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킨스의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김영사)>에 대한 종교계의 강력한 반론은 이 책이 발간된지 1년이 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잘 알려진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도킨스의 신(Dawkins’ God)>과 <도킨스의 망상(Dawkins Delusion?)>, 알파코스 창시자인 니키 검블의 <만들어진 신 vs 스스로 있는 신(Is God a Delusion?)>, 데이비드 A. 로버트슨 목사의 <스스로 있는 신(Dawkins letters:)> 등 아는 것만 이 정도다. 발간 즉시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도킨스의 이 책이 기독교에 주는 영향력이 그만큼 컸기 때문일까, 아니면 도킨스의 주장이 너무 조악해 그만큼 반론의 여지가 많기 때문일까.

여기에 한국인 신학자까지 가세했다. 최근 발간된 <종의 기원 vs 신의 기원(동연)>도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 대한 한 신학자의 응답’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왔다. 이 책을 쓴 성공회대 김기석 교수는 “나는 신학자이기에 도킨스의 과학적 견해를 두고 논쟁할 자격이 없다”며 “그 분야의 비전문가가 어찌 세계적인 생물학자의 학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전제했다.

“내 종교관 도킨스보다 급진적, 그래도 본질 비판 수긍 못해”

물론 도킨스는 신학에 대해 그렇게 하고 있다. 김 교수는 그러나 “반대로 어떤 과학자가 종교 또는 신학의 내용에 대해 단순한 견해 표명이나 완전히 단정적인 판정을 내린 것을 보면서, 비록 내가 뛰어난 신학자는 아닐지라도 일정 부분 응답하는 것이 크게 주제넘는 짓은 아닐 것”이라며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밈(meme) 개념으로 종교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아주 흥미롭지만, <만들어진 신>에서 종교 전반에 대해 최종 심판자를 자처하면서 종교에 대해 사형 언도를 내린 것에는 무언가 응답할 필요를 느끼게 됐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도킨스가 현실에서 나타난 현상적인 종교 행태에 대한 비판에는 상당 부분 수긍한다. 그는 “어쩌면 나의 종교관이 도킨스보다도 더 급진적인지도 모르겠다”고까지 전제하지만, “종교의 본질에 대한 비판은 수긍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또 진화론을 생명 현상에 대한 올바른 과학적 설명으로 받아들이지만, 그것은 과학적 설명에 한해서이고 다윈주의를 명백한 무신론적 귀결로 해석하는 도킨스의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만 “다윈주의의 신학적 함의에 대해 특정한 결론을 따르기보다는 오늘날 종교에 대해 여러 다른 견해를 가진 다윈주의자들의 주장을 경청하면서 열린 토론을 즐기고 싶은 상태”라고 한다.

김 교수는 도킨스의 종교비판을 네 가지 요점으로 정리한다. 첫째, 전통적 유신론은 신비롭고 정교한 생명 현상을 보면서 설계자인 신을 유추하게 하였지만 다윈주의가 제공하는 설명은 그러한 설계자가 불필요하거나 불가능하게 만든다. 둘째, 종교는 증거가 아닌 신념에 근거해 존속하는데, 이는 엄격한 증거에 토대를 둔 과학 정신과 상반되고, 과학이 옳다면 종교는 폐기돼야 마땅하다. 셋째, 종교는 시대적·문화적 편견에 사로잡혀 세계에 대해 빈약하고 제한적인 모습밖에 설명하지 못하는 반면, 과학이 설명하는 세계는 보편적이고 장엄하며 제한이 없다. 넷째, 종교는 인간의 마음을 전염시켜 서로 미워하게 하고 전쟁을 일으켜 인류를 살상에 이르게 하는 등 결국 악에 이른다 등이다.

한 마디로 종교와 과학을 단순 비교하면서 종교에 대한 과학의 우위를 주장한 것이다. 이를 위해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에서 무신론자들을 상대로 과학적 논증이 아닌, 그가 비판해 마지 않았던 ‘종교적인’ 선동을 감행했다.

창검으로 이룬 팍스 로마나에서 사랑을 외치신 예수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진보적으로’ 대답한다. 예수와 그를 따르던 ‘갈릴래아’의 촌놈들은 세계 최강의 창검으로 이룬 팍스 로마나의 심장부에 들어가 엉뚱하게도 사랑을 외쳤고, 남의 것을 빼앗기 잘하는 힘센 놈이 최고수가 되는 게임의 법칙에서 남에게 내주는 나눔과 희생이 그보다 한수 위임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의 위치를 만물의 영장에서 생태계 한 변두리 쯤으로 밀어냈지만, 예수의 삶은 나눔으로 부활하셨고, 없는 자들이 먼저 자발적으로 나눔을 통해 승리하는 길을 성서는 제시해주고 있다고 설파한다.

그리고 도킨스처럼 종교 자체를 너무 미워한 나머지 무신론 대 유신론으로 전선을 그어서는 안 되며, 극단주의자(근본주의자) 대 온건주의자(평화주의자)의 구도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과 종교는 적이 아니며, 평화롭고 정의로운 미래 세계에 대한 꿈을 갖고 있고 합리적인 이성과 판단력을 지닌 온건주의자들은 어떤 분야에 속해 있든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사가 그렇듯 종교도 긍정적·부정적 역할이 있고, 과학도 마찬가지로 이기의 도구일 수도, 파괴의 도구일 수도 있으므로 그 판단은 역사적 맥락에서 인간의 자유와 해방, 진리와 도덕, 생명의 아름다움을 꽃피우도록 기여했는지에 달렸다고 말한다.

하지만 김 교수는 너무 나갔다. 창조론보다 진화론을 지지하는 듯한 그의 주장은 차치하고서라도, 종교 혼합현상을 ‘아주 당연하고 보편적인’ 현상, 즉 종교의 진화 쯤으로 여기고 있는 점에서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그는 구약성경에서도 이스라엘이 주변의 경쟁하던 여러 종족과 투쟁, 혹은 협력하는 역사를 겪으면서 고대 근동 지방의 여러 문화권에 존재했던 다양한 종류의 신과 갖가지 신앙을 받아들여 하나의 유일신 사상으로 점차 발전됐다고 언급하는 한편, 불교도 1천년 이상 토착 샤머니즘과 도교·유교의 신앙을 흡수, 발전시켜 왔다며 기독교도 그러했다고 강변한다. 그는 창조론이 엄밀한 의미에서 과학 이론이 아니라 창조에 관한 신앙 고백이라고 설명하면서도, 정작 성경을 지나치게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이해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1부 마지막에서 “신이라는 개념 자체가 인간의 논리나 언어를 통해 증명될 대상은 아니다”며 “신은 믿는 사람의 마음 속에 존재하며, 믿는 자에게는 세계 안과 밖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