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Photo : 기독일보) 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인문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키케로는 웅변가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인문학을 언급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키케로는 새로운 수사학으로 인문학을 소개했습니다. 고대 인문학은 수사학이었습니다. 수사학에서 인문학이 나왔습니다. 고대 인문학은 고대 수사학과 일치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수사학과 인문학을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하겠습니다.   

수사학(인문학)을 공부했던 사람들이 교부 신학자로 초대교회 기독교 교리를 세웠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초대교회 기독교 교리는 인문학(수사학)의 구조를 통해서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수사학(인문학)의 영향은 이미 신약 성경 사도 바울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수사학(인문학)에 탁월한 식견이 있다는 것은 이견(異見)이 없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사도 바울의 수사학(인문학)적 식견의 근거를 제시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고작해야 바울이 교육도시 다소(Tarsus) 출신으로 헬라교육의 혜택을 입었을 것이라는 정도입니다.    

바울의 인문학(수사학)적 수양과 배경을 생각하면 세 가지 사항이 중요합니다. 먼저는 그의 교육 환경인 길리기아 지역 다소라는 점입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역사학자나 지리학자들은 다소의 교육 환경을 높이 평가합니다. 다소에서는 양질의 수사학(인문학)이 교육되어 전수되고 있었습니다.   

다음은 바울 서신에서 바울이 받은 수사학(인문학)의 영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서신은 당시 수사학자들이 애용했던 설득 수단이었습니다. 설득의 예술인 수사학이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편지를 사용했습니다. 인문학(수사학)의 대가였던 키케로도 많은 편지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 있는 바울 설교들입니다. 사도행전에 있는 바울의 설교가 누가의 창작품이 아닌 바울 설교의 요약이라고 본다면 바울의 설교는 매우 중요합니다. 바울의 설교를 분석해보면 바울이 수사학(인문학)적 소양이 대단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자세하게 인문학자 바울을 알아봅니다.   

첫째로 바울은 다소 출신입니다. 로버트 피키릴리는 바울의 고향 다소가 당시 50만의 인구를 자랑하는 국제도시였다고 전합니다. 동서양의 경계에 있었고 세계 교역의 중심지였고, 교육열 자랑을 했던 도시입니다. 특히 스토아 철학의 거점도시로 많은 스토아 철학자들을 배출하였는데 그중에는 로마에 진출하여 로마 정계 상당한 영향력을 자랑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고대 역시 지리학자인 스트라보는 다소는 당시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를 능가하는 최고의 대학도시였다고 합니다. 바울의 출생과 성장기에 다소는 특히 철학, 수학, 수사학(인문학) 그리고 일반 교육에 전력하는 학문의 중심지였습니다. 이런 다소에서 수사학이 성행했고 바울이 그 영향을 받았습니다.    

둘째는 바울은 수사학(인문학)적 영향을 가득 담은 서신을 썼습니다. 서강대 송봉모교수는 바울이 로마 수사학(인문학)을 잘 알고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랜돌프 리차드는 바울, 키케로 그리고 세네카를 비교하면서 세 사람 모두 설득과 교육의 목적으로 편지를 쓴 편지 작가라고 정리합니다. 랜돌프는 세 인문학(수사학)자는 편지의 길이, 내용 그리고 목적에서 당대 서신들과는 전혀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바울은 고대 수사학(인문학)자들처럼 편지를 썼습니다.   

바울은 서신에서 수사학적 지식이나 기교를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말만 잘하는 것으로 오해받지 않으려고 수사학적 기교를 감춥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자신의 복음선포는 '말의 지혜(고전1:17)'나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고전 2:4)'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지금 이런 표현이 수사학적 논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더 능숙한 수사학적 기교였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사실 바울의 서신에 대한 수사학 비평적 접근을 많은 학자가 시도했습니다. 베츠(H D. Betz)는 갈라디아서를 변론적 편지로 분류하면서 갈라디아서는 법정 논쟁 수사학이 사용되고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또 웰너( W. Wuellner)는 고린도전서는 공연용 연설로 규정하였습니다. 성경의 수사학적 연구에 체계화는 고전학자인 케네디(G. A. Kennedy)가 이루었습니다. 케네디는 신약 성경을 심의 연설, 법정 연설, 공연 연설 등으로 분류했습니다.    

바울은 고대 수사학(인문학)을 알고 있었고 그 지식을 자신의 서신 속에 사용했다는 것은 바울 서신을 수사학으로 분석한 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입니다. 프랭크 휴는 데살로니가후서 연구로 버튼 막(Burton L. Mack),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베츠 등 상당수의 학자는 바울 서신을 수사학적으로 분석한 후 바울이 수사학(인문학)에 정통했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셋째로 바울은 수사학(인문학)적 식견을 가진 설교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총 3번의 선교 설교(13장, 14장, 17장), 1번의 양육 설교(20장) 그리고 (법정)간증 설교들을 남겼습니다. 바울 설교 중에 수사학(인문학)적 소양이 가장 빛나는 설교가 사도행전 17장에 아테네에서 행한 설교입니다. 수사학자 바울은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 앞에서 흔들림 없이 천국 메시지를 전합니다.   

사도행전 17장 바울의 설교를 분석한 학자들은 10절밖에 안 되는 짧은 설교에 명사의 명언들이 담겨 있다고 주장합니다. 시인 아라투스와 에피메니데스의 시구와 세네카를 포함한 여러 철학자의 말과 글을 인용하면서 인문학자 바울은 창조주 하나님을 아테네 철학자들에게 선포합니다. 맹목적으로 신을 찾아 헤매는 아테네 시민과 철학자들에게 설득력 있는 수사학적 설교였습니다.    

기독교와 인문학을 말하려면 사도 바울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울의 서신이나 바울의 설교는 그가 다소에서 받은 수사학(인문학)적 소양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특히 바울의 아테네 설교는 수사학(인문학)적 소양이 충분히 드러나는 설교입니다. 그의 인문학적 지식과 수사학적 기교가 어우러진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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