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지도자들 중 한분이었던 백범 김구는 서산대사의 시로 알려져 있는 아래의 문장을 입버릇처럼 암송하고 다녔다 합니다.

눈길을 걸을 때
흐트러지게 걷지 말라
내가 걷는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의 길잡이가 될 것이니

백범이 활동하던 일제 치하는 우리 민족으로서는 말 그대로 끝도 보이지 않는 흑암의 나날들이었습니다. 공식적으로 일제강점기가 1910년 8월 22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약 36년 동안이었지만, 일본은 1895년에 이미 우리의 국모인 명성황후를 건청궁에서 일본 깡패를 동원하여 난자 시해하였고, 뒤이어 1907년에는 고종황제를 강제로 폐위시키는 등 있을 수도 없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한일합방 이후에는 조선총독부를 세워 철저하게 경제적으로 수탈하였고, 우리 민족의 고유성을 말살하였으며 영구적으로 예속화 하는데 필요한 온갖 정책들을 거침없이 수행해 나갔습니다. 힘없는 백성들은 언제 나라의 주권을 되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 절망하였습니다.

당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수많은 지도층 인사들은 백성들에게 충성스러운 일본제국의 시민들이 되라고 공공연히 목소리를 높이곤 하였습니다. 1945년 8월에 일제가 패망하고 자연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한 후에, 소위 이들 친일 인사들은 "그렇게 빨리 일본이 망할 줄은 몰랐다."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생명은 하나뿐임은 분명한데, 그들은 그 생명을 부지하려고 그렇게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후에도 그들의 반민족적 행위를 뉘우치지도 아니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서 백범을 위시한 항일 인사들은 그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걸고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갖은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백범의 경우 그의 가슴에 늘 담고 다녔던 고독감과 책임감이 얼마나 비장했을까 하는 것은 위에 적은 시구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시구의 말들을 삶을 통해 실천하려고 부단히 애를 쓴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안전과 행복에 대하여는 역으로 늘 무능하고 무책임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우리의 힘으로 얻은 민족 해방은 아니었으나, 광복에 대하여 그나마 우리 민족이 부끄럽지 않은 이유는 백범 같은 선각자들이 앞장서서 국운을 일으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들의 몫을 잘 감당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목사로서 제가 그와 같은 비장한 각오가 있는지 되돌아보았습니다. 영적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앞에서 걸어가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인데 잠시 잠깐의 외로움을 달랠 요량으로 구경꾼들이 모여 있는 이 판, 혹은 저 판에 기웃거리지나 않았는지, 책임감이 너무 막중하여 짊어진 부담을 잠시라도 슬그머니 내려놓을 쉼터를 찾으려 괜한 에너지를 낭비하지나 않았는지 자문해 보았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라고 오늘도 나의 주님은 내게 말씀하시는데, 목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저만치 앞서 가시는 주님을 꾸준히 그리고 진실하게 따라가고 있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