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정죄받는 두 번째 이유는 진리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롬 1:21) 그들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거부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 없이도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화론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세상을 창조하심으로부터 나타나는 그 영광을 뺏어버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우연히 생겨났다는 것을 믿으려고 함으로써 하나님께 돌려야할 영광을 뺏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철학을 연구할 때 불가분 때어 놓을 수 없는 것이 그 철학을 창시한 사람의 일생에 대한 연구입니다.
예를 들어서 공산주의를 연구한다고 할 때. 칼 막스가 어떻게 살았나 그 배경을 먼저 봐야 합니다. 허무주의를 연구 한다고 했을 때는 니체의 배경을 살펴 볼 것입니다. 정신 분석학을 알려고 한다면 프로이드의 생애를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살았던 행적을 보십시오. 그 사람들이 살았던 라이프 스타일이 그 사람들이 주창한 학설을 결정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균형을 잃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주창한 이론들은 자기들이 살았던 삶의 방식을 합리화 시키려고 했던 하나의 변명에 불과 했던 것입니다.
프로이드가 그 일례입니다 그가 주장하는 범 성욕론은 인간의 모든 것을 성적욕망으로 파악한다는 것으로서 결국 그는 자신의 근친상간의 삶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발전시킨 자기 합리화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니체의 허무주의는 ‘신은 죽었다‘란 것입니다. 죽기는 누가 죽어요 자기가 죽었습니다. 그의 철저한 추종자인 히틀러를 보십시오. 악마 같이 수백만을 살해 하지 않았습니까? 모두가 정신병적인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항상 그럴듯한 이론을 앞세운 사람들의 소위 철학이란 것을 볼 때에 그들이 어떤 삶의 열매를 맺었는가를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다 진리를 거부하는 인간의 모습의 대표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가지는 하나님게 감사치 않는 것이 바로 진리를 거부하고 기피한 증거이고 이것이 정죄 받는 이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사해야 할 때에 감사치 아니 할 때 하나님에게는 엄청난 배은망덕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가 떠나서 죄악의 포로가 된 사람은 항상 불평, 불만, 원망이 그치지를 않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의 시금석은 감사가 있느냐 없느냐를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세 번째 그들이 정죄 받는 이유는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진리를 억압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거부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아예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Repress Reject, Replace입니다. 거짓으로 바꾸는 것, 이것을 우상숭배라고 말합니다. 즉 그들 스스로 신을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롬 1:25)
성경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존재, 하나님과 대화하는 존재, 하나님의 인품을 반영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즉 사람은 종교적 존재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가 말하기를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종교의 씨가 심겨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누구나 자기보다 더 나은 존재를 섬기고 예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무신론자는 없습니다. 사람은 누군가를 섬기고 있습니다. 신이 없다고 해도 최소한 자기 자신을 믿고 섬긴다 이 말입니다.
문제는 사람이 누구를 섬기는가 하는 것입니다. 창조주이신 참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느냐 아니면 다른 무엇을 신으로 섬기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사람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다른 것을 예배하고 섬깁니다. 바로 그 다른 것이 우상입니다. 25절을 보십시오. 터무니없는 치환을 말합니다.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인간들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사람과 짐승과 벌레의 형상을 만들고는 그것을 신이라고 합니다. 우상숭배란 무엇입니까? 하나님 자리에 다른 무엇을 앉히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앉으셔야 할 자리가 어디입니까? 우리의 마음 중심입니다. 왜 하나님을 우리의 마음 중심에 두어야 합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우상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인간의 이기심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상을 만들어서 그것을 섬기고 기도하고는 것은 더 많은 재산, 권력, 건강, 축복을 갖기를 원해서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만든 우상이 자기를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질 지상주의를 우상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사람이 주인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무엇으로 주인을 삼고 그것을 섬기면 우리의 모습은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그 섬기는 대상을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짐승을 신으로 섬기면 짐승처럼 됩니다. 여러분들이 조폭의 우두머리를 섬기면 깡패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돈을 섬기면 돈의 노예가 됩니다. 우리가 사람보다 못한 피조물을 섬기면 사람보다 못한 존재가 되고 맙니다.
어떤 우스겟 소리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사람과 개는 싸우면 안 된다고 합니다. 약에 개와 싸워서 이기면- 개보다 더한 놈이 되고 개와 싸워서 지면 개보다 못한 놈이 되고, 개랑 싸워서 비기면 개 같은 놈이 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벌레 같은 형상을 섬기면 벌레보다 못한 놈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더 나아가서 우리를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하나님도 벌레같이 취급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우상이 하는 역할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목적에 반역하는 행위입니다. 인간은 경건치 않음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는 존재라고 오늘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 진리를 누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진리를 거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진리를 바꾸려고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대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무신론을 가장한 불신에게 내리는 형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한 몸이고 그래서 하나님에게는 특별한 존재들입니다. 새 창조물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바로 불신으로 죽어있는 우리의 이웃을 위해서 하시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진노에서 그들을 구원해 내십시다. 이 축복의 삶을 그들에게 나누어 줍시다.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어떻게 나누시렵니까? 오랜만에 편지를 써보십시오. 친구를 향해 아님 좋은 서적을 사서 보내 보십시오. 여러분의 작은 관심과 노력이 엄청난 결실을 맺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롬 1:21) 그들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거부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 없이도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화론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세상을 창조하심으로부터 나타나는 그 영광을 뺏어버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우연히 생겨났다는 것을 믿으려고 함으로써 하나님께 돌려야할 영광을 뺏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철학을 연구할 때 불가분 때어 놓을 수 없는 것이 그 철학을 창시한 사람의 일생에 대한 연구입니다.
예를 들어서 공산주의를 연구한다고 할 때. 칼 막스가 어떻게 살았나 그 배경을 먼저 봐야 합니다. 허무주의를 연구 한다고 했을 때는 니체의 배경을 살펴 볼 것입니다. 정신 분석학을 알려고 한다면 프로이드의 생애를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살았던 행적을 보십시오. 그 사람들이 살았던 라이프 스타일이 그 사람들이 주창한 학설을 결정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균형을 잃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주창한 이론들은 자기들이 살았던 삶의 방식을 합리화 시키려고 했던 하나의 변명에 불과 했던 것입니다.
프로이드가 그 일례입니다 그가 주장하는 범 성욕론은 인간의 모든 것을 성적욕망으로 파악한다는 것으로서 결국 그는 자신의 근친상간의 삶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발전시킨 자기 합리화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니체의 허무주의는 ‘신은 죽었다‘란 것입니다. 죽기는 누가 죽어요 자기가 죽었습니다. 그의 철저한 추종자인 히틀러를 보십시오. 악마 같이 수백만을 살해 하지 않았습니까? 모두가 정신병적인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항상 그럴듯한 이론을 앞세운 사람들의 소위 철학이란 것을 볼 때에 그들이 어떤 삶의 열매를 맺었는가를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다 진리를 거부하는 인간의 모습의 대표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가지는 하나님게 감사치 않는 것이 바로 진리를 거부하고 기피한 증거이고 이것이 정죄 받는 이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사해야 할 때에 감사치 아니 할 때 하나님에게는 엄청난 배은망덕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가 떠나서 죄악의 포로가 된 사람은 항상 불평, 불만, 원망이 그치지를 않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의 시금석은 감사가 있느냐 없느냐를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세 번째 그들이 정죄 받는 이유는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진리를 억압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거부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아예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Repress Reject, Replace입니다. 거짓으로 바꾸는 것, 이것을 우상숭배라고 말합니다. 즉 그들 스스로 신을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롬 1:25)
성경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존재, 하나님과 대화하는 존재, 하나님의 인품을 반영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즉 사람은 종교적 존재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가 말하기를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종교의 씨가 심겨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누구나 자기보다 더 나은 존재를 섬기고 예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무신론자는 없습니다. 사람은 누군가를 섬기고 있습니다. 신이 없다고 해도 최소한 자기 자신을 믿고 섬긴다 이 말입니다.
문제는 사람이 누구를 섬기는가 하는 것입니다. 창조주이신 참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느냐 아니면 다른 무엇을 신으로 섬기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사람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다른 것을 예배하고 섬깁니다. 바로 그 다른 것이 우상입니다. 25절을 보십시오. 터무니없는 치환을 말합니다.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인간들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사람과 짐승과 벌레의 형상을 만들고는 그것을 신이라고 합니다. 우상숭배란 무엇입니까? 하나님 자리에 다른 무엇을 앉히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앉으셔야 할 자리가 어디입니까? 우리의 마음 중심입니다. 왜 하나님을 우리의 마음 중심에 두어야 합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우상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인간의 이기심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상을 만들어서 그것을 섬기고 기도하고는 것은 더 많은 재산, 권력, 건강, 축복을 갖기를 원해서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만든 우상이 자기를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질 지상주의를 우상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사람이 주인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무엇으로 주인을 삼고 그것을 섬기면 우리의 모습은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그 섬기는 대상을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짐승을 신으로 섬기면 짐승처럼 됩니다. 여러분들이 조폭의 우두머리를 섬기면 깡패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돈을 섬기면 돈의 노예가 됩니다. 우리가 사람보다 못한 피조물을 섬기면 사람보다 못한 존재가 되고 맙니다.
어떤 우스겟 소리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사람과 개는 싸우면 안 된다고 합니다. 약에 개와 싸워서 이기면- 개보다 더한 놈이 되고 개와 싸워서 지면 개보다 못한 놈이 되고, 개랑 싸워서 비기면 개 같은 놈이 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벌레 같은 형상을 섬기면 벌레보다 못한 놈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더 나아가서 우리를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하나님도 벌레같이 취급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우상이 하는 역할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목적에 반역하는 행위입니다. 인간은 경건치 않음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는 존재라고 오늘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 진리를 누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진리를 거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진리를 바꾸려고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대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무신론을 가장한 불신에게 내리는 형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한 몸이고 그래서 하나님에게는 특별한 존재들입니다. 새 창조물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바로 불신으로 죽어있는 우리의 이웃을 위해서 하시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진노에서 그들을 구원해 내십시다. 이 축복의 삶을 그들에게 나누어 줍시다.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어떻게 나누시렵니까? 오랜만에 편지를 써보십시오. 친구를 향해 아님 좋은 서적을 사서 보내 보십시오. 여러분의 작은 관심과 노력이 엄청난 결실을 맺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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