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가문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유전병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버럭 소리를 지르는 병입니다. 아마도 유전자 안에 그 성질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 할아버지께서도 그랬고, 아버님과 숙부들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저희 형제들도 그렇습니다. 저는 자라면서 이 버력 병으로 인해 자주 공포감을 느꼈습니다. 어른 한 분이 버럭 소리를 지르면 약자들은 한 동안 숨을 죽이고 죄인처럼 굴어야 했습니다. 제 가정은 전체적으로 볼 때 다복하고 화목한 분위기가 지배했지만, 가끔은 버럭 병 때문에 그 평화가 깨지곤 했습니다.

저는 자라면서 “아, 나는 커서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다짐을 했었습니다. 한 사람의 성미로 인해 온 가족이 잠시 동안이나마 불편을 겪는다는 것이 부당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서야 버럭 병을 치료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피곤한 상태에서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생기면 아내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금세 제 잘못을 깨닫고 사과했지만, 이미 마음에 상처를 받은 아내는 한 동안 우울하게 지내야 했습니다. 이 병을 고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그 같은 노력의 결과로 전보다는 훨씬 횟수도 줄었고 강도도 줄었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뿌리 뽑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아내에게 사과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여보, 내가 일부러 한 것도 아니고, 당신도 알다시피 내 유전자 안에 있는 병이고, 내가 그동안 고치려고 노력해 왔고, 또한 많이 고쳐지지 않았소. 그러니 내가 혹시 버럭 소리를 지르더라도 이제는 재채기 하는 것처럼 여길 수 없겠소?” 그랬더니 아내는, 다 이해하는데, 그 소리를 들을 때 마음이 깨지고 무너지는 것을 자신도 어쩔 수가 없다고 합니다.

홍 씨 가문에서 김 씨 가문으로 시집을 오신 어머님은 틈이 있을 때마다 아들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평생 김 씨 가문의 버럭 병 때문에 마음 졸이고 살았으니, 너희는 제발 그 병 좀 고치고 살라고 말입니다. 얼마 전에도 전화 통화 끝에 말씀하십니다. “민우 에미헌티 잘 혀. 지발 버럭 소리 지르지 좀 말구. 맘에 안 드는 일이 있어두 조분조분 말 허구 살어야지 그러면 된다니? 니 에미가 그것 땜에 평생 마음 졸이며 산 거 생각하고, 잘 허구 살어.” 그 말씀에 아내가, “민우 아범은 안 그래요, 어머님. 걱정 마세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어머님은, “암만, 목사님이 그러야지. 같으먼 쓰남? 우리 아들, 장허네”라고 대답하십니다. 마음이 살짝 찔렸습니다.

오늘이 어머니날입니다. 이 날에 어머님을 생각하며 다음과 같이 다짐합니다. “예, 잘 하고 살겠습니다. 아내에게만 아니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힘닿는 대로 잘 하고 살겠습니다. 제 성질, 제 본성, 제 취향, 제 입장, 제 기분 따라 행동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대로 옆에 있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잘 하고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