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두 아이의 어머니로, 한 목장을 섬기는 목자로, 어떤 모양이든 섬긴다는 건 참 아름다운 것 같아요. 선교도 결국은 섬김이잖아요?” 장태인 씨가 정의하는 선교란 ‘섬김’이다.

수채화를 좋아해 전시회도 여러 차례 했었다는 그녀는 연령에 국한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미술을 가르친다. “네가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해 봐. 어떤 게 보이니?”라고 가르치는 장 씨에게 미술교육의 철학을 들어봤다. “그림만 가르치는 건 아니에요. 그렇게 잘 그리지 못해도, 잘했다고 하고, 자꾸 격려해주면 자신감도 회복되고 그림 배우는 시간이 생활의 활력소가 될 수 있죠.”

수채화로 꿈을 심는다면, 섬김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심는다. “성경을 펴서 하나님 말씀 전하는 것만 선교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믿지 않는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는 삶을 보여주는 것, 단기선교를 가서 선(先) 경험이 많은 선교사님에게 먼저 배우고 섬기려는 자세까지 모두 선교에 속하는 것 아닐까요?”

지금은 누구보다 열정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장 씨지만 사실은 뒤늦게 믿음을 갖게된 크리스천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모두 미션스쿨을 다녔던 까닭에 예배와 채플은 너무나 자연스런 일상이면서도 가장 피하고 싶던 과목 중 하나였다는 그녀는 “선교란 말 자체가 저와 전혀 상관이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미국 생활은 30년 전, 미국인 남편을 한국에서 만나 이주해 오면서부터다. 남편을 따라 조지아로 왔으나 97년 예기치 않은 이혼을 하게 되면서 자녀 둘과 함께 홀로 가정을 꾸리게 됐다는 그녀는 “만일 이혼이라는 사건이 제 인생에 없었다면 지금 생각하는 것 하나도 못했을 지 모르니까 감사제목 중 하나. ”라며 받은 은혜들을 하나 하나 풀어놓았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다는 것을 느낀 것은 우연히 참석한 성경공부시간에서 였다. “성경공부 모임을 인도하던 목사님이 ‘내가 가진 재능은…입니다’라며 소개 하던 저에게 ‘하나님이 주신 재능은…’이라고 말해야 한다며 고쳐주셨는 데, 순간 머리를 툭 얻어맞은 듯 멍했어요. ‘그래. 그렇지. 내 재능도 하나님이 주신 거지’하는 생각 때문에요.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 지 모르지만 저한테는 너무 강력한 깨달음이었고 그 후로 정말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걸 믿게 됐지요.(웃음)”

하나님의 손길은 천천히, 그리고 온유하게 장 씨를 보듬어 목자의 길까지 인도했다. 원래 미국교회를 다녔던 그녀는 한 지인의 소개로 아틀란타한인침례교회(김재정 목사) 목장모임에 참석하게 됐다. 기독교적 색채를 강하게 띠지 않으면서, 낯선 사람을 따뜻이 섬겨주고 사랑해 주며 기독교적인 ‘삶’을 보여주는 목장 모임이 그녀에게는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목장모임을 섬기며 결국은 목자까지 맡게 된 것이다.

작년에 다녀온 뉴멕시코 인디언선교도 큰 전환점 중 하나였다. 장 씨는 “예수님 십자가를 보며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말을 이었다.

“단기선교 중에 선교사님께서 손수 만드신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걸으며 느꼈던 은혜는 말로 할 수 없어요. 제가 느낀 육체적 고통엔 채찍질도, 조소와 멸시하는 군중도 없었는 데, 그 어렵고 힘든 십자가 길을 오직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가셨다는 것이 피부로, 그리고 가슴으로 다가와서 통곡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만든 십자가를 져보며 회개하고 또 용서를 빌었다는 장태인 씨는 당시 십자가를 지며 허리를 삐끗해서 그 후로는 움직이기도 힘들었으나, 당시 받은 은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며 ‘그 후로는 보는 사람마다 단기선교를 가보라고 권한다’고 했다.

선교도, 미술을 가르치는 것도, 목장모임도 모두가 ‘섬김’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섬기는 삶이 너무 기쁜 것을 언제부턴가 깨달았다’며 “한번 놀러오세요. 스파게티 해줄게요.”라며 자연스럽게 섬김의 향기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