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에서 큰 역할을 했던 김수환 추기경께서 하나님 나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뉴스를 보니, 온 국민이 그분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다른 종교 지도자들까지 그분의 영정 앞에서 경의를 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종교인이었지만 그 영향력은 종교계에 국한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사의 큰 고비에서마다 큰 어른의 역할을 해 왔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좌경으로 기우는 나라의 현실을 보며 염려하며 했던 발언 때문에 ‘꼴통 보수’로 몰리는 일도 있었지만, 그렇게 비난하던 사람들마저 지금은 숙연히 고개를 숙이고 경의를 표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개신교 전통과 신학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만, 이럴 때면 천주교에 대한 부러움을 느낍니다. 개신교회는 여러 교파로 갈라져 있기 때문에 개신교 전체를 대표하는 어른이 없습니다. 한경직 목사님 이후에는 어른의 역할을 할 만한 인물도 나오지 않았지만, 설사 그런 인물이 나타나도 그런 역할을 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천주교회는 단일체이기 때문에 특출한 인물이 나오면 교회 내외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번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으로 인해 천주교 신자가 급증할 것입니다. 그분의 삶의 자취는 수만 마디의 전도보다 강한 영향력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그분에게 흠이 전혀 없었을 리 없습니다.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그분의 삶의 공과에 대한 평가가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에게는 마음의 옷깃을 여미게 하는 무엇이 있습니다. 그것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고, 그분에게로 돌아오게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가리키는 손가락’으로 살다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목사인 저는 당연히 그런 소망을 가지고 더 바르게, 더 깨끗하게, 더 거룩하게, 더 소박하게 살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목사에게만 주어진 책임이 아닙니다. 천주교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소명을 차별적으로 보지만, 개신교회는 동일하게 봅니다. 저는 개신교의 입장이 성서의 진리에 더 가깝다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목사가 아니니 그만큼 하지 않아도 돼!”라고 생각하는 것은 개신교 사상에 맞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이 어디에 가 있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삶의 방향이 바로 정해지고 마지막 숨이 다할 때까지 그 길로 올곧게 걷기 위해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물어야 하겠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청빈하고 거룩한 삶과 사상의 뿌리는 그분이 하나님과 나누었던 사귐에 있음을 기억하고, 우리도 더욱 그분과의 깊은 사귐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 사귐의 능력이 우리의 생각과 판단과 선택과 가치관과 인생관을 모두 바꿀 때까지 말입니다. 모두 모두에게 주님의 은총을 빕니다. (2009년 2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