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의 정치를 바꾸라고, 교계가 주목하고 있으니 꼭 기독정치를 이루라고 마지막 당부하시던 모습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故 김준곤 목사를 추모하는 국회조찬기도회 회장 황우여 의원(한나라당)의 목소리에 그리움이 사무쳤다. 고인은 떠났지만 그와 함께 기도하던 이들은 자리를 지켜나갔다.
7일 오전 7시 30분 국회의사당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조찬기도회 10월 정기예배가 김준곤 목사 추모예배로 드려졌다. 계속되는 국정감사로 각자의 자리를 떠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12명의 기독의원들이 참석, 고인의 뜻에 따라 기독정치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나갈 것을 다짐했다.
김 목사에게 있어 민족복음화의 소망은 정치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가 시작한 국회조찬기도회와 매년 한 번씩 대통령과 함께 드리는 국가조찬기도회는 정치 복음화의 첫 걸음이 되었고, 정교유착이라는 일부의 비판에도 김준곤 목사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1963년과 1964년 美 국회 상·하원 조찬기도회에 참석했던 김 목사는 공식으로 소개되고 인사말을 전할 기회가 있었다. 이런 인연으로 1964년경 美 국가조찬기도회와 국회조찬기도회를 주관하는 국제기독교지도자협의회(ICL) 총무 로빈슨 씨와 국제 C.C.C 이사이자 美 국회조찬기도회 담임목사였던 하버슨 박사가 한국을 방문,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한국에서도 국회조찬기도회를 시작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김 목사는 당시 공화당 의원이었던 박현숙 장로, 김종필 의원과 의논 끝에 전적으로 동의를 얻어냈고 국회 사무처에 등록된 기독 의원 약 30명의 명단을 건네받았다. 김 목사는 65년 3·1절을 앞둔 2월 27일, 김종필 당시 공화당 의장(전 국무총리)과 김영삼 당시 민중당 원내총무(전 대통령), 정일권 국무총리 등 20명 정도가 참석한 가운데 취지를 설명했고 이를 시작으로 정례예배가 드려지게 됐다.
국가조찬기도회 역시 국회조찬기도회가 거듭되면서 시작됐다. 대통령을 모시고 예배드리자는 제안 끝에 1966년 3월 8일 7시 30분 구 조선호텔에서 제1회 한국 국가조찬기도회가 개최되었다. 비록 박정희 대통령은 기도회 5분 전에 긴급한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한다는 연락을 통보해왔지만 2회 때부터는 계속 참석해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황우여 의원 “그 말씀이 유언이 될 줄은… 교회가 도와 달라”
인사말을 전한 황 의원은 2006년 기독교정치인 양성을 위한 기독교정치아카데미를 열었을 때 기뻐하시며 첫 강좌를 이끌어주신 모습에 놀랐었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작년 5월에는 직접 기독정치인들을 불러 정치를 올바로 세우기 위해 기독교정치학교를 각 기독교 대학과 연계해서 100 학점을 이수해야 공천받을 수 있도록 하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며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황 의원은 “위독하시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을 때 말씀하실 힘조차 없어 보이셨는데도 나라의 정치를 바꾸어 달라고, 대한민국을 새로운 나라로, 예수의 정치로 바꿔 달라며 힘주어 당부하시던 게 결국 유언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비록 늦게 김 목사님을 만나 뵈었지만 사랑과 영감어린 당부의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자꾸만 신앙의 영웅들이 떠나시는 2009년의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걱정이 된다”고 전했다.
이어 황 의원은 “민족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드리는 기도회는 대표성이 있다. 곧 대한민국 국민이 드리는 예배요 기도회이기에 그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기독 의원들이 1년에 한 번씩 잔치를 열어 전 세계 정치인들을 대접하라는 말씀을 하시곤 했는데 이제야 그 말씀이 생각난다. 그러한 목사님의 말씀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자”고 다짐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국교회를 향해 “교회들이 기독 정치인들을 전액 후원하는 운동을 펼쳐나갔으면 좋겠다”며 “교회가 스스로 훌륭한 정치인을 키워내는 모태와 같은 역할을 해주길 소망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한편 이날 추모예배에는 연동교회 이성희 목사가 설교를 전해 기독정치인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줄 것을 요청했으며 C.C.C 리더 출신으로 오랫동안 김 목사를 보좌했던 두상달 장로(칠성산업 대표)가 간증을 전했다.
故 김준곤 목사를 추모하는 국회조찬기도회 회장 황우여 의원(한나라당)의 목소리에 그리움이 사무쳤다. 고인은 떠났지만 그와 함께 기도하던 이들은 자리를 지켜나갔다.
7일 오전 7시 30분 국회의사당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조찬기도회 10월 정기예배가 김준곤 목사 추모예배로 드려졌다. 계속되는 국정감사로 각자의 자리를 떠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12명의 기독의원들이 참석, 고인의 뜻에 따라 기독정치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나갈 것을 다짐했다.
김 목사에게 있어 민족복음화의 소망은 정치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가 시작한 국회조찬기도회와 매년 한 번씩 대통령과 함께 드리는 국가조찬기도회는 정치 복음화의 첫 걸음이 되었고, 정교유착이라는 일부의 비판에도 김준곤 목사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1963년과 1964년 美 국회 상·하원 조찬기도회에 참석했던 김 목사는 공식으로 소개되고 인사말을 전할 기회가 있었다. 이런 인연으로 1964년경 美 국가조찬기도회와 국회조찬기도회를 주관하는 국제기독교지도자협의회(ICL) 총무 로빈슨 씨와 국제 C.C.C 이사이자 美 국회조찬기도회 담임목사였던 하버슨 박사가 한국을 방문,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한국에서도 국회조찬기도회를 시작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김 목사는 당시 공화당 의원이었던 박현숙 장로, 김종필 의원과 의논 끝에 전적으로 동의를 얻어냈고 국회 사무처에 등록된 기독 의원 약 30명의 명단을 건네받았다. 김 목사는 65년 3·1절을 앞둔 2월 27일, 김종필 당시 공화당 의장(전 국무총리)과 김영삼 당시 민중당 원내총무(전 대통령), 정일권 국무총리 등 20명 정도가 참석한 가운데 취지를 설명했고 이를 시작으로 정례예배가 드려지게 됐다.
국가조찬기도회 역시 국회조찬기도회가 거듭되면서 시작됐다. 대통령을 모시고 예배드리자는 제안 끝에 1966년 3월 8일 7시 30분 구 조선호텔에서 제1회 한국 국가조찬기도회가 개최되었다. 비록 박정희 대통령은 기도회 5분 전에 긴급한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한다는 연락을 통보해왔지만 2회 때부터는 계속 참석해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황우여 의원 “그 말씀이 유언이 될 줄은… 교회가 도와 달라”
▲국회조찬기도회 회장 황우여 의원(한나라당)이 고인을 추모하며 기도하고 있다. ⓒ 송경호 기자 |
황 의원은 “위독하시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을 때 말씀하실 힘조차 없어 보이셨는데도 나라의 정치를 바꾸어 달라고, 대한민국을 새로운 나라로, 예수의 정치로 바꿔 달라며 힘주어 당부하시던 게 결국 유언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비록 늦게 김 목사님을 만나 뵈었지만 사랑과 영감어린 당부의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자꾸만 신앙의 영웅들이 떠나시는 2009년의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걱정이 된다”고 전했다.
이어 황 의원은 “민족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드리는 기도회는 대표성이 있다. 곧 대한민국 국민이 드리는 예배요 기도회이기에 그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기독 의원들이 1년에 한 번씩 잔치를 열어 전 세계 정치인들을 대접하라는 말씀을 하시곤 했는데 이제야 그 말씀이 생각난다. 그러한 목사님의 말씀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자”고 다짐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국교회를 향해 “교회들이 기독 정치인들을 전액 후원하는 운동을 펼쳐나갔으면 좋겠다”며 “교회가 스스로 훌륭한 정치인을 키워내는 모태와 같은 역할을 해주길 소망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한편 이날 추모예배에는 연동교회 이성희 목사가 설교를 전해 기독정치인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줄 것을 요청했으며 C.C.C 리더 출신으로 오랫동안 김 목사를 보좌했던 두상달 장로(칠성산업 대표)가 간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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