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형제에게,

한국의 어떤 지성인이“이 땅이 싫어진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질색하는 것으로 아무데서나 담배 피는 사람이 너무 많고, 사고 확률이 미국의 10배인 교통무질서, 한국인들의 지나친 겉치레, 그리고 한국인들의 무례함 등을 꼽았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대기 오염, 무례함, 몰상식, 몰염치, 불공정, 부패 등에 넌더리를 치는 국민이 대다수라고 하며 아무도‘미안합니다’또는‘죄송합니다’라는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그래서 환갑을 전후한 나이에 이민을 가거나 계획을 세우고 있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 그런 이들은 대부분 중산층 이상으로 이민 갈 돈이면 국내에서 살아도 경제적 어려움은 그리 크지 않은 사람들이다. 또 이민생활의 고통을 비교적 잘 안다. 그럼에도 이 절망과 냉소의 척박한 땅에 질려 영원히 나가려는 것이다”고 썼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어떤 정신 나간 녀석이 그런 소리를 했습니까? 한국이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데!”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저는 미국 공항 화장실에서 복도로 막 나오려고 했고, 한 미국인은 복도에서 화장실로 막 들어오려고 하다가 부딪칠 뻔했습니다. 그런데 상대편이“Pardon me”(죄송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실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든지 두 사람 같이 잘못한 것인데 ...‘죄송합니다’라고 했을 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는지 ... 또는 나의 몸에 살짝 부딪쳤는데“I beg your pardon”(죄송합니다)이란 말을 듣지 않습니까? 이것은 하나의 상식이요 미국인들의 예의입니다. 우리는 부딪히고 바라보면,“보긴 뭘 봐?”하고 언성을 높이거나“별 꼴이야!”하고 눈을 흘기는데... 작은 결례에도 사과를 하면 서로가 기분이 좋을 텐데 말입니다.

바바라 엔겔은 진정한 사과(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빔)는 다음의 3R 즉 후회(Regret), 책임(Responsibility), 개선방법(Remedy)으로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탕자는 집으로 돌아와 그의 아버지에게“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눅 15:21)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불순종의 삶을 후회했으며, 그런 삶에 책임을 지려고 하였으며, 아버지의 품꾼의 하나로 일할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19절).

우리는 한국을‘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하며 살았지만, 미국인들은‘동방 무례지국’이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미국에 살면서‘죄송합니다’(Pardon me)와 ‘고맙습니다’가 몸에 배었으면 합니다. 신앙생활에서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 무엇 무엇을‘주시옵소서’는 그만하고,‘아버지, 죄송합니다’와‘주님, 감사합니다’가 더 많았으면 합니다. 샬롬!

목양실에서 문창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