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2편은 솔로몬의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솔로몬이 지은 시라고도 볼 수 있고, 솔로몬을 위해 다른 사람이 쓴 시라고도 볼 수 있겠지요. 왕의 아들이라는 1절에서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서 솔로몬을 위한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의 즉위식에 기념으로 낭송한 시가 아닌가 평가되고 있습니다.

정의라는 말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체데크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말은 진실을 말하다…라는 동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와 사회적 통념의 의는 개념이 좀 다릅니다. 근대시대에 와서 의라는 말은 윤리적인 표준과 일치하는 것에 한정이 되어 있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의는 시종 일관 하나님의 의를 말합니다. 사회적인 규범이나 기준을 따라 상대적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 중심적인 표준에 두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의라는 기준에서 시작할 때에 만이 비로소 의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라는 말은 가장 먼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하나님의 올바르심…거룩하심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했던 그들 주위의 나라들이 믿고 섬기던 신들과 다르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자기 멋대로 거나 기분 내키는 대로 하지 않으시는…부당한 요구도 하지 않으시는…자기 백성들을 다루심에 있어서 공평하신 분임을 선포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의를 이렇게 선포합니다. ( 렘4:1-2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네가 만일 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 마음이 요동치 아니하며 *진실과 공평과 정의로 여호와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면 열방이 나로 인하여 스스로 복을 빌며 나로 인하여 자랑하리라

바로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의를 나타내 보이실 것인가를 말씀해 주시는 구절입니다. 오늘 시편 72편에서 왕의 즉위식에 기념 시로 읽혀질 때 특별히 의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온다는 점이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왕이야말로 사람의 기준으로 판단되는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거룩과 의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입니다.

저는 세상이 말하는 정의로움과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의 차이가 바로 은혜라는 단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정의는 잘잘못을 따질 때 그저 판결을 내려 버리면 그만입니다. 판결을 받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습니다. 죄가 미워서 죄인도 미워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의는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 속에 있습니다.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도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이 가인을 해치지 않도록 하시는 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에도 보면 참으로 법대로 했는데…정의롭게 처리했는데 은혜롭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예이면 예이고 아니면 아니라고 말을 했는데도 지나고 보면 사람 일은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세상 사는 모든 일이 법대로 되고 원칙에 따라 처리 되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