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영광교회 김병규 목사
(Photo :기독일보) 시애틀 영광교회 김병규 목사

우리는 남편이 되는 법이나 아내가 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어 서툽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 남자와 여자는 기대와 다르다고 실망을 합니다. 그러나 다르다고 실망한 할 것이 아니라 결혼의 관계가 고장 나면,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께 AS를 요청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가정 창조의 원리는 떠남과 연합인 "부모를 떠나 둘이 한 몸을 이루라."입니다. 결혼이란 각자 부모의 것을 가져다가 결합하는 모방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창조를 뜻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자기 아버지 것을 들고 나오니 싸우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 것을 모방하면 창조의 가정이 될 수 없는 겁니다. 

결혼하여 새로운 창조의 가정이 세워지면, 친정 가도 불편하고 시댁에 가도 불편합니다. 이것이 떠남과 연합이 온전히 이루어진 창조의 가정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사고에서 창조의 가정이 나옵니다. 요즘 가정에서 잘 안 쓰는 말이지만 아내에게 복종을 요구합니다, 부정 이미지가 있어서 여성의 억압과 비하가 생각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사랑을 로맨스로 표현하지 말고, 순종으로 표현하라는 말입니다. 로맨스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코맹맹이 애교 있는 말투는 잠시일 뿐입니다. 로맨스는 안개 같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순종으로 표현되어야 진짜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건 믿음이 우선되어야 남편에게도 순종하게 됩니다. 

보통 아내들이 주님께는 순종을 잘하게 되는데 남편에게는 잘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순종으로 표현되지 않는 사랑은 남편에게 잘 전달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꾸 밖으로 나도는 것입니다. 집 밖에서 밥 먹고 오고. 헬스장 가고. 카페에서 가래떡에 김 말아먹고 있는 겁니다. 외롭다는 뜻입니다. 순종으로 표현된 사랑만이 전달이 된다는 사실을 아내 분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요구되는 것은 사랑입니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라."입니다. 그럼 어떻게? 사랑하여야 하는가? 을 묻습니다. 아내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라는 말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보면 예수님이 생각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내의 무리한 요구에도 남편이 계속 헌신할 때. 아내는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하나님의 동행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남편을 보고 예수님이 생각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남편의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평강을 누리게 되고 안심하게 되는 겁니다. 이때 아내는 믿음을 회복되고 평강과 안심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겁니다. 남편의 사랑 때문입니다. 이것은 꿈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을 본받으면 아내도 복종할 수 있고. 남편도 십자가 지고 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중심의 신본주의 삶에서는 가정을 그리스도 체험 장으로 믿음의 실험실로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