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를 채취하다가 손목이 잘려나가는 사람들, 마약에 취해 살인마로 변하는 앳된 소년 병사들, 반군과 정부군의 끝없는 총격전.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로 유명한 시에라리온에 복음의 꽃이 활짝 피어난다.

알려진대로 시에라리온은 화산 폭발로 인해 땅 위에서 다이아몬드를 채취할 수 있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다이아몬드 생산국이다. 그러나 고가의 다이아몬드로 인해 내전이 발생해 세계 최악의 빈국이 됐고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켰다. 이곳의 국민소득은 140불이고 평균수명은 34세다.

반군들은 무기와 마약 구매를 위해 주민들을 다이아몬드 채취에 강제 동원해 중노동시켰고 혹시 다이아몬드를 훔치거나 반군에 반항할 경우, 손목을 잘라 버리는 극형에 처했다. 손목이 잘린 이들은 다이아몬드에 다시 손을 대는 것은 물론, 농기구를 잡을 수조차 없어 오로지 구걸로만 살아가야 하게 됐다. 손목이 잘린 이들은 성인부터 청소년, 유아에 이르기까지 수천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잔인한 처형에는 반군들이 키워낸 소년 병사들이 동원됐고 이들은 반군에 의해 마약에 중독된 상태에서 살인기계로 이용됐다. 이런 피묻은 다이아몬드는 유럽 등지로 팔려나가 다시 마약과 무기를 사는데 사용됐다.

2002년 내전이 종식된지 6년이 지났지만 손목이 잘려나간 수많은 주민과 어린이들의 모습에서는 이 땅을 휩쓸고 간 상처와 공포가 아직 남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피묻은 다이아몬드의 나라에 피묻은 십자가를 전할 자는 누구인가?

순복음사랑교회 송성자 목사는 최근 시에라리온의 수도 프리타운과 코노 등지에서 다양한 전도집회를 열며 복음을 전하고 지역 교회들을 방문해 위로하고 돌아 왔다. 비행기로 30시간 걸려 도착한 ‘롱기’에서부터 어려움은 시작됐다. 송 목사가 도착한 그날 리비아 대통령 카다피가 아프리카의 동맹을 추구한다는 슬로건을 걸고 시에라리온을 방문했다. 문제는 그가 아프리카 이슬람화에 상당히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며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먼저 복음화된 시에라리온에 이미 1만개의 모스크가 세워졌다는 것이었다. 서아프리카 관문의 역할을 감당하는 시에라리온이기에 가장 먼저 복음화될 수 있었지만 그만큼 이슬람이 유입될 경우 전 아프리카로 확산될 가능성도 높다.

송 목사는 선교여행 중 탄 페리호에서 어니스트 베이 코로마 시에라리온 대통령의 경호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카다피 대통령의 방문에 맞추어 코로마 대통령의 경호원들이 경호를 나온 후, 페리호에 송 목사와 함께 탑승한 것이었다. 송 목사는 마침 준비해 간 수지침 한국 볼펜을 그들에게 건넸다. 자신을 미국에 사는 한인으로 소개한 송 목사는 간증을 시작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슬람을 믿던 대통령 경호원 7명이 그 자리에서 예수를 영접했죠. 그리고 마침 22년째 부통령을 보좌해 온 성령충만한 여경호원도 만나게 돼 저는 그로 하여금 그 7명에게 성경을 사 주도록 권했습니다.” 이후 송 목사는 대통령궁을 방문할 기회도 얻었는데 그때 대통령궁에서 많은 사람들이 “Mama Song, 나에게도 성경을 한권 주세요”라고 청해 왔다.

선교여행 기간 중 이뤄진 바닷가 전도집회도 성공적이었다. 말씀 후에 그들에게 쪽복음을 나누어 주었다. 머리에 바구니를 이고 온 행상인부터 구걸인까지, 노인부터 어린이까지 힘차게 찬양하면서 복음이 증거된 자리였다.

그러나 피묻은 복음을 내륙으로 들고 들어갈수록 피묻은 다이아몬드의 상처가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차가 한번씩 설 때마다 손과 발이 잘린 구걸인들이 넘쳐나고 남편을 잃은 과부와 부모를 잃은 어린이들이 울고 있었다. “그들 앞에서는 제가 마시는 물병 하나도 들고 있기가 미안했습니다.”

송 목사가 방문한 다이아몬드 광산 지역인 ‘코노’의 Sessie Gbeindg 시장은 마침 기독교인이었고 함께 손을 맞잡고 기도할 때, 절망 속에서 소망이 넘쳤다. 곳곳을 다니면서 손발이 잘린 사람들, 반군에 의해 마약에 중독된 채 성노예로 전락했다 아직도 그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 영혼들에 대한 주님의 간절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송 목사는 코노에서 김흥환 선교사 장례에 참석했다. 그는 한국에서 교수로 정년퇴직한 후, 80세에 이곳에 와서 교회와 빈민 사역을 하며 1년3개월간 선교 사역을 하다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송 목사는 “너무나 많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 그를 추모하고 애도하는 것을 보면서 한알의 밀알이 되어 이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일인지 알았습니다. 역시 하나님의 일에는 나이가 없습니다.”

이후에도 미혼모와 50명의 아기 고아를 돌보는 Fresh Hope Assembly 교회를 방문해 함께 기도하고 말씀을 전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촛불을 켜고 예배드리는 이 자리에는 먼 길을 맨발로 달려온 이들도 많았다. 한 여인은 8살 때부터 반군들로부터 무차별 성폭행을 당해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서글픈 눈빛을 보며 함께 기도했는데….”

그렇게 이곳저곳을 거쳐 도착한 캄비아는 시에라리온에서 3번째로 큰 도시였는데 인구의 98%가 무슬림인 곳이다. 송 목사는 도착 후, 복음전파 집회를 열어 강사로 섰다. 이슬람의 지도자도 몇몇이 이 자리에 참석해 복음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튿날에는 인근 코라텐강에서 침례식도 열렸다. 이 지역은 배수시설이 돼 있지 않아 비록 강물이 더러웠지만 이런 더러운 강물일지라도 생명을 살리는 침례를 할 수 있다는 감격이 넘쳤다고 한다.

▲캄비아에서 열린 어린이 집회에 참석한 송성자 목사

이후 어린이 집회에서는 예수 영화를 상영하고 어린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다.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다는 어린이들을 볼 때 먹는 것만으로도 흐뭇한 그 기쁨이 결코 적지 않았다고 한다.

선교여행은 끝이 났지만 송 목사는 올해 말에 또 한차례 시에라리온을 방문하려 한다. 이번 선교 여행이 고됐는지 탈진과 심장 수술로 위험한 고비를 여러 번 넘겼지만 선교의 감사와 감격은 이 모든 고통을 삼켰다. 다음 방문 때 송 목사는 어린이들을 말라리아로부터 보호해 줄 모기장, 사람들이 먹고 마실 우물, 학교 건립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끝으로 송 목사는 이번 선교여행을 위해 기도해 준 믿음의 동역자들과 헌금한 성도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여러분, 예수님의 보혈로 피묻은 다이아몬드를 씻어내는 이 일에 기도로 동참해 주세요.”

송성자 목사 songsungja@hotmail.com, 847-918-1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