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튀빙겐대학교 개신교 신학부 신약학 은퇴교수인 헤르만 리히텐베르거 박사의 글을 제자인 문배수 박사(대신대)의 번역으로 세 차례에 나눠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로마 콜로세움. ⓒunsplash.com
로마 콜로세움. ⓒunsplash.com

III. 로마에 있었던 요세푸스와 바울: 로마 여행과 그곳에서의 체류

요세푸스와 바울 두 사람을 연결시키는 것은 보람된 일일 수 있다. 우리는 미리 그들의 몇 가지 공통점을 통해 그것에 대한 의미를 부여해야겠다.

둘은 유대인이고 예루살렘에서 교육받은 경험이 있으며, 바리새인으로서 한때 조상의 전통에 열심있는 사람들이었다. 둘은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여행하며 생명이 위태롭게 되는 일을 경험했고 또 법적인 일로 황제에게 의뢰했다.

로마의 화재는 그들 모두와 관계되지 않았지만,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사이 분수계(分水界)와 같은 역할을 한다. 소위 로마 화재의 범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은 박해를 받지만, 유대인은 박해받지 않았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매우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둘은 나이에 있어 한 세대 차이로 나뉜다. 그들의 운명이 거의 서로 닿을 듯 말 듯 했을 때, 한 사람은 자신의 경력을 시작했고 다른 한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에 있었다.

요세푸스는 예루살렘 제사장의 아들이고 대제사장 가문의 친척이며, 자신의 말에 의하면 하스모니안 왕가 출신이다.

반면 바울은 로마 식민지에서 자유롭게 된 사람 또는 로마 군대 용병의 후손이고, 수공업자로서 경제적 지위가 중간 이상에 속한다. 두 사람은 소설에서나 나올 것 같은 인생의 반전을 경험하는데, 둘은 서로 매우 다르지만, 당시 유대인들의 눈에 그들은 둘 다 배교자라는 점에서 같았다.

둘은 저술가였다. 요세푸스는 전쟁사, 유대 역사와 종교 전체를 소개했다. 아피온이 나타나 글로 유대인들을 사냥할 때, 그것에 반박하는 글을 적고 자서전도 기록했다. 유대 전쟁사 외에(아마 자서전을 포함해서) 요세푸스가 쓴 모든 글은 복된 삶이 율법의 영향하에서 가능하다는 유대교 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

바울의 편지 중심 주제도 마찬가지로 율법이었다(갈라디아서와 로마서 등). 그러나 바울은 율법이 참된 삶에 이를 수 있는가라고 오히려 질문을 던진다.

1. 요세푸스

A.D. 60년대 초 요세푸스와 바울을 로마로 이끌었던 길을 따라가 보자! 우리가 다루는 것은 요세푸스가 70년 예루살렘 멸망 후 로마에서 비교적 편하게 이주생활을 한 때가 아니라, 이스라엘에서 봉기가 일어나기 수년 전 그가 갔던 로마 여행을 대상으로 한다.

요세푸스 홀로 그에 대한 증인이기에,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내 나이 26세가 다 찬 후, 다음 이유로 로마행 임무를 맡았다. 펠릭스가 유대 총독으로 있을 때 이 임무와 관련한 몇 가지 사항을 듣게 됐다. 매우 유능한 제사장들이 작고 사소한 일로 체포돼 황제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로마로 보내졌다는 것이다.

특히 내가 이들 제사장들이 불행 중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경건을 잊지 않고 마른 무화과 열매와 호두로 자신들의 생명을 유지하고 있음을 듣고, 그들을 구하고자 더욱 노력하게 됐다.

그렇게 나는 바다의 많은 위험 속에 로마로 갔다. 그때 우리 배는 아드리아 바다 한가운데서 가라 앉았다. 배 안에 있던 사람들 숫자가 대략 600명이었는데, 우리는 밤새 어둠을 뚫고 헤엄을 쳤다.

새벽녘에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로 구레네 배가 나타났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나머지 사람들보다 더 빨리 그 배로 헤엄쳐 가면서, 대략 80명이 그 배에 오를 수 있었다.

구조된 후 나는 이탈리아인들이 보디올(Poteoli)이라고 부르는 디카이아르키아(Dikaiarchia)로 갔다. 나는 아리투루스라는 연극배우를 알게 됐는데, 그는 네로에게서 총애를 받는 유대인이었다.

나는 그를 통해 왕의 부인 포프페아을 알게 돼, 가능한 빨리 제사장들을 석방해 주도록 그녀에게 간청하도록 했다. 포프페아가 베푼 호의와 큰 선물을 가지고 나는 고향으로 돌아왔다(『자서전』 13-16)."

요세푸스.
요세푸스.

a) 여행 연도

요세푸스가 로마로 가라는 임무를 맡은 때는 63년 또는 그보다 조금 더 개연성이 있어 보이는 64년이다. 그가 돌아온 것은 적어도 65년이었고, 그 해에 그가 방문했던 포페아 사비나가 죽게 된다.

어떤 권위가 자신을 로마로 보낸 것인지 요세푸스는 말하지 않는다. 비록 그가 그 제사장들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일로 그것이 다뤄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제사장들은 펠릭스(53-60?)에 의해 체포당해, 황제 앞에서 변론하도록 로마로 압송됐다.

로마로 가는 사절단은 보내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전제한다. 요세푸스의 출신 성분에 대한 자기 증거를 보았을 때, 분명 예루살렘 당국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은 당연했다. 로마 내에서 이뤄진 요세푸스의 길은 궁정에서 사랑받는 유대 배우에 의해 평탄했다.

제사장들은 작지만 명확하지 않은 일로 황제에 변론하기 위해 로마로 이송됐다. 요세푸스는 그들이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και,περ εν κακοι/ς ο;ντες) 하나님을 향한 경건(τη/ς ει.ς το. θει/ον ευvσεβει,ας)을 잊지 않았음을 알고, 더욱 제사장들의 석방을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제사장들의 신실함은 그들이 불결한 음식을 먹는 것을 사양하고 오랫동안 유지가 가능한 식료품 무화과와 호두로만 자신들의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으로도 드러난다.

요세푸스는 여행 시기와 기간을 알리지 않고, 단지 위험에 대해서만 말한다. 배가 아드리아 한가운데서 파선당했고, 하나님의 섭리로(κατά θεου/ προ,νοιαν) 한 배가 나타나 요세푸스와 비교적 빨리 도착한(φθα,σαντες του.ς α;λλους) 대략 80명을 구조했다.

이 보고를 바울의 여행과 비교해 볼 때, 무엇보다 여행 보고서가 짧다는 것이 특이하다. 여행하며 거친 중간 거점들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보디올에서 로마에 이르는 길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요세푸스는 곧바로 유대 배우이자 네로의 애인 아리투루스와 친하게 된 것으로 건너 뛴다.

b) 사명 완수

요세푸스는 아리투루스를 통해 황제의 부인 포프페아 사비나에게 접근해 제사장들을 풀어주게 한다. 요세푸스는 다른 유대 사절단과 연결해 포프페아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자(θεοσεβη,ς)라고 칭한다.

그녀는 네로 앞에서 유대 사절단과 관련된 것을 찬성하는 의미로 아그립바를 고소했다(유대고대사 20, 195). 메리 수몰우드는 다음을 분명히 밝히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미의 'θεοσεβη,ς'는 여기서 유대교 전문 용어로 이해될 수 없다고 한다.

기껏해야 사람들은 그녀를 '종교적'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포프페아는 유대인들이 갖는 종교적 확신에 대해 동정하는 차원의 이해만을 가지고 있었다.

보고에서 특이한 점은 그 전체 기록이 요세푸스 개인과 밀접히 관계된다는 것이다. 요세푸스는 개인적으로 제사장들을 알고 있었다. 그는 홀로 여행하며(이것은 불가능하다) 자기 사절단 중에 혼자 구조를 받는다(다른 80명은 그것과 아무 관련이 없다).

그는 아리투루스와 교분을 쌓아 결국 황제의 부인에게 소개를 받고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여 선물을 받는다. 그는 제사장들을 위해 보냄을 받았지만, 제사장들이 돌아온 것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이는 당연히 '자서전'이라는 문학 양식과 관련될 수 있지만, 요세푸스 자신을 소개하기 위해 자기 외 다른 모든 사람들을 빼버렸다는 점은 특이하다. 그는 자신의 구원을 하나님의 섭리로 알고 감사한다. 우리는 그가 로마에서 유대 공동체와 접촉했다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서신서를 쓰는 바울(1620).
서신서를 쓰는 바울(1620).

2. 바울

바울 선교의 목적지인 동시에 선교의 새로운 시작은 로마였다. 로마서는 로마와 로마 공동체에 이 계획을 덧붙인 것이 어떤 의미에 속하는지에 대한 증거였다.

바울은 로마서 안에서 로마 공동체를 방문하고자 하고(롬 1:10-15, 15: 22.28.32), 로마에서부터 선교를 스페인으로 옮긴다는(롬 15:25-28) 자신의 뜻을 반복해서 말한다.

바울은 자신이 생각한 것과 또 로마 공동체가 희망했던 것과는 달랐지만, 실제로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왔다. 우리는 바울의 편지에서 로마 여행에 대해 어떤 것도 듣지 못한다. 선교 현황에 대한 가장 중요한 증거 자료는 사도행전이다(행 21:15-28:31). 우리는 우선 사도행전 보고를 따른다.

a) 로마 여행

바울은 황제에게 호소한 것 때문에 로마로 옮겨진다(행 22:25, 23:27, 25:21, 26:32 로마 여행을 위해 23:11과 비교할 것). 여기서 바울의 시민권에 대한 논쟁을 마주하는데, 그것은 사도행전에서만 나온다.

로마 여행에 대한 설명은 요세푸스의 여행보고와 비교해 중요한 과정이 몇 개 있다.

-요세푸스가 자신의 보고에서 중요한 인물로 나타난 것처럼, 바울도 누가의 전체 설명에서 주인공이다.

-바울의 바다 여행도 파선으로(행 27:27-41) 위협을 당한다. 하나님의 뜻에 따른 여러 상황에서의 구조는 폭풍(행 27:20), 뱀에 물리는 것(행 28: 3-6), 특히 죄수들과 동행한 군인들이 죄수들을 죽이려 하는 것(행 27: 42) 등 여러 어려움에 상응한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은 로마에 이르러 거기서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행 23:11).

b) 보디올에 도착해 그곳에 머무는 것(행 28:13-14)

바울에게 7일 동안 머물 곳을 제공한 기독교 공동체가(28:14, αvδελφοι,) 보디올에 있었다. 어떤 조건에서 이것이 바울에게 가능했는지 밝혀지지 않지만, 죄수 감시 책임자가 바울에게 가능한 최대의 자유를 허락해 준 것 같다. 그 책임자는 바울에게 그 정도를 허락해 줄 정도의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c) 로마 공동체를 통한 영접(행 28: 14b-16)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갔다." 로마 공동체가 압비오와 트레이스 타베르네 광장으로 바울을 맞으러 (αvπα,ντησις) 나왔다.

'형제들'은 바울에게 감사와 용기를 낼 수 있는 동기가 된다(15b). 비록 누가는 바울을 원래 로마에서 복음 전하는 전도자로 만들기를 원하지만, 그럼에도 누가는 여기 보디올과 로마에 있는 기독교 공동체에 대해 말해야 한다(행 28: 30-31, 23:11).

영화 <바울> 스틸 이미지. ⓒPaul, Apostle Of Christ
영화 <바울> 스틸 이미지. ⓒPaul, Apostle Of Christ

d) 로마에 머무는 것에 대한 외부 환경

바울이 로마에 갇혀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전체 틀뿐 아니라, 그에 대한 개별사항들은 불분명해 보인다. 16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지키는 병사와 함께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허락을 받는다. 이 감옥 장소가 30절에서는 바울의 '셋집' 아닌가?

또 로마에 있는 유대 공동체 대표자들을 영접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여기에서 나올 수 있는가? (비교: 행 28:17 이하)

바울은 2년 동안 자신이 세든 집에 머물며(행 28:30)-감시받는 것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자신에게 오는 모든 사람들을 영접한다. "그(바울)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행 28:31)".

우리는 바울이 기독교 공동체와 접촉한 사실에 대해, 그에게서 어떤 것도 듣지 못헸다.

3. 사도행전과 바울의 마지막

왜 누가는 사도행전을 이런 방식으로 끝내는가? 세 가지 가능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a) 누가가 재판 결과와 바울의 계속되는 운명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것은 제1클레멘서 5: 5-7로 보건대 매우 불가능하다.

b) 누가가 이 모든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또 그는 2년간 감옥 생활 후 바울에게 일어난 것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c) 사도행전 처음에 나오는 데오빌로와 같은 독자들 역시 그 결과를 알고 있고, 그래서 누가는 이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 그것을 반드시 보고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누가가 바울의 마지막에 대해 왜 침묵하는지는 내부 근거들이 있어야 한다. 누가는 로마 공동체가 국가에 대해 관계하는 것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 했는가?

만일 바울이 로마에서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여행 중 받았던 많은 구원들은 도대체 어떤 결론에 도달하겠는가?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바울이 로마에서 설교한다는 점이다.

사도 바울 동상.
사도 바울 동상.

누가는 확실히 감옥이 열려 있었다는 것을 바울 설교의 독자들을 위해 두 가지로 묘사한다.

a) 사도행전 28장 17-22절. 바울은 3일 후 유대 공동체의 대표자들을 자신에게 부른다. 바울의 말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즉 자신은 유대 민족과 선조들의 전통을 반대하여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로마인들은 자신을 풀어주려 했지만, 예루살렘에 있는 지도자들이 자신을 강제로 황제에게 상고하게 했다. 바울이 공동체 지도자들을 부른 것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희망 때문에 이 쇠사슬에 매여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설명하기 위해서다(행 28:20).

사람들은 바울에게 대답하기를 자신들은 바울이 악하다고 말하는 편지나 사환을 받지 못했기에, 자신들은 바울의 생각을 기꺼이 듣고자 한다고 말한다. 이 파(αιρεσις)가 어디서나 저항을 받는다는 것을 이들은 알고 있다.

b) 사도행전 28장 23-28절. 다음 단계는 바울이 많은 유대 청중들 앞에서 설교하는 것이다.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행 28:23)".

설교가 청중들 속에서 믿음과 불신 사이를 나눈다(비교: 행 17:4). 바울이 이사야 6장 9절에 나타난 완고함을 자신의 청중인 그들과 연관지으며 이제 구원은 이방인들에게 유효하다고 하자, 그들은 바울에게 다양한 반응을 보이며 바울을 떠난다.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행 28:28)".

이제 그의 집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리며, 그는 2년 동안 하나님 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매우 담대하게 방해받는 것 없이' 사람들을 가르친다.

누가의 설명은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처음에 곧바로 공동체 지도자, 즉 로마에 있는 유대인 대표자들을 부르는 것에 대한 문제가 있다.

그가 원래 자신에게 오라고 했던 사람들은 누구일까? 어떻게 그가 그들을 부를 수 있었고, 또 그들은 어떻게 그의 초대를 따를 수 있었을까? 그리고 기독교와 공동체의 가르침에 관해 '이 파(αιρεσις)'가 어디서나 저항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그들은 자신들이 알지도 못하는 이 사람에게 간다?

"믿음이 전 세계에 전해지고 있다"는 말이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아무런 주의를 끌지 못하는데, 바울이 그런 공동체를 향해 오라고 불렀다?

실제로 전체 설명에 대한 누가의 의도는 아래에 숨겨져 있다. 즉 구원이 이방인들에게 향한다는 것이다(행 28:28). 바울이 여기서 갈라디아서 2장 9절에 나타난 협정 사항과 반대로 유대인들에게 설교한다 해서, 그것이 누가의 상상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사도행전의 설명은 역사적으로 사실에 부합한 것일 수 있다. 바울은 규칙적으로 회당에서 설교했다. 왜냐하면 바울이 로마에서 회당을 방문할 수 없었기에, 우선 대표자들이 오고 그 다음 많은 유대인들이 그에게 나아왔다.

만일 우리가 더 정확히 말한다면, 바울의 방문 대상은 회당 한 곳이 아니라, 복수의 회당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거부하자,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향했다. 누가는 바울 선교를 위한 자신의 주제를 여기서 그냥 단순히 사라지게 해 버렸다. <계속>

헤르만 리히텐베르거(Dr. Hermann Lichtenberger)

튀빙겐대학교 개신교 신학학부 신약학 은퇴교수
1988년 이후 독일 뮌스터대학과 튀빙겐대학에서 신약학 교수로 재임.
튀빙겐대학 고대 유대교와 헬라주의 종교사 연구소 소장

박사학위와 박사후 논문
『쿰란 문서에서 인간상에 대한 연구』
『로마서 7장에 나타난 바울의 인간론 연구』

해당 원고를 번역한 문배수 박사.
해당 원고를 번역한 문배수 박사.

번역 문배수(Th. D.)
총신대 수학 후 독일 튀빙겐대에서 신약학 학위
『유대교 전승과 헬라주의적 구성: 사도행전 15장과 17장에 대한 주석학』
현 대신대학 강사