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밀양>을 만든 이창동 감독께서 이곳 와싱톤을 방문했었습니다. 방문 기간 동안 사적으로 만나 대담을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좋은 영화를 만들어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고, 그분은 자신의 ‘텍스트’(영화)를 세밀하게 ‘읽어’ 준 것에 대해 제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분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고, 저는 목회하며 설교하고 글을 쓰는 사람인데, 일에 대한 사상이나 태도에 있어서 공감할 수 있는 면이 많이 있었습니다. 기왕에 그분이 ‘철학이 있는 감독’이라고 느껴 왔지만, 실제로 만나 보니 제가 받은 인상보다 더 깊어 보였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극장은 가장 영향력 있는 성전이요, 영화감독은 가장 영향력 있는 설교가라는 말을 전하면서, 부디 좋은 영화로써 선한 영향력을 끼쳐 주시기를 기원했습니다.

<밀양>을 만드는 과정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몇 가지 들었는데, 그 중 하나를 여러분과 나눕니다. 영화 후반에 야외 부흥회 장면이 있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부흥 강사는 실제로 대구에서 활동하는 목회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처음에 계획할 때는 연기자를 섭외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20년 이상 교회를 다닌 연기자를 시도했는데, 장면을 보았더니, 가짜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연기자를 불렀습니다. 그도 역시 교회 생활에 열심이었고 장로의 직분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설교하는 장면도 역시 가짜 냄새, 연기 냄새가 역력하더라는 겁니다.

어쩔 수 없이 현직 목회자를 몇 사람 섭외하여 촬영을 계획했습니다. 세 분의 목회자가 물망에 올랐는데, 그 중 한 분은 본인은 원했으나 교회에서 반대하여 무산되었습니다. 두 번째 목회자에게 부탁을 했더니, 그분의 말씀이, “나는 연기를 하지 않겠다. 엑스트라들 앞에서 실제로 설교를 하겠다. 그러니 당신 마음대로 찍어라”고 했답니다. 여러 가지의 난점이 있었으나, 그렇게 찍고 나서 보니, 누가 보더라도 연기가 아니라 진짜로 보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분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저는 설교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영화를 만들면서 그 생각을 고쳐 먹었습니다. 설교에는 연기할 수 없는 어떤 차원, 흉내 낼 수 없는 어떤 차원이 있음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아, 이분이 진실한 구도자이구나! 마음에 진실을 찾는 예리한 눈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분이 과거에 기독교를 통해 구원을 찾고 진리를 추구하려고 시도했던 경험이 있었음에 분명했습니다. 그가 교회를 떠난 이유는 목회자의 닿지 않는 억지 설교 때문이었다는 사실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록 그의 몸은 교회에서 멀어져 있지만, 그의 정신과 마음만은 아직도 기독교의 진리를 추구하고 있지 않는가 싶어서, 한 편으로 감사했고, 또 한 편으로 아쉬웠습니다. 어쨌거나, 하나님께서 그분을 사용하셔서 감각적이고 퇴폐적인 영화가 판을 치는 시대에 영혼을 맑히고 인생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영화를 계속 만들어갈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자리를 마련해 주신 분께 이 지면을 빌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