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준 위원(K-con 스쿨 연구위원, 전 문화일보 논설위원)이 14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트루스포럼이 주최한 ‘보수주의 2020 컨퍼런스’에서 ‘미국의 보수주의’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그는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은 노년에 이르러서 손주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지만 이해받지 못했다”며 “대한민국 전후 세대들은 세계에서 무시당하는 나라를 자존심 있는 국가로 만들고 경제적 부를 쌓기도 했다. 하지만 이념·문화 전쟁에서 완전히 패배했다. 왜냐하면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보수주의의 가치를 제대로 알려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6.25 전쟁 발발 전, 미국은 동아시아를 구획한 에치슨 라인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그 만큼 한국은 미국의 외교 정세 범위에서 관심 밖이었다”며 “그런 대한민국에서 발발한 6.25 사변에 참전한 미군들은 ‘왜 참전해야 하느냐’고 리치웨이 사령관에게 물었다. 그는 두 가지를 대답했다. 첫째로 ‘무신론적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기독교 문명을 지키기 위함’이며 둘째로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세력에 대해서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함’이라고”라고 했다.
그러면서 “누군가는 미국이 국민의 생명을 희생하면서까지 6.25 전쟁을 치렀어야 했는지를 반문한다. 하지만 생명보다 더 나은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미국은 전쟁에 참전한 것”이라며 “바로 바꿀 수 없는 절대 가치인 자유 때문이다. 이것이 미국 보수주의가 견지하는 핵심 가치”라고 했다.
황 위원은 미국 보수주의에 대해 “개인의 자유와 이에 대한 책임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라고 정의하며 “이는 고전적 자유주의를 담지하면서 동시에 초월자인 신에 대한 인식을 담고 있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19세기 영국에서 로크, 밀 등이 주창한 사상으로서 당시 영국 사회는 합의된 질서가 있었다. 즉 신은 존재하고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를 존중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고전적 자유주의가 다윈이나 니체의 영향을 받고 ‘신은 죽었다’며 절대적 가치의 상실로 이어지자 볼셰비즘이나 ‘신과 같은 인간을 숭배하자’는 사상으로 변질됐다. 소비에트식 사회주의나 나치즘이 바로 그것”이라며 “아니면 20세기 현대 자유주의는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줘야 한다면서 친(親)사회주의로 흘러가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보수주의란 고전적 자유주의를 담지하면서 초월적 가치를 존중하자는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와 비슷한 맥락을 지닌다. 미국이 1930년대 1·2차 대전에 직면하고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정책을 실행하면서 보수주의적 기류가 형성됐다”며 “미국 보수주의란 ‘무언가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태동했다. 즉 미국이 지켜야할 가치는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서구 문명이었다”고 했다.
황 위원은 1930년대부터 미국 보수주의가 태동되기 시작했다며 그 연원을 크게 3가지로 나누었다. 그는 “첫째, 경제적 보수주의다.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이 국가주도의 경제 정책을 시행하면서 개인의 존립도 흔들리기 시작했다”며 “이에 대한 반발로 개인의 자유를 강조한 하이에크, 미제스 등의 사상이 태동했다”고 했다.
이어 “둘째, 철학적 보수주의다. 1·2차 대전을 거치면서 미국 철학계는 모더니즘에 대해 강한 회의를 제기했다. 가령 인간을 위한다며 시작된 나치즘, 볼셰비즘 등이 왜 악마적 경향성으로 흘러갔는지”라며 “이는 모더니즘이 신(God)을 배격하고 인간 스스로가 이성을 통해 잘 살 수 있다는 사상적 기반을 가졌기 때문이다.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이 신을 버릴 때 고독과 불안에 휩싸인다. 자신에 대해서도 정확히 모르는 게 바로 인간”이라고 했다. 그 결과 신으로 회귀하자는 철학적 보수주의가 등장했고, 이를 대표하는 학자로 러셀 커크, 레오 스트로스, 리처드 위버 등이 등장했다고 황 위원은 덧붙였다.
또 “셋째로 반공적 보수주의다. 미국 보수주의 세력은 소련식 공산주의 팽창으로 서구문명 자체가 위기에 처해있다고 인식했다. 한국식 반공주의도 6.25전쟁의 참상이 체현된 사상이다. 그래서 과격하고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한 측면도 있다”며 “반공은 보수주의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우리는 전략에 있어서 지혜로울 필요가 있다. 무작정 반공을 외친다면 현 시대의 사람들에게 반발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광화문 집회를 비판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젊은 세대에게 보수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교육이 필요하다”며 “좌익 사상에 동조하자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들이 추구했던 전술·전략을 배워야 한국의 보수진영이 살 수 있다. 보수를 제대로 교육하는 모임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보수주의는 유교식 권위주의와 다르다. 꼰대가 결코 아니다. 그런데 한국 보수주의는 유교식 권위주의에 가깝다. 미국 보수주의와 결을 달리 한다”며 “미국 보수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고 책임을 강조한다. 여기까지는 자유주의도 마찬가지다. 한 발 나아가 미국 보수주의는 공동체에 대한 헌신까지 강조한다”고 했다.
이어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패륜적 사건이 발생했다고 가정해보자. 이에 대해 보수와 진보가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진보는 ‘핵가족 현상 때문’이라며 결국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건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거짓 선동”이라며 “보수주의는 이와 달리 가정질서가 붕괴돼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제대로 된 가정질서로의 회복을 강조하는데 이를 위해 미국 보수주의는 하나님 말씀의 회복을 추구한다”고 했다.
황 위원은 “진보주의는 모든 사물이 변화한다는 시각이다. 그렇다면 진보적 크리스천이 말이 될까? 물론 개혁은 필요하다. 낡고 부조리한 부분에 대해서는 개혁이 필요할 수 있다”며 “그러나 진보라는 단어가 변하지 않는 하나님 말씀을 믿는 크리스천에게는 어울리지 않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은 체제에 대한 보존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보수주의에 어울린다”이라고 했다.
그는 “교회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며 정치에 입을 다물라 건 옳지 않다. 만일 신앙의 자유가 파괴되는 상황에 이르러서 과연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며 “오히려 대한민국은 기독교 근대화 세력이 자유민주주의를 세우고 지켜왔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이강호 위원(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이 ‘프랑스 혁명과 보수주의’, 조평세 박사(트루스포럼 연구위원, 전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KF연구원)가 ‘BLM과 1619’, 쉰스터(예술가, 제33회 중앙미술대전대상)가 ‘문화전쟁101’, 장지영 교수(이대서울병원, 이대트루스포럼 대표)가 ‘복음주의 생명운동’, 이영진 교수(호서대)가 ‘도올신학의 문제점’, 김은구 대표(트루스포럼)가 ‘중국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각각 발제했다.
트루스포럼은 이번 컨퍼런스에 대해 “프랑스혁명에 대한 반성적 고찰에서 시작된 보수주의 철학은 미국의 건국과 성장을 통해 발전해 왔다. 또한 그 근본적인 뿌리는 인류사회에 보편적 가치를 제시한 성경적 세계관에 기반을 두고 있다”며 “하지만 보수주의에 대한 국내적 이해는 깊지 않다. 소위 보수진영 안에서도 보수라는 말 대신 자유우파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주문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보수주의는 자유주의라는 언어로 담아낼 수 없는 고유한 내용을 담고 있다. 신 앞의 단독자로서, 인간의 불완전함을 겸허히 인정하고 이성을 초월하는 인간의 영성과 하나님의 섭리를 긍정하기 때문”이라며 “트루스포럼은 보수주의의 기초를 다지고 보수주의 연사들을 발굴해 내기 위해 이 번 컨퍼런스를 진행하였으며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행사로 키워갈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