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하튼 123st 브로드웨이에 있는 야채 가게로 일을 다닌 지도 6개월여가 지났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브롱스 그랜드콩코스 199st에 위치하고 있었다. 다행히 200st에 지하철역이 있어서 출퇴근하는 데는 그렇게 불편하지 않았다. 직장까지는 50분 정도 지하철을 타고, 15분 정도 걸어서 다녔다. 출근길에는 항상 조그만 성경 가방을 들고 나갔다.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지하철을 타고 가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가게는 아침 8시에 열고 저녁 8시에 닫았다. 그러니까 하루 12시간 일을 했던 것이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거의 매일 10시가 넘었다. 저녁 시간에는 전철이 늦게 다니기 때문에 더 늦어졌던 것이다. 저녁밥은 봉제 공장에 다니는 이증익 집사님이 도맡아서 준비해 주셔서 항상 미안하고 고맙게 생각했다. 출근 길에도 매일 전도 대상자를 찾아 전철 안에서 이 칸 저 칸을 옮겨 가면서 행여나 한국 분이 계신지 점검을 했다. 한국 사람을 만나면 정답게 인사를 하고는 교회에 나가시느냐고 물어보았다. 교회에 안 나간다고 하면 예수를 믿어야 한다면서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또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 열심히 신앙생활 잘 하시라고 격려해 주었다. 한국과는 달리 한국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영어를 잘하면 미국 사람들에게도 전도를 할 수 있을 텐데 늘 아쉽기만 했다. 몇 년이 지난 뒤에 동산장로교회에 새로 등록하신 가정이 있었는데 이분이 나를 보더니만 "아, 그때 지하철에서 저한테 전도하던 집사님이 이 교회에 다니시는군요"하시는 것이었다. 무척 반가웠다. 그분은 지금은 권사님으로 열심히 교회를 섬기고 계신다.

125st 지하철역에서 나와 가게로 가는 길에 한국 분이 운영하는 야채 가게가 또 하나 있다. 나는 지나는 길에 자주 이 가게에 들러 예수 믿으라고 권면하곤 했다. 한국에서는 해외에 나가는 사람들에게는 꼭 반공 교육을 시켰고, 특히 뉴욕으로 가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주의 사항으로 가능하면 할렘 지역에는 가지 말라는 교육을 시킨다. 이 지역은 흑인 밀집 지역으로 각족 강력 범죄 사건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내가 처음 이 가게에서 일하기로 결정한 후에도 한국에서 교육 받을 때 들은 말들이 자꾸 떠올랐다. 실제로 이 지역에는 흑인이 많았고 또 불에 탄 건물들이 한 블록에도 몇 동씩 있었다. 더욱이 마약을 거래하는 사람들이 길거리마다 서성거리고 있고, 일주일에 한 두 번씩은 총격 사고가 발생했던 것이다. 야채 가게 옆 건물에도 많은 흑인과 스패니쉬들, 그리고 마약을 판매하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수시로 형사들이 와서 사람들을 잡아 가기도 하고 수색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어느 날인가는 가게 문을 닫다가 야채 진열대에서 하얀 가루가 든 봉지를 발견했는데 사장은 그것이 코케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것을 거기 숨겨 놓고 사려고 하는 사람이 오면 한 봉지씩 꺼내 판다고 했다. 마약을 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하지 말라고 해도 안 듣는다고 했다. 또 그들은 수치심이나 죄의식 같은 것을 못 느끼는 것만 같았다. 가게에 들어와서 자주 행패를 부리기도 하고 물건을 훔치는 것을 예사로 했다. 그래서 가게마다 도둑을 감시하는 사람을 따로 고용하는 가게들이 많았다.

퇴근 길은 길거리 조명이 밝지 않아 어두컴컴하다. 그래서 15분 정도 걷는 퇴근 길은 항상 긴장되었다. 특히 주급 봉투를 갖고 가는 날은 더욱 조심스럽다. 근간 한인들을 표적으로 삼는 강도가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고, 실제로 몇 건의 사고도 발생했기 때문이다. 나는 퇴근 길에는 항상 찬송을 불렀다. 주위 사람이 다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찬송을 부르면서 걸었던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쳐다보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그렇게 찬송을 하다보면 두려움도 피곤함도 사라졌다. 3년 넘게 그 거리를 다니면서도 무사한 가운데 평안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찬송의 힘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일이 점점 힘들게 느껴졌다. 전철을 타자마자 이내 곯아떨어지는 것이다. 5층까지 걸어 올라가기가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었다. 다리가 안 떨어져 팔 힘으로 난간대를 잡아 당기면서 올라갔다.

12월 초순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으나 그래도 출근 길에 올랐다. 한 정거장을 막 지났는데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또 정신도 혼미해지는 것이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아, 내가 왜 이러지? 내가 왜 이러지?'하는데 마침 기차가 역에 도착하여 문이 열렸다. 나는 정신 없이 뛰어 나왔다. 그러나 몇 걸음 옮기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호흡도 곤란하고 정신도 몽롱해지고 있었다. 나는 무의식 속에 주님을 부르기 시작했다. '주여, 주여, 오 주여 저 이대로 쓰러지면 안 됩니다. 주님, 저를 일으켜 주세요. 저 일어나야 합니다. 저 여기서 이대로 쓰러지면 안 된다는 것을 주님이 아시잖아요.' 희미한 정신 속에서도 주님을 부르고 또 불렀다. '저 일어나야 합니다. 저를 일으켜 주세요. 제 형편, 주님이 아시잖아요. 오, 주여 제 손 잡아 주세요.' 정말 의지할 분은 주님밖에 없었다. 원망도 불평도 할 겨를이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님을 부르고 또 불렀다. 출근 길 내리고 타는 많은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쓰러져 있는 나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은 없었다. 동양 사람이어서 그랬을까? 모두들 바빠서일까? 홈리스인가 싶어서일까? 아니면 개인주의에 물든 미국인들이어서일까?

한 시간이 넘어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아무래도 몸에 이상이 생긴 것만 같았다. 간신히 힘을 내어 집 근처에 있는 김 집사님의 병원을 찾아갔다. 진찰을 하시더니 과로인 것 같다면서 당분간 좀 쉬어야 한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아서 있자니 가게 일이 자꾸만 걱정이 되었다. 전화로 사정을 말씀드리긴 했지만 내일 물건 주문도 해야하고, 문 닫을 때도 내가 없으면 힘들 것 같아 몸도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기에 일어나서 가게로 나갔다. 사장님은 "괜찮으세요? 좀 쉬지 않으시고......"하고 염려해 주셨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주님이 나와 동행해 주시고 평안함과 함께 한없는 위로를 주셨다. 이후로도 힘들긴 했지만 주님께서 날마다 넘치는 위로와 사랑으로 다시금 힘을 내게 해주시고 잘 견디면서 일하게 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