 된다고 생각 하는 사람들입니다.

요일 3장9절 하나님께 로서 난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얼핏 보면 크리스천은 죄를 짓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같으나 여기서 말하는 시제는 현재입니다. 헬라어 현재 시제는 바로 지속적인 반복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Continuous Action, 고의적인 반복의 의미를 담는 시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기 쉽게 번역 한다면 하나님께로 난자마다 죄를 고의적으로 지속적으로 짓지 아니하나니 라고 보면 됩니다.

의도적으로 죄를 지으면서 죄책감이나 아무런 감정이나, 양심의 가책이 없다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난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어떻게 하면 죄의 영향력을 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죄의 세력으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오늘 본문은 바로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세 가지 근거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바로 내가 믿는 순간부터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 안 ‘In Christ’ 라는 말은 자그마치 120번이상이나 신약에 나오는 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또 다른 표현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이란 표현입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은 본문에는 바로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일어난 사실을 그리스도 안이라는 개념에 접목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다. 언제? 바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입니다. (롬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세례라는 뜻은 바로 예수님의 죽음에 우리가 동참을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과 연합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세례의 원뜻은 바로 Baptizo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 단어는 바로 천을 물들일 때 염료 속에 담글 때 쓰는 말입니다. 즉 물감의 색과 동일한 색으로 변하기를 원할 때 그 물감 속으로 담근다는 뜻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이 내가 죽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바로 이 세례라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가 되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생각 할 때마다 장례식을 생각 하면 됩니다. 우리가 죽는 것입니다.
어디에..죄인이 죄에 대해서 죽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도 마찬가지로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이 죄의 영향력에서 이길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의 것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요, 우리는 그 부활의 동참자이기 때문에 오늘 본문은 이것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골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과거완료 입니다.

그러므로 내가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은 바로 그의 부활의 능력 안에 내가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위치적인 진리라고 지난 시간에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하는가 하는 것은 잠시 후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두 번째 사실은 6-7절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ineffective-fire 해고,대체)abolish, to cause to cease)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롬 6: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나의 옛 죄성이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죽은 사람을 유혹 할 수 있습니까? 없지요..아무리 맛있는 것 냄새로 유혹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멋진 것, 황홀한 소리를 들려 줘도 반응이 없는 게 바로 죽은 사람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면 죄의 영향이 나를 주관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주관자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우리는 죄의 종이였습니다. 그러므로 죄가 시키는 대로 이리저리 움직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는 주님의 종입니다.

하인은 그 주인이 누구이냐에 따라서 삶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옛 주인, 죄성으로 꽁꽁 묶여 있던 그 주인이 우리를 주관치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주인이 바뀌었는데도 이래라 저래라~~하는 옛 주인을 향해 우리는 단호히~~No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며 여기서 말하는 옛사람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엡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옛 자아입니다. 우리의 옛 본성을 의미 합니다. 죄를 즐기려는 우리의 경향성이요, 죄의 낙을 찾아다녔던 우리의 삶의 중독성을 말하는 것이며 우리의 거듭나기 전의 우리의 Life Style을 말하는 것입니다.

골3:4-9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이런 것이 바로 우리의 옛사람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근거는 바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이고 또 하나는 바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와 함께 부활 했다는 사실입니다.

세 번째 사실은 바로 이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서 우리의 승리는 Guranteed.. 보장이 되어 졌다는 사실입니다.

(롬 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롬 6: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롬 6:10)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롬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아멘

이것은 진실이고 사실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러한 모든 지식이 어떡해 해야 나에게 유익이 있습니까? 이런 질문이 나올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실에 근거해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면 아무런 유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했듯이 우리는 정확히 알아야 하고 또 믿어야 하며 마지막은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럼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 그건 이미 세 가지 사실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롬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여기다라는 말은 -비지니스 용어입니다. 장부를 기재 할 때에 이익으로 산출하라는 것입니다. 이미 내 것이 되었다고 믿으라는 말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