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2일 금융투자를 하지 아니하고 투자자의 돈으로 투자의 수익이 높은 것같이 조작하는 소위 폰지수작을 하여 6,500억달라의 손실을 가져온 버나드 메이도프 월스트릿트 금융가가 11개의 금융사기죄로 구속되어 투자피해자들과 가뜩이나 금융위기로 마음의 불안을 안고 있는 일반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냈습니다. 이러한 사건과 관련해서 작금의 경제위기는 월스트릿트 금융자금관리자들의 무소부재한 ‘탐욕’에서 유래되었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3월 11일 오바마대통령 경제자문원회 위원장이며 전 하바드대학총장이었던 미국의 유수한 경제학자인 로렌스 섬머스는 오바마의 경제위기구제정책을 변호하면서, 지금의 경제금융위기는 경제주체들, 특히 금융시장 주체들의 ‘과잉 탐욕과 과잉 두려움’ (Excess Greed and Excess Fear)에 기인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작년 3월 미국의 제5대 금융투자회사이며 1923년 창설 이후 대공황, 2차대전, 1987년 주시시장 붕괴, 911사태 등 대형사건을 지내오면서 잘 견디어 왔던 베어스턴(Bear Stern)회사가 파산당했고, 그 이후 유수한 월스트릿트의 대형금융주식회사들인 레만 브러더스, 메릴린치, 골드만삭스, 모간스탠리 등이 산더미같은 부채로 허청거리고 있으며, 미국의 최대은행인 시티그룹과 뱅크오브아메리카가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금융의 어려움은 미국국내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금융위기로 번져나가고 있는, 어찌보면 자본주의자체의 위기에 다달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갖게 해 줍니다.

금융/은행구조의 위기를 시작한 베어스턴의 도산뒷이야기를 상세하게 서술한 “카드놀이집: 월스트릿트의 오만과 초대과잉이야기”의 저자 위리암 코한은 금융위기의 배후에는 워렌 버펫이 “대량학살의 금융무기”라고 명명한 “모기지근거유가증권”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었다고 주장했고, 이어서 그는 “이러한 (금융위기)비극에 주동역할을 담당했던 인간요소, 즉 탐욕이나 무지(Greed or Ignorance)를 후세의 학자들이 지나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라고 따끔한 논거를 폈습니다.

모든 경제주체들의 책임을 논거할 수 있겠지만 현대 금융자본주의시장의 경제주체라 할 수 있는 금융자본의 자금관리자들의 ‘지나친 욕심’(탐욕)이 지금 미증유의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출발점이라고 주장한다면 지나친 속단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 주저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입니다.

탐욕과 관련해서 현재경제위기의 해결책과 재물에 대한 인간의 올바른 자세에 대하여 성경은 근본적인 가르침을 줍니다.

재물에 대한 인간의 자세를 고려할 때마다 인간의 번영된 삶을 가능케 한 자본주의시장경제의 근간이 된 ‘자기이익’(Self-Interest)이라는 것과 성경이 가르켜 주는 ‘청지기직분’(Stewardship)이라는 것과의 경계범위가 불분명하고 오리무중에 있는 것으로 인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달란트의 비유에서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간직했다가 주인에게 돌려 준 종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하시었고, 두달란트와 다섯달란트를 이득과 함께 가져 온 종들을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시었습니다.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이고 돈을 ‘사모’하는 자들은 ‘미혹’에 빠지게 되어 많은 근심가운데 파묻히게 된다고 역설했습니다.

여기에서 성경의 두가지 가르침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모든 재물의 절대적인 소유권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은 자기의 기본직무를 올바로 인식한 ‘착한’ 청지기로서 재물을 관리하고 있을 뿐이며, 관리를 소극적으로 하지 아니하고 자기것과 같이 최대의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성실히 진력을 다하는 ‘충성’된 청지기의 자세를 근본적으로 간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바울의 가르침에서 말하는 ‘사랑’, ‘사모’, ‘미혹’은 지나친 욕심(탐욕)을 지칭하는 것으로, 그 결과 많은 근심, 즉 경제위기로 엄청난 고난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착하고 충성된 청지기’의 자세를 갖추고, ‘탐욕’을 품지 않는 경제관을 간직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유혹의 욕심(탐욕)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는 ‘새사람’이 되라고 가르쳐 줍니다. 새사람이 되는 길은 어떤 길입니까? 그에는 오직 한 길밖에 없습니다. 탐욕이 가득한 ‘옛 나’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고, 하나님의 영과 깨끗게 씻김으로 다시 태어나 그리스도안에서 착하고 충성된 청지기인 ‘새 내’가 되는 길입니다.

‘새 내’가 된 착하고 충성된 청지기는 재물을 관리할 때에 나만의 이익을 위한 탐욕에 빠지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얻게하게하기 위하여 올바르게(하나님의 의) 그리고 투명하게(하나님의 거룩) 재물관리를 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다만 지금 세계경제금융위기의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금융자금관리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베어스턴의 전 CEO이었던 알란 슈왈쯔가 “이것(탐욕적인 금융자산관리)은 정부, 신용등급기관, 월스트릿트, 상업은행, 금융시장규재관리자, 투자가 등 모든 사람이 연출한 팀(공동)역작이었다”라고 주장한 바와같이 모든 금융시장관련자들이 공동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 모두가 반드시 배우고 간직해야 할 ‘새로 태어남’의 교훈인 것입니다.

어찌보면 현재 경제금융위기의 피해자라고 여길 수 있는 우리들도 재물에 대한 성경적인 자세를 다시 확심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고, 현대 교회들도 그렇게 성경적 재물자세를 재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에 대한 새로운 각오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백 순, 미국노동성경제학자/글로발소사어티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