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기도 (김남조)

하루의 분주한 일들
차례로 악수해 보내고
밤 이슥히 먼 데서 돌아오는
오는 듯만 싶은
주님과 나만의 기도 시간

주님
단지 이 한 마디에
천지도 아득한 눈물
날마다의 끝 순서에
이 눈물 예비하옵느니

오늘도 내일도 나는
이렇게만 살아지어다
깊은 밤에 눈물 한 주름을
주께 바치며 살아지어다

 

이시(詩)는 2023년 10월 10일에 소천한 김남조 시인의 <밤기도>라는 시입니다. 김남조는 천주교 신자이지만 많은 기독교 신앙인들로부터도 사랑받는 신앙 시인입니다. 개인적으로 김남조 시인의 시를 좋아하지만, 신앙시를 더욱 좋아합니다. 김남조 시인이 많은 신앙시를 남겼는데 여기 소개되는 <밤기도>는 일상의 삶을 노래하는 시인의 대표작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신앙인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김남조 시인의 시입니다.

 

이 시는 하루의 모든 일을 마치고 하루를 주님 앞에서 정리하는 신앙인의 밤 풍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참된 신앙인이라면 이렇게 하루를 마감하면 좋겠습니다. 시인은 하루를 마감하는 장면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절감하는 신앙인의 감성을 소개합니다. 신앙인의 일의 결산에서 주님과 대면합니다. 신앙인의 하루 끝자락에서 주님을 만납니다.

신앙인은 하나님 은혜를 보는 사람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며 하루를 마감하는 신앙인의 저녁을 그리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주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긴 표현이 필요치 않습니다. '주님!'을 부르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차오르고 눈물이 주르르 흐릅니다. 시인은 하루를 감사로 정리하며 주르르 흘리는 벅찬 감사의 눈물을 “천지도 아득한 눈물”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루를 정리하며 이런 눈물을 주님께 바치는 사람은 주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시인은 감사로 하루를 정리하는 신앙인의 감격과 눈물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시인은 “날마다의 끝 순서에/ 이 눈물 예비하옵느니”라고 표현합니다. 하루를 하나님 은혜로 살았는데, 하나님과 마주하며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예비하심을 고백합니다.

시인은 은혜를 알고 흘리는 눈물을 ‘천지가 아득해지는 눈물’이라고 표현합니다.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 은혜를 깨닫고, 날마다 이런 눈물을 흘리는 것이 일상의 영성이고 거룩입니다. 이 밤기도는 감사의 기도입니다. 이 밤 기도는 평화의 기도입니다. 이 시는 긴 하루의 일과, 즉 계획된(짜여진) 하루의 일들을 다 마무리하는 저녁 시간에 '주님'께 기도를 바치며 하루를 닫는 것이 복된 삶을 노래합니다.

시인은 이런 기도와 눈물이 남은 생애 가운데 지속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나는 이렇게만 살아지어다/ 깊은 밤에 눈물 한 주름을/주께 바치며 살아지어다’라며 눈물에 젖은 밤기도를 소원하고, 또 결심하고 있습니다. 어느 거룩한 하룻밤의 기도가 아니라 사는 날 동안 매일밤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께 눈물의 기도를 드리는 거룩한 삶을 시인은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시를 읽으며 하루하루를 감사의 눈물로 마감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울러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흐르는 영적 감수성을 사모합니다. 이런 기도의 눈물이 살아 있는 날들 가운데 계속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나는 이렇게만 살아지어다/ 깊은 밤에 눈물 한 주름을/주께 바치며 살아지어다’ 오늘 밤도 눈물 한 주름을 바치는 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김남조 시인은 1927년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1948년 서울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재학 중 연합신문에 시 ‘잔상’, 서울대 시보에 시 ‘성수’ 등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했습니다. 시인은 <목숨>, <사랑초서> <바람세례> <귀중한 오늘> 등 다수의 시집을 출간하며 사랑을 노래하였습니다. 사랑을 근간으로 삶을 향한 따뜻한 시선(視線)을 시에 담아내는 시인 김남조는 평론가와 독자로부터 ‘사랑의 시인’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김남조 시인은 마산고등학교와 서울 이화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습니다. 그 후 성균관대학교 강사를 거쳐 1954년부터 숙명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시인은 한국시인협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 여성문학인회 회장, 한국방송공사 이사 등을 역임했습니다. 시인은 1993년 국민훈장 모란장, 1996년 대한민국예술원 문학 부문예술원상, 1998년 은관문화훈장, 2007년 만해대상 등을 받았습니다. 자택을 2015년에 개축해 문화예술공간 ‘예술의 기쁨’으로 개관했습니다.

김남조 시인은 10대에 폐결핵에 걸리며 신앙을 갖게 되었고 종교 조각 분야의 거장 김세중(1928~1986) 교수와 결혼했습니다. 시인은 많은 은혜로운 신앙시를 남겼습니다. 시인은 아름다운 신앙시를 쓰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시인은 늘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더 정교한 언어로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고 싶은 소원을 고백했습니다. 시인은 인생 후반기에 자신이 직접 가려 뽑은 85여 편의 신앙시들을 모아 엮은 신앙시집 <기도>를 펴냈습니다.

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 대표, 시인 수필가)
(Photo : ) 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 대표, 시인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