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을 보라.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다.”

경제학 용어에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이 있다.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고, 가짜가 진짜를 대체하고, 거짓이 진실을 구축(驅逐)하는 것을 말한다. 그레샴의 법칙은 이제 경제학의 범위를 넘어서 영적범위까지 침투(浸透)하여 맹위를 떨치고 있다. 불황이나 무질서 현상은 왜 생기나?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기 때문이다.

IMF 같은 금융위기가 왜 왔나? 화폐의 흐름이 정체되어 양화가 힘을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회에 문제가 왜 생기나? 복음의 생명력이 정체되어 영적양화의 힘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로마가 왜 멸망했나? 에드워드 기본(Edward Gibbon)은 말했다. “로마가 멸망한 이유는 외세의 침입 때문이 아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내분 때문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할 때 제일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과정의 생략과 붕괴이다. 영적으로 그 원인을 심층 분석한다면 이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인스턴트 정신 혹은 대체사회(substitute society)가 낳은 이기주의적 풍조가 그 주범이다.

대체사회를 익숙하게 살아가려는 이기주의에 물든 현대인들은 항상 쉬운 과정만을 생각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과정의 미학을 무시한다. 3D를 꺼려한다. 삶의 질과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을 하든지 쉽고 빨리 가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선호한다. 그래서 이들은 설탕 대신에 화학 감미료를, 천연 가죽 대신에 비닐을, 면이나 실크 대신에 나이론을, 목재 대신 플라스틱을 거침없이 선호한다. 영적으로도 분명 그렇다.

더 놀라운 것은 이와 같은 과정의 생략 현상은 오늘날 교회 안에도 깊이 침투하여 영적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과정 무시사상은 교회의 역할을 영혼의 구원이 아니라, 서비스 기관으로 변질시키고 있으며 편의점의 인스턴트 음식처럼 값싼 구원, 값싼 은혜를 자연스럽게 제공하고 있다.

영감 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인생 여정의 유일한 지도로 붙들지 않고 인간 중심의 과학이나 철학과 지식을 의지하는 합리적 이성주의, 다원주의가 여기저기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과정의 개혁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과정이 다르면 열매가 다르다”

봄이 되어 씨를 뿌리려면 먼저 밭을 갈아엎고 씨를 뿌려야 하는데 오늘날 교회는 묵은 땅에 그대로 씨만 뿌리고 있다. 영적농사의 기본 순서와 과정이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이런 잘못된 현상을 지적하여 이렇게 말한다.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호세아 10;12).

이 말이 무슨 뜻인가? 생략할 수 없는, 생략해서는 안 될 기본과정을 무시하지 말라는 경고이다.

때때로 목회자들이 함께 모여 탁구나 테니스를 즐긴다. 재미를 돋우기 위해 점심내기 시합을 자주 하는데, 때로는 계속 질 때가 있다. 슬럼프에 빠진 것이다. 슬럼프에 빠지면 계속 지는 형국(形局)이 되고, 그래서 좀 억울하기는 해도 계속 점심을 살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슬럼프에서 빨리 헤어 나오는 길이 무엇일까? 기본으로 빨리 돌아가는 것이다. 처음 코치에게 배웠던 기본동작을 기억하고 빨리 기본으로 돌아가 그 과정에 충실하면 곧 슬럼프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기본(基本)에 충실 하라“

농사꾼이나 운동선수나 신앙인을 막론하고 자신이 선 그 자리에서 성공하는 비결은 언제나 기본 과정에 충실 하는 것이다. 히딩크 감독이 우리나라에 와서 늘 외친 구호가 “기본에 충실 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그동안 한국 축구는 기본은 뒷전으로 놔두고 어렸을 때부터 오직 이기는 것만 배워왔다고 지적 했다.

그는 초 중 고등학교 축구경기에서 벤치의 감독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한 번에 처리해“막고 차고 걷어 내”라고 지적했다. 이기기 위해 안전만을 생각하다보니 기본 기술에 충실할 틈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 축구는 축구가 아니었을 것이다.

기본 과정에 충실하지 않으면 어느 분야에서든 발전하지 못하고 성장 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열매를 거두는 기쁨도 누리지 못할 것이다. 분명히 기억하라. 기본에 충실하고 과정이 남 다르면 결과도 확실하게 남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