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목회 칼럼은 우리가 살고 있는 워싱톤과 12시간의 시차가 있는, 그러니까 거의 지구 정반대쪽에 있는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쓰고 있습니다. 이번 주간 여기에 있는 신학교에서 설교학 강의를 하기 위해 와서 며칠을 지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부터 여기 방콕까지 만 하루 반나절이나 걸리는 긴 여정에 이어 다음날부터 매일 8시간씩 연속하는 강의라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부족한 것이 참 사람인데도 함께 말씀을 배우려고 하는 젊은 태국의 신학생들의 열정에 별로 피곤한 줄을 모르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이곳 신학교는 18년 전 이곳 태국에 선교사로 파송을 받고 사역을 시작한 오세관 선교사님께서 그동안 태국 전국에 세운 교회를 통해 주님을 영접한 젊은이들 중에서 자기 조국 태국의 복음화를 위해 일생을 바쳐 주의 사역을 하겠다고 헌신한 젊은이들을 위해 지난해에 개교했으며, 그 첫 번째 학생들인 1학년생들이 전체 4년 과정 중 1년차를 마쳐가고 있습니다. 많은 수의 학생은 아니지만 전교생이 모두 함께 기숙사에서 공동생활을 하면서 학문적 성숙만이 아니라 생활 신앙 훈련도 함께 하고 있는데 매일 오전 5시부터 새벽예배로 하루를 시작하여 8시간의 수업을 받는 강도 높은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공동생활을 하면서 함께 자고 먹고 해서인지 신학생들 모두가 마치 한 가족과 같은 분위기입니다.

제가 이번 주에 여기에서 하고 있는 강의는 지난번 멕시코 유카탄에 있는 신학교에서 한 내용과 같은 내용인데도 언제나 그렇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 어디서 누구와 나누느냐에 따라 참으로 다른 은총을 경험하는지.. 늘상 경험하면서도 언제나 새롭습니다. 강의를 들은 이들이 새로운 도전을 받았다고 하고, 말씀을 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고도 하고, 이번 강의를 듣기 위해 10시간을 달려온 한 목사님은 자기가 신학교를 다니면서 듣지 못한 강의였다고 하면서 기회가 되면 함께 사역하는 자기 동역자들이 모두 함께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는데, 그런 말들을 들으니 먼 길을 와서 말씀을 나누는 이로서 보람도 물론 느끼지만, 사실은 그보다도 이런 기회를 통해 그들만이 아니라 제 자신도 말씀을 바라보는 또 새로운 눈을 뜨게 하시어 말씀 가운데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비밀을 발견하는 흥분과 감격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지난번 유카탄에서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전적으로 통역에 의존해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유카탄 신학교의 경우에는 그래도 영어와 연관이 있는 서반아어라서 통역하시는 분이 어떻게 하고 계신지를 어렴풋하게 감이라도 잡을 수 있었는데 비해, 이곳에서는 태국어가 한국어나 영어와 전혀 다른 배경의 언어이기에 그런 감을 잡을 수가 없어서인지 더욱 통역하는 이에게 제 자신이 의존되는 듯 했습니다. 그것은 강의하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입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태국 말 중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은 숫자 중 십(10), 이십(20), 삼십(30)과 같은 몇 개의 단어 발음이 우리말과 비슷한 것뿐이니 통역하는 이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다른 방도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강의하는 저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만 통역하는 이는 제가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 그것을 듣고 그대로 통역을 해야 하니 통역자의 수고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게다가 통역이라는 것이 단지 우리가 사용하는 말을 다른 말로 사전적으로만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강의하는 이의 생각을 강의를 듣는 이들의 마음에 전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통역자의 어려움이 더욱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설교가 마치 이 통역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설교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적, 또는 사전적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말씀 속에 담겨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사람들의 마음에 잘 전달해 주는 것이라고 볼 때 설교가 마치 통역과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설교자로서 나는 과연 그러한 통역자의 책임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한 학생이 강의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제가 미국에서부터 비싼 비행기 표를 구입해서 여기에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자기는 가난해서 내 여비를 도와줄 수는 없지만 그러나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더 깊이 묵상하고 말씀에 담긴 은혜를 교인들과 더 잘 나누는 것으로 갚겠다고 하면서 꼭 다시 와서 말씀을 더 많이 나눴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마음에 찡한 감동이 덮었습니다. 오늘 강의를 마친 후 다른 학생이 제게 태국어로 “디망막”이라고 하길래 그게 무슨 뜻이냐고 통역하는 목사님께 물었더니 “너무 좋다”는 뜻이라고 하기에 나도 “디망막”이라고 답을 해줬습니다. 이번 주일이 여러분 모두에게도 “디망막(너무 좋은)” 한 주간이 되시기를 멀리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