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가면 도시 한 복판에 "더 몰"이라고 불리는 녹지 광장이 있습니다. 이 광장은 워싱턴 디씨에서 가장 눈에 띄는 두 개의 상징 건축물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의사당 건물과 워싱턴 기념탑입니다.

의사당 건물은 중앙에 돔과 그 아래 로툰다를 중심으로 상원 회의실과 하원 회의실로 사용되는 두 개의 날개로 되어 있습니다.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으로 설계된 의사당의 중앙에 솟은 돔 위에는 "자유의 상" 또는 "무장한 자유의 여신"이라고 불리는 청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연방 수도가 결정괴고 수도 건설 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하면서 의사당과 대통령 관저의 설계를 공모했습니다. 당시 $500 상금을 걸고 공모했으나 대부분의 설계가 의사당으로서는 적절하지 않고 규모와 디자인에서 떨어진다는 이유로 탈락했습니다. 윌리암 쏜튼이라는 아마추어 설계사가 뒤늦게 제출한 설계안을 본 죠지 워싱턴 대통령과 토마스 제퍼슨 국무장관은 즉시 쏜튼의 설계를 채택했습니다.

설계를 채택하고 나서 거의 70년에 걸쳐서 공사를 진행하다가 1863년에 자유의 상을 돔 위에 올림으로 완성을 하게 됩니다.

의사당의 중앙에 있는 돔은 건물 뿐 아니라 위싱턴 디씨의 중심부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초대형 석조 건물을 세우는 일은 국력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예술적인 표현이 가장 많이 담기고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대형 돔을 세우는 일은 국력을 뛰어 넘어 국가의 품위와 국민의 문화 수준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상징물이었습니다.

미국 의사당의 돔도 그 상징성이 중요했습니다. 프랑스의 앵발리드의 돔과 그 원조 격이었던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의 돔에서 디자인을 가져와 지었습니다. 석조 돔이나 고대 로마의 돔 건축 기술이었던 특수 콘크리트 공법은 유럽의 최고의 장인이나 가능한 일이었고 신생국가인 미국을 문화적인 열등 집단으로 여겼던 유럽 국가에서 국가 상징으로서의 돔을 짓는데 도움을 줄 이유가 없었습니다. 결국 의사당의 돔은 나무로 짠 틀로 세운 후에 주물로 부어 만든 틀을 사용해서 완성하게 됩니다. 미국적인 실용 정신을 여지없이 과시한 것입니다.

미국의 수도를 설계하고 주요 건물의 건축을 결정한 것은 실질적으로 워싱턴 대통령과 제퍼슨 국무장관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미국이 독립하기 전부터 건축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두 사람 다 자신의 저택을 식민지 미국의 현실에 어울리지 않게 유럽 기준의 고급 양식으로 짓습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린 두 사람은 새로 세워진 나라가 부강한 나라가 되기에 앞서 문화적으로 뒤지지 않는 나라임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않고 독립한지 반세기도 채 되지 않아 영국과의 전쟁으로 수도가 함락되는 등 국가의 기본 역량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들은 국민의 문화적인 자존심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미국이 문화적으로 선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서 그들은 개인의 집과 공공건물에 이르기까지 유럽 사람들도 감탄할 만한 건물을 지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제 펜더캠퍼스의 완공이 며칠 앞으로 다가 왔습니다. 단순히 쓸 만한 건물 하나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 백성의 고귀한 문화가 반영되고 드러나는 건물이 되기를 원합니다. 건물을 하나 얻는 것이 아니라 이제 온 세상에 자랑할 만한 하나님 백성의 품위있는 문화가 담기는 건물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위 칼럼은 지혜와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임인 '연우포럼'(www.younwooforum.com)과 합의하에 전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