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에는 자신의 가난한 삶, 배우자, 학력, 질병, 자녀, 자신의 실패, 자신의 부모 등 다양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은 불편이지 죄도 아니고, 부끄러워 할 것이 아닙니다. 또 남편이 왜 부끄럽고 아내가 왜 부끄럽습니까? 부부는 서로를 용납하고 감싸줘야 합니다.
학력이 짧다고 자신감 없을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의 가치는 많이 배우고 좋은 학교 나온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있는 질병이 있습니까? 사람들에게 자녀가 부끄럽습니까? 그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것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부끄러워하는 자녀가 있었습니다. 교회에 어느 집사님이 얼굴에 화상을 입어서 좀 보기가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집 딸이 어머니랑 같이 다니는 것도 싫어하고 그런 어머니를 부끄러워하며 학교에 한 번도 모시고간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엄마의 얼굴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듣고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오래전에 집에 불이 났었는데 그때 어느 누구도 방안에 있는 딸을 구하러 불속에 들어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들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바로 엄마가 불길 속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딸은 구했지만 이 곱던 얼굴이 화상을 입어 보기 흉하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딸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에 눈물이 맺히고 주체할 수 없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몰려 왔습니다. 이제 어머니의 흉터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자랑스러운 것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흉터는 바로 엄청난 사랑의 상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오늘 성도가 부끄러워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복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꼭꼭 숨겨두고는 드러내지를 못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슬픔이고 비극입니다. 그리고 이런 비극에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건 바로 이 복음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진정 복음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결코 복음을 부끄러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복음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복음을 부끄러워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8절에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라고 축복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십니다. 이 사랑은 그리스도로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랑입니다. 로마에 있어 라는 말은 지역 교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서신이 우리에게 적용 되려면 훼더럴웨이에 있어 라고 받아야 합니다.
제가 오래전에 교회를 개척할 때 한국에서 큰 교회를 시무하시는 모 교회 목사님을 찾아 간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은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교회가 부흥 하려면 교회 평판이 좋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문이 좋게 난 교회가 되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 교회는 소문이 난 교회입니다. 어떠한 소문이 났을까요? 본문에 보니까 그들의 믿음이 소문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온 세상에 퍼졌다는 것입니다.
어떤 평판이 나야 할까요? 그것은 믿음의 소문입니다. 만약에 우리교회 소문이 거기 사람들은 자기주장만 강하다더라 아니면 자기들끼리만 끼리끼리라더라, 새 교인은 낄 틈이 없더라더라, 이런 소문이 나면 교회부흥은 어렵게 됩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표는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가 속해 있는 지역사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그건 옳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관용과 덕에 대한 소문이 나야합니다. 이 지역사회에 열린 교회로 소문이 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어느 누구나 와서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는 교회, 누구나 환영 받는 교회, 그런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 합니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한 교회가 있다면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아들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도 그러한 교회와 교제를 갖기를 간절히 바랬던 것입니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학력이 짧다고 자신감 없을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의 가치는 많이 배우고 좋은 학교 나온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있는 질병이 있습니까? 사람들에게 자녀가 부끄럽습니까? 그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것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부끄러워하는 자녀가 있었습니다. 교회에 어느 집사님이 얼굴에 화상을 입어서 좀 보기가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집 딸이 어머니랑 같이 다니는 것도 싫어하고 그런 어머니를 부끄러워하며 학교에 한 번도 모시고간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엄마의 얼굴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듣고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오래전에 집에 불이 났었는데 그때 어느 누구도 방안에 있는 딸을 구하러 불속에 들어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들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바로 엄마가 불길 속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딸은 구했지만 이 곱던 얼굴이 화상을 입어 보기 흉하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딸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에 눈물이 맺히고 주체할 수 없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몰려 왔습니다. 이제 어머니의 흉터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자랑스러운 것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흉터는 바로 엄청난 사랑의 상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오늘 성도가 부끄러워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복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꼭꼭 숨겨두고는 드러내지를 못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슬픔이고 비극입니다. 그리고 이런 비극에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건 바로 이 복음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진정 복음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결코 복음을 부끄러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복음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복음을 부끄러워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8절에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라고 축복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십니다. 이 사랑은 그리스도로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랑입니다. 로마에 있어 라는 말은 지역 교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서신이 우리에게 적용 되려면 훼더럴웨이에 있어 라고 받아야 합니다.
제가 오래전에 교회를 개척할 때 한국에서 큰 교회를 시무하시는 모 교회 목사님을 찾아 간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은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교회가 부흥 하려면 교회 평판이 좋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문이 좋게 난 교회가 되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 교회는 소문이 난 교회입니다. 어떠한 소문이 났을까요? 본문에 보니까 그들의 믿음이 소문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온 세상에 퍼졌다는 것입니다.
어떤 평판이 나야 할까요? 그것은 믿음의 소문입니다. 만약에 우리교회 소문이 거기 사람들은 자기주장만 강하다더라 아니면 자기들끼리만 끼리끼리라더라, 새 교인은 낄 틈이 없더라더라, 이런 소문이 나면 교회부흥은 어렵게 됩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표는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가 속해 있는 지역사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그건 옳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관용과 덕에 대한 소문이 나야합니다. 이 지역사회에 열린 교회로 소문이 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어느 누구나 와서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는 교회, 누구나 환영 받는 교회, 그런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 합니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한 교회가 있다면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아들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도 그러한 교회와 교제를 갖기를 간절히 바랬던 것입니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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