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한국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소식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노 대통령의 자살은 감당할 수 없는 위기가운데 그가 선택한 마지막 대안이었습니다. 요즈음 자살은 많은 한국인들이 위기를 맞이하여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인기있는 (?) 대안중의 하나인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를 보낸 바 있으며, 임기 중 수많은 위기 극복의 경험을 가졌던 대통령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면 어리고 연약한 서민들이야 얼마나 쉽게 자살을 떠올릴까 생각하니 저으기 나라의 앞날이 염려가 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애도의 뜻을 표하며 동시에 소망의 주님을 알고 있는 목사로서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누구나 위기는 만납니다. 그러나 위기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위기란 단어는 위험과 기회라는 두 단어가 합쳐진 말입니다. 즉 위기는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인생 역전의 기회가 된다는 의미이지요. 제가 좋아하는 독수리와 참새 예화가 있습니다. 참새는 폭풍우가 밀려오면 숨을 곳을 찾지만 독수리는 폭풍우의 기류를 타고 더 높이 올라 창공을 날으며 비상한다고 합니다. 참새에게 위기는 절망이지만 독수리에게 위기는 비상의 기회일 뿐입니다. 우리가 위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비상할 수 있는 이유는 위기 가운데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위기는 축복의 기회입니다.

부흥회 인도차 우리 교회를 방문하고 계시는 최낙중 목사님의 인생과 목회는 '그리스도인에게 절망은 없다.' 라는 산 교훈을 보여주는 위기극복의 훌륭한 인생사례입니다. 무속 신앙의 부모님, 물려줄 것이라고는 처절한 가난뿐이 없는 그야말로 찢어질 듯 가난한 가정에서 굶기를 밥 먹듯이 하며 최 낙중 목사님은 인생을 시작하셨습니다. 안해본 노동 없이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영양실조로 툭하면 쓰러지던 시절, '가난과 배움의 한'을 가지고 슬픔 많은 세월을 보내던 최 낙중 소년은 아련히 울려오는 교회당 종소리에 끌려 어느 날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그리고 단단히 그 주님의 손을 잡고 야무진 비상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위기는 끊임없이 다가옵니다. 8가지 병에 걸리고, 약물 중독의 증세까지 겹쳐 소망이 없던 청년 시절을 보내기도 하지만, 신음하는 그를 주님은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죽음의 위기는 성령세례를 동반하는 중생의 기회가 되고 이어 목회의 소명자로 새로이 태어나게 합니다. 봉천동 천막에서 4명으로 시작한 목회 역시 순탄치만은 않습니다. 간신히 마련한 예배당에 화재가 나 책 500 권을 포함 모든 교회비품이 불속에 전소되는 위기를 만나기도 하지만, 최 목사님이 붙잡고 있는 주님은 역시 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주시사 훗날 " 한국 청소년 지도자 대학"의 학장을 맡아 청소년 사역에 헌신하는 계기로 그를 인도하셨습니다. 이처럼 모든 인생의 위기들을 주님의 도우심 가운데 극복하고 오히려 더 높이 비상하는 기회로 바꾸신 최 낙중 목사님은 이제 7000명 성도를 모시는 중견 목회자가 되어 영향력 있는 하나님의 종으로 국내외에서 귀하게 쓰임 받고 계십니다.

1913년 빌흐잘무르 스테팬슨이 이끄는 캐나다 탐험대가 북극지역 탐험을 떠났고, 1년 뒤 어니스트 섀클턴경이 이끄는 영국의 남극대륙횡단 탐험대가 떠났습니다. 두 탐험대가 모두 빙벽에 둘러싸인 위기를 만났습니다. 불행하게도 북극 탐험대는 갈팡질팡하다 결국 많은 승무원들이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섀클턴이 이끄는 남극 탐험대 인듀어런스호는 동일한 절망적 상황을 만났지만 리더의 탁월한 리더십으로 인해 그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을 지휘하시며 가장 탁월한 위기관리 리더십을 보여주는 최고의 지도자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리더십에 인생을 맡깁시다. 그리고 위기를 비상의 기회로 바꾸는 역전의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