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왕이라고 하면 누구나 토마스 에디슨을 떠올릴 것입니다.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발명품을 만든 기적의 인물입니다. 지적 재산권이 강력하게 보호되는 요즈음 시대에 살아 있었다면 받는 로열티만으로도 일찌감치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토록 위대한 과학자였던 에디슨은 어린 시절 학교 교육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학비가 없어서가 아니라 학습 지진아로 정상적인 교육이 불가능 하다는 학교 측의 결정으로 학업을 지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에디슨의 어머니 낸시는 학교에서 포기한 에디슨을 집에서 직접 가르치기로 했습니다. 홈스쿨링이 시작된 것입니다. 믿음이 좋은 낸시는 에디슨에게 늘 긍정적으로 대해주며 용기를 주었습니다. 남들은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지만, 낸시는 믿음 안에서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늘 강조했습니다. 에디슨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학교에서는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성적은 늘 꼴찌였고 선생님들은 나 같은 것에 관심도 없었다. 아버지조차 나를 멍청한 녀석이라고 했다."

에디슨이 정규학교 교육을 받은 것은 고작 3개월뿐 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마침 전직 교사였던 덕분에 12살까지 집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만일 막무가내로 에디슨을 학교에 두고, 교육을 시켰었다면 어쩌면 소외당하다 삐뚤어져 사고나 치는 문제아가 되었을는지도 모릅니다. 낸시는 에디슨에게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막연히 긍정적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에디슨 속에 숨겨져 있는 잠재력을 보았던 것입니다. 학교 선생님들은 계속 엉뚱한 질문을 하는 에디슨을 학습 부적격자로 보았으나 에디슨의 어머니는 오히려 창조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점에서 낸시는 다른 어머니들과 달랐습니다. 무조건 자식 편을 들어 과대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남다른 가능성이 있음을 믿은 것입니다.

전구를 발명한 직후 기자들이 에디슨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전구를 발명하기까지 2천 번의 실패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몇 십 번의 실패가 있으면 포기하고 말텐데 어떻게 2천 번의 실패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도전할 수 있었습니까?" 이때 에디슨은 "나는 한 번도 실패한 일이 없습니다. 단지 한 번의 성공을 위해 2천 번의 과정을 거쳤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에디슨이 이런 긍정적인 시각과 인내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에디슨의 수없는 실수를 탓하지 않고 받아준 어머니의 인내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에디슨을 학습능력이 없는 주의가 산만한 아이라고 낙인 찍었을 때 에디슨의 어머니는 에디슨의 엉뚱한 질문이나 행동에 끝없는 인내로 대해주었습니다.

에디슨이 남긴 명언 중에 "천재란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당시 인터뷰한 기자들은 이 말을 에디슨의 진의와는 다르게 해석해 버렸습니다. "영감만으로 천재가 될 수 없고 노력이 중요하다." 는 의미로만 해석한 것입니다. 에디슨은 "1%의 영감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 이것을 무시하는 것이 안타깝다." 고 했습니다. 영감은 창의력을 말하는데, 창의력 없는 반복된 노력은 시간낭비일 뿐입니다.

엉뚱한 행동 속에서 무언가 다른 점을 보았던 에디슨 어머니의 긍정적 시각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어리석은 것으로 보였으나, 믿음의 눈에는 하나님이 주신 창의력이 보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실패자로 만드시지 않으시며, 어떤 일도 실패로 만들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선한 의도와는 달리 사람들은 자기 생각으로 왜곡되게 판단하여, 선악과를 죽음의 과일로 만들고 홍해를 죽음의 바다로, 광야를 공동묘지로, 가나안을 사람을 삼키는 땅으로 규정했습니다. 동일한 문제와 상황 속에서 어떤 사람은 성공의 과정을 걸어가고, 어떤 사람은 실패의 과정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는 단지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 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남이 못 보는 것을, 무언가 다른 것을 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