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여러분들은 이런 말씀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정말 그런가 하는 의심이 들 때가 있지 않으신지요? 저도 아무리 생각해도 기도는 1 + 1 = 2라고 하는 공식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도에는 역시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습니다.

필립 얀시 목사님이 쓴 ‘기도’라는 책이 새로 나왔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기도의 미스터리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어느 때는 기도 응답을 너무 쉽게 받아서 이것이 응답인지 우연인지 모를 때가 있다. 어느 때는 수십 년을 기도했는데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수 있다. 현대인이 기도에 대해 실망감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기도의 응답이 구약시대처럼 멋있게 오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마치 모세처럼 타오르는 불꽃 가운데서 부르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기도의 응답은 매번 기적으로 오지 않는다. 때로는 우연처럼, 때로는 봄 바람처럼 살며시 다가오기 때문에 우리는 영적으로 민감하지 않으면 기도의 응답을 알아 볼 수 없다."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기도에 대한 딜레마가 있습니다. 기도 응답에 대한 기대감과 의심이 항상 존재합니다. 목사님이면서 시인이었던 홉킨스라는 분은 기도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분, 그러나 슬프게도 너무 먼 곳에 사는 이에게 배달되지 못할 편지를 부치듯 부르짖었습니다.’

동감이 가시지 않나요?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면 들으신다고 하시는 데 응답 없는 기도는 그럼 누구의 탓일까요? 하나님이 무관심하신 겁니까…인간이 무력한 겁니까…누구도 정답을 알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늘 응답 받지 못하는 기도 때문에 힘들고 아파하지만, 어떨 때는 응답 받지 못할 때가 훨씬 나은 결과를 가져올 때도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한 대로 응답하실 때도 많지만, 동시에 다른 방법으로 응답하실 때도 많은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항상 세 가지로 옵니다. 예스(Yes), 노(No), 그리고 웨잇(Wait). 그런데 기다려라 말씀하실 때가 훨씬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필립 얀시 목사님은 참으로 깊이 있는 표현으로 기도와 응답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응답 없는 기도는 하나님과의 미스터리 한 동거이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하게 믿는 것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 12절에서 말씀하듯이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것이 우리의 기도를 향한 자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모든 방법을 알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단지 믿음을 가지고 기도할 뿐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요한의 권면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를 뒷받침하고 있는 영생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도 요한이 말씀하고 있는 우리 안에 영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소녀가 바닷가에서 사이 좋게 조개를 줍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까르르 웃기도 하고 장난질도 해 가며 조개를 주웠습니다.

그러다가 두 소녀는 이제까지 주운 어떤 조개보다 훨씬 큰 조개를 발견했습니다. 두 소녀의 손이 거의 동시에 조개를 덮쳤습니다. 그만큼 이번 조개는 상당히 큰 것이었습니다. 작은 말씨름이 시작됩니다. 쉽게 양보하기에는 너무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한참 만에 마음이 여린 소녀가 언짢은 마음으로 손을 거두었습니다. 처음과 같았던 즐거움과 장난질이 이제는 어색해지고 말았습니다. 까르르 웃음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서로 경쟁이나 하듯이 두리번거리며 조개를 찾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큰 조개를 양보했던 소녀가 자기 발 앞에서 좀 이상하게 생긴 작은 조개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보통 조개가 아니라 진주 조개였습니다. 소녀는 다른 소녀가 볼까 봐 얼른 진주 조개를 주워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소녀의 마음은 뛸 듯이 기뻤지만 내색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또 다시 두 소녀의 손이 동시에 어떤 조개를 덮쳤습니다. 처음 주웠던 조개만큼이나 상당히 큰 조개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웅다웅 다투지 않습니다. 서로 제 것이라고 고집 부리지 않습니다. 진주조개를 주웠던 소녀가 미소를 지으면서 슬그머니 손을 놓아 주었기 때문입니다. 나한텐 진주조개가 있으니까.

우리가 영생을 소유한 것을 깨닫는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발견입니다. 마치 진주 조개를 발견한 것과 같은 것임을 알게 됩니다. 정말 기도할 때 담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리빙워드한인침례교회 박지원 목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