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렘브란트의 그림을 좋아한다. 러시아 세인트 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에르미타즈궁 내(內) 미술관에 걸려 있다는 "탕자의귀환"(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이란 그림을 보는 것이 소원일 정도이다.

그는 인고하기 어려운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1635년에 아들을, 1638년에는 큰 딸을, 1640년에는 둘째 딸을, 1642년에는 아내를 잃고 한 아들만 홀로 남았다. 다른 여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1남 1녀 중, 아들이 1652년에 죽고 1663년에는 새 아내도 죽었다. 1668년에는 첫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죽는다.

렘브란트는 수 많은 고생과 시련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은 따뜻하다. 프랑스군을 대항하는 시민군들의 행렬 속에서도 불타오르는 전의보다는 온기가 서리는 것은 그의 신앙에서 나오는 재해석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화가로서 큰 명성을 얻은 그가 30세 때 그린 자화상은 창녀촌에 있는 모습이었다. 머리카락은 길고 부드럽고 아름다우며 화려한 모자에 최고의 옷을 입었고 그의 손은 젊은 여인의 허리에 가 있고 불타오르는 색욕을 어찌할 줄 몰라 미소 짓는 얼굴인 것으로 보아 이후 어느 때인가 신앙을 얻었고 회심을 통하여 많은 신앙화를 그렸을 것이다.

원화를 암스텔담의 화란 국립 미술관에서 직접 관람 할 수 있는 행운도 있었는데 특히 누가복음 2장을 주제로 하여 그린 『목자들의 아기 예수 경배』는 크리스마쓰의 최고봉이다.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 예수를 보위하고 있는 주위에 목자들이 진치고 있고 대표인 듯한 한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외양간은 초라하기가 그지없으나 요셉이 들고 있는 작은 등불이 아기 예수를 해처럼 빛나게 하고 있다. 아기 예수에게서 나온 반사의 빛은 그 초라한 외양간에 모여든 모든 사람들과 동물들 까지도 환하게 비춰주고 있는 것이다.

램브란트는 신학을 공부한 일이 없지만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성탄절의 주제로 삼은 것이다. 아기 예수에게서 나온 빛이 온 세상의 흑암의 권세를 몰아내는 위로부터 오신 근원의 빛임을 그는 깨달았던 것이다. 그의 그림은 이야기한다. 목자들은 아기 예수의 빛이 천천히 그 누추하고 어둡던 외양간을 더 이상 밝을 수 없는 밝음의 세계로 이끌어 내는 장관을 목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미하며 돌아갔다고... 그리하여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는 천군 천사의 노래를 듣게 되었던 것이다.

칼 바르트(K Barth)가 “하나님의 신성(神性)은 바로 그 분의 인간되심(人間性) 가운데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며 그분의 영광은 바로 그분의 수치 가운데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했듯 램브란트의 크리스마쓰는 아기 예수 탄생의 의미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며 구원의 파노라마를 완성하기 위해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의 징표이며 선물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램브란트가 그린 그 초라한 외양간의 크리스마쓰를 볼 수 있는 영안이 2008년의 성탄절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에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